그림 AI 이후, 그림그리는 우리가 가야할 길

그림 AI와 그림쟁이 2편

by 이래


1편을 먼저 읽으면 좋습니다 :)


AI가 창작의 판을 흔들고 있는 지금, 현재 그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창작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내리기보다는, 그저 함께 고민을 나누기 위해 씁니다.


| 그저 대 혼란의 시대

제가 본 많은 그림 관련 콘텐츠에서는 AI에 대하여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AI보다 잘 그리면 된다!”

하지만 이 말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닥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술적으로 AI보다 더 잘 그릴 수 없습니다.

설령 비슷하거나 뛰어난 결과를 낸다 해도, 그 과정에서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은 대충 상상만해도 가성비가 썩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1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들은 구린 것을 알면서도 그냥 AI 이미지를 씁니다. (저렴하기때문에!)

“사람이 그린 그림은 뭔가 달라. AI와는 완전히 결이 다르니 걱정마!”

이 말에 저도 공감합니다. 그림에는 분명히 사람의 손맛, 떨림이 있고 그것만의 감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1편에서 말했듯이,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냥 ‘적당히 괜찮은’ 이미지를 선택합니다. 그게 구리든 말든, 목적만 충족되면 충분하니까요.

그런 점에서, 결과물로 값을 치루는 상업용 일러스트 시장은 이제 점차 막을 내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출판, 게임, 애니메이션 등 어느 분야든 네임밸류가 있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점점 더 외주 일을 받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른 곳으로 갈 채비를 해야 합니다.


| ‘작가’로 살아남기

예술은 고대 그리스어 ‘테크네(technē)’에서 시작된 말입니다.

이 단어는 지금 우리가 떠올리는 ‘감성적 예술’이라기보다는, 숙련된 기술, 제작 능력, 손기술을 의미했습니다.

쉽게 말해, 예술은 기술직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예술에 ‘창의성’이나 ‘자아 표현’이라는 개념이 들어온 것은 르네상스 그리고 낭만주의 이후의 일입니다. 그 전까지 약 1,5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예술의 중심은 ‘모방’이었습니다. 잘 따라 그리고, 실제처럼 표현하는 것이 가장 높은 가치였던 시절이었죠.

그러다가 시대가 변하면서, 예술도 달라졌습니다. 사회 분위기, 철학의 유행, 인간 중심적 사고 등이 뒤섞이면서 예술은 더 이상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대상을 새롭게 해석하고, 본질을 드러내는 행위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상상력과 본질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는 ‘손’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상상력과 기술을 동시에 갖춘 사람만이 작가가 될 수 있는 구조 속에 있었습니다.

(현대 미술은 이 구조를 의도적으로 벗어났지만, 그것은 또 다른 논의로...)

그런데 이제 AI가 등장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숙련된 기술을 갈고닦는 데 10년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손은 더 이상 예술의 필수 조건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자 손목 보호대를 벗으세요)

지금은 기술 + 상상력 = 예술인 시대입니다. 그럼 기술이 빠지면? 상상력만으로도 예술이 가능합니다.

이건 어쩌면 굉장한 해방입니다. 더 이상 ‘손이 따라주지 않아서’ 하고 싶은 걸 못 그리는 시대는 아닙니다. 그럼 이제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당신은 이제 못 그리는게 없는 세계 최고 금손입니다. 이제 뭘 그릴 건가요?”


피카소 좌:First Communion (1896) 우: Harlequin (1915) / 출처: wikiart


이 질문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동안 우리는 그림에서 기술만을 중시했지만, 사실은 ‘생각(기획)’이 더 중요했다는 사실입니다.

AI를 손에 넣어도 우리는 피카소가 될 수 없습니다. 그가 가진 기술 때문이 아니라, 그가 가진 사유와 관점 때문입니다. (하지만 피카소는 구상화도 기가막히게 잘 그렸습니다. 15세에 저정도라니 그저 모든 것을 가진 사나이..)

어쩌면 지금 이 시대는, 몇십 년을 바쳐 단련해야 했던 손의 노동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주는 시기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결국 중요한 건 무엇을 왜 그릴 것인가입니다.

AI는 도구일 뿐, 그 도구로 무엇을 할지 정하는 건 여전히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제 작가는 도구의 숙련자이기보다는,

무엇을 그릴지 머리터지도록 고민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어떤 이미지를 만들고 싶은지, 그것이 왜 세상에 나와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가장 잘 전달할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묻는 것— 그게 이제 창작자의 진짜 일입니다. 이미지를 지휘하는 사람이되어야합니다.

그렇기때문에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오히려 AI를 가장 가까이 해야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상상한 이미지의 의도에 AI가 잘 맞는다면 AI를, 손그림이 더 좋다면 손그림을 쓰면 됩니다. 중요한 건 도구가 아니라, 그림 안에 담긴 감정과 메시지입니다. 이미지는 별거 아닙니다. 내 의도를 담을 캐리어일 뿐입니다.

AI는 점점 더 정교해지고, 모든 사람이 ‘그럴듯한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상상력과 기획력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엇을 그릴지 모르는 사람은, 어떤 도구를 써도 작가로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 ‘선생님’으로 살아남기

저는 예술이 다른 업계에 비해 AI로 인한 상대적 생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예술이 사람들이 예술의 ‘결과’뿐 아니라 그 ‘과정’을 즐기는 분야이기때문입니다.

저는 앞으로 그림그리는 사람들이 지금의 클래식 악기 전공자와 비슷한 상황에 놓일 거라 봅니다.

음악에서 바이올린 소리가 필요할 때, 우리는 이제(아니 아주 예전부터) 연주자를 부르지 않습니다. 키보드로 음을 입력하면 바이올린 소리가 촤촤촹 나옵니다. (심지어 요즘은 키보드도 AI가 대신 눌러주는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올린 전공자들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전공자들은 연주도 하지만 강사로서 역할을 많이 합니다. 바이올린은 연주하고 배우는 과정이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저 같은 사람의 니즈가 있고 그것이 이 산업을 지탱시켜줍니다. 사람은 항상 즐거운 일을 추구하기 때문이지요.

그림도 비슷한 길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취미로 그림을 배우고 있습니다. 결과물이 아무리 완벽하게 자동화된다 하더라도, 직접 그리고, 채색하고, 완성하는 과정의 감각은 대체되기 어렵습니다. (이건 AI가 뺏어갈 수 없는, 소소하지만 강력한 영역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앞으로는 그림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취미생들을 위한 교육, 그리고 전문가를 길러내는 티칭의 산업적 가치는 결코 작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업일러스트 전문가를 양성하는 학원은 그 존폐가 걱정되긴합니다..)

이렇게 손에서 붓을 놓고 싶지 않다면, 이렇게 손을 잡아줄 사람들을 찾는 방법도 있습니다.



| ‘콘텐츠 창작자’로 살아남기

‘그림’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비교적 안전합니다. 이건 사실 1번에서 말한 ‘작가’와도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여기서는 그림이 메인이 아니라, 그림을 통해 전달하는 콘텐츠가 중심입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일상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인스타툰 작가,

상상한 세계를 스토리로 엮어내는 웹툰 작가

모두 ‘그림 그 자체’보다는 스토리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스토리도 언젠가는 AI가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날이 오면 우리 다 같이 한강으로 놀러나 갑시다.)

하지만 그나마 기획과 이야기 구성 능력은 AI보다 느리게 대체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방식은, 그림그리는 ’과정‘과 ’기술‘ 자체를 콘텐츠로 만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실사 같은 정밀한 그림을 직접 손으로 그려내는 영상

다이소 제품을 사용한 드로잉 퍼포먼스

이런 콘텐츠들은 그림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보여주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이 경우에는 일종의 예술형 인플루언서, 혹은 엔터테이너에 더 가까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건 단순히 ‘그림 잘 그린다’가 아니라 ‘보여주는 방식 자체’가 콘텐츠가 된다는 점입니다.

이미지는 여전히 범용성이 좋은 매체입니다. 글, 음악 등 어디에도 잘 붙습니다.

그래서 ‘이미지의 가치가 하락했다’고 해서, 이미지를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사라진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림이라는 도구를 다른 영역과 결합해 새로운 방식으로 써내는 사람은 앞으로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 ‘회화작가’로 살아남기

AI의 부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날로그의 가치를 더욱 끌어올렸습니다. AI의 가장 큰 한계는, 여전히 화면 안에서만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AI는 아직 몸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캔버스에 직접 그려진 그림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붓의 질감, 물감의 농도, 캔버스의 거친 결— 이른바 ‘손맛’은 디지털이 흉내 낼 수 없는 물성입니다.

디지털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실제 물감을 덜어 붓질하는 감각까지는 대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날로그 회화는 ‘작품’으로 판매가 가능합니다. 희소성 있는 실물이라는 점은 여전히 가치가 유효합니다.


| 그러니까… 직면하기

이렇게 구구절절 길고길게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저도..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뛰어난 그림쟁이도 아니고, 그다지 똑똑하지도 못합니다. 그림 외에 다른 기술은 없고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솔직히 말하면 막막합니다.

하지만 미술사를 공부하며 확실히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술은 사회와 동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역사 속 예술은 늘 그 시대의 변화와 함께 움직였습니다. 사회가 바뀌면 예술도 바뀌었고,그 사회와 동떨어진 예술은 기록조차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예술이 존재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변화를 ‘인지’하는 일입니다. 그 흐름을 인정한 뒤, 발맞춰 나아가든, 거슬러 새로운 길을 만들든 각자의 액션을 하면 됩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시대를 외면하지 않아야 합니다.

저 역시 처음엔 두려웠습니다. AI가 2년 전쯤 등장했을때 저는 눈을 그냥 꾹 감고 아닐거야..아닐거야.. 외면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차라리 직면하는 편을 택했고, 그 선택 덕분에 지금처럼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은 그런 과정의 일부입니다. 정답은 아닙니다. 각자의 답이 있을 것이고, 그 답이 바로 여러분의 정답일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길. 창작자의 가치가 사라지질 않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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