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은 폐기될 것인가,
성숙될 것인가

- 앤드류 포터의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2016)』을 읽고 -

by 무아상

- 앤드류 포터의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2016)』을 읽고 -

저자 및 책 정보 소개

저자 :

앤드류 포터 (Andrew Potter, 1972년, 캐나다 출신) 토론토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몬트리올 대학, 윤리연구센터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지냈다.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잡지사에서도 활동했다. 관심 분야는 형이상학, 정치철학, 교육정책, 상품 브랜딩, 소비주의, 대중문화이며 과학과 기술, 뉴스미디어의 미래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책 소개 :

- 원제목은 <The Authenticity Hoax: How We Get Lost Finding Ourselves>

(진정성이라는 속임수: 우리는 어떻게 자신을 찾다가 길을 잃는가)

- 출판사: 마티 (MATI). 노시내 옮김.

- 첫 출간일: 2016년 2월 15일 (초판 1쇄), 336p.

- 이 책은 2016년 초판 출간 이후 꾸준히 독자를 얻었으며, 2024년 2월에는 표지를 새롭게 한 리커버판이 출간되었다.(현재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책) 본 논평은 2016년 초판을 기준으로 한다.


진정성을 갈망하는 시대의 역설

우리는 ‘진짜’가 되기를 갈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TV 프로그램, SNS 콘텐츠, 기업 마케팅, 심지어 정치에 이르기까지 어디서나 ‘진심’과 ‘진짜’를 강조한다. 대중은 가공되지 않은 모습에 열광하고, 명품을 가지려 하고, 스스로 남들과 구별되는 진짜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진정성을 추구하는 행위 자체가 이미 하나의 문화적 코드이자 소비 전략으로 통한다.

『진정성이라는 거짓말』의 가장 통찰력 있는 지점은 현대인이 진정성을 찾으려 할수록 오히려 진정성에서 멀어진다는 역설을 짚어낸 데 있다. 저자는 사람들이 진정성을 찾을수록 더 길을 잃는 현상을 재치 있는 문장으로 서술하고 있다. 진정성은 더 이상 개인의 미덕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정당성과 도덕적 우월성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왜 진정성을 추구하는 행동이 거꾸로 그릇된 효과를 낳는가?”에 대한 분석과 진정성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 저자는 단지 진정성은 없다고 선언할 뿐이다. 그는 진정성을 추구할수록 더 멀어질 뿐이니 개인적 진정성은 추구하지 말라, 공적 제도와 집단적 합의라는 오래된 정치적 질문으로 돌아가고 개인은 집단에서 ‘역할’만을 잘하라고 주장한다.


진정성은 있다

“진정성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책의 대주제다.”(21)

언어는 사고를 한정시켜 가며 사용하기 때문에, 큰 개념은 표현하기 어렵다. 진정성 또한 큰 개념이다. 표현하기 어렵다고 해서 없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저자가 조그비의 말을 인용하여 쓴 문장이 정확히 그 점을 짚고 있지 않은가. “진정성의 정확한 실체는 모르지만, 진정성 없는 것이 무엇인지는 직관적으로 알고 있으며 ‘진정성’이 뭐든 간에 사람들은 그것을 원한다.”(13)

저자는 현대인의 진정성 추구가 오히려 ‘더 진정성에서 멀어지게 한다.’라며 가짜 진정성에 대해 열거한다. 가짜를 보여주며 ‘그것 봐라, ‘진짜’는 없다 “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가짜가 많다고 진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보석이 있기 때문에 가짜 보석이 있다. 즉 진짜가 있기 때문에 가짜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현대에 ‘가짜’가 많은 이유와 왜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욱 진정성을 추구하게 되는지를 짧게 언급하고 있지만, 왜 진정성의 추구가 역작용을 일으키는지는 살피지 않는다.

저자는 진정성이라는 것 자체가 없고 이를 추구하는 행위를 모두 비판한다. 그러나 문제는 ‘진정성’이 아니라 우리가 진정성을 쫓는 ‘동기’에 있다.

진정성 추구의 출발점을 ‘사랑‘과 ’ 결핍‘으로 나눠서 생각해 보자. 진정성을 향한 추구가 사랑과 존재의 충만함에서 출발한다면 그것은 왜곡되지 않는다. 그러나 결핍에서 출발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인정욕구와 비교 의식에서 비롯된 진정성 추구는 결국 자기 과시와 이미지 관리로 변질된다.

이는 애정 결핍의 원리와 비슷하다. 애정 결핍에 의한 사랑이 집착으로 변질되어 오히려 사랑을 잃듯, 결핍 기반의 진정성은 오히려 진정성을 파괴한다. 예술 역시 마찬가지다. 예술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인정과 성공에 대한 갈망이 중심이 될 때, 창작은 ‘지옥’이 된다. 초심을 잃은 예술이 공허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저자가 비판하는 것은 ‘진정성’ 자체라기보다, 결핍에서 비롯된 집착의 구조로 읽는 것이 더 타당하다.

저자는 현대 진정성의 잘못된 추구를 사례로 들며, 개인적 진정성의 추구를 비판하지만, 그런 주장은, “진정한 사랑은 찾아보기 힘드니 사랑하지 마라 “는 논리와 같다. 거짓된 사랑이 세상에 많더라도 진정한 사랑은 추구해야 한다.

만약 개인의 내면적 성찰과 ‘진짜 자기(self)’를 무의미한 것으로 본다면, 개인은 사회적 역할, 즉 페르소나(사회적 가면)에만 충실한 존재로 축소될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제도를 유지하는 기능적 구성원에 머물고, 자기 탐구를 통해 새로운 가치와 감각을 창조하는 존재로서의 가능성은 약화된다. 심리학자 칼 융은 자신을 페르소나에만 동일시하면 참된 자아와 단절되어 내면의 그림자가 무의식 속에서 왜곡되어 분출하고, 결국 신경증·공허감·정체성 혼란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했다. 이는 개인의 정신 건강과 성숙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예술도 없어져야 한다. 예술의 영역에서는 진정성이 핵심적 동력이다. 예술가가 자신의 내면과 단절된 채 사회적 기호만을 재생산한다면, 예술은 비판과 창조의 힘을 잃고 단지 소비 가능한 쾌락 상품으로 전락할 것이다. 진정성 비판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개인의 성찰과 창조성 자체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이해되어서는 곤란하다.


진정한 나를 찾는 일의 힘

저자는 책의 후반부에서 진정성이라는 허상을 쫓는 에너지를 좋은 시민이 되는 데 쏟으라고 제안한다. 그러나 진정성을 추구하는 동기를 보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는 중요한 심리적 단계가 빠져 있다.

자신과 진실하게 대면하지 못한 채 사회적 역할만 충실히 수행하려는 태도는 또 다른 형식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다. 현대인은 '소외'라는 만성 질환을 앓고 있다. 분업화된 노동, 파편화된 인간관계, 디지털화된 가짜 정보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가 '껍데기'뿐이라는 극심한 결핍을 느낀다. 이 결핍을 직시하고 다루지 않은 채 시스템 안에서 기능만 수행한다면, 시민성은 쉽게 위선적 역할 연기로 전락할 수 있다. 진정성을 더 갈망하게 되고 진정성에서 더 멀어지는 요인이 된다. 개인의 내적, 사회적인 무의식 속 결핍을 해결하지 못한 채 무턱대고 시스템 속에서 '역할'만 다하려는 시도는 또 다른 위선을 낳을 뿐이다.

건강한 제도 역시 성찰된 개인 위에서만 견고해질 수 있다. 페르소나로 가려지거나 왜곡되고 결핍된 자아 뒤에는 분명 ‘진정한 나’가 존재한다. 왜곡된 욕망을 걷어낸 진실한 자아를 마주하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나 자신과 진실하게 마주할 수 있는 사람만이 비로소 타인과 건강하게 연대하는 ‘진정한 시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주장과 달리 진정성 있는 개인과 좋은 집단은 대립 관계가 아니다. 좋은 시스템은 추상적 구조가 아니라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윤리 위에서 작동한다. 개인의 성찰은 제도의 토양이 되고, 제도는 개인의 윤리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된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층위를 연결하는 일이다.


현대는 인공지능과 디지털 환경의 확장 속에서 ‘가공된 자아’가 더욱 증폭될 위험에 처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정성이라는 거짓말』은 우리가 ‘진정성’이라는 이름으로 추구해 온 행위가 오히려 진정성에서 멀어지는 행위였음을 자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그러나 한계 또한 분명하다. 만약 진정성이 구조적으로 포섭된다면 개인의 선택은 모두 무력한가? 개인적 태도와 제도적 개혁은 반드시 대립하는가? 현실의 제도 역시 권력과 이해관계에 의해 왜곡될 수 있으며, 시민의 내면적 성찰 없이 건강하게 유지되기 어렵다. 이 책이 비판하는 현상은 진정성 그 자체라기보다, 결핍에서 비롯된 집착의 형태로 이해되어야 한다. 존재의 충만함과 사랑에서 출발한 진정성은 폐기되어야 할 환상이 아니라 성숙되어야 할 가치다.

진정성은 결핍을 채우기 위해 쟁취하는 보물이 아니라, 사랑과 성찰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삶의 태도다. 그리고 그때에야 개인의 진정성과 공동체의 제도는 서로를 지지하는 두 축이 된다. 우리가 개인과 사회의 무의식적 결핍을 성찰하고, 역할 수행을 넘어 자신과 세계를 깊이 이해하려 할 때, 비로소 ‘거짓된 진정성’의 늪을 건널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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