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바이너리 미정은 이분법으로 나뉜 세상에서 노동자로서 균열을 내고자 한다
*논 바이너리(Non-binary)란 젠더 이분법에 저항하며 만들어진 용어. 성별 이분법 아래에 배제되는 성별 정체성은 많이 존재한다. 여성 또는 남성 둘만 인정한다면 뉴트로이스가 배제되며, 반드시 하나의 성별 정체성만 가져야 한다면 바이젠더, 멀티젠더 등이 배제되고, 성별 정체성의 유동성을 알 수 있는 젠더플루이드마저 배제된다. 물론 데미젠더, 에이젠더, 젠더리스 등 부분적이거나 없음을 표방하는 다수 성별 정체성이 배제된다.
@출처 : 페미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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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다섯 시에는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야 하지. 미정은 컴컴한 방에 어정쩡하게 드러누워 트위터를 새로고침 했다. 하나같이 이만 자러 갑니다. 내일은 월요일이니까. 아 주말 너무 짧다. 출근하기 싫다. 개쓰레기 요일. 한탄과 푸념뿐인 직장인의 단말마 말고 새로운 트윗들은 타임라인에 더 이상 업로드되지 않았다. 군대 갔다 온 누가 컴백한다더라, 이 영화가 왓챠에 올라왔다더라 시끌거리던 카톡방도 어느새 조용했다. 어이어이 다들 벌써 어엿한 어른이 된 거냐고. 나만 버리고. 나만 여기 놔두고. 늘 예정보다 빠르게 닥쳐오는 월요일 아침을 견디며 다른 사람들 같은 일주일을 보낸 게 언제 적 얘기지? 퇴사한 지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이제 나는 월요일이 오든, 금요일이 끝나든 매한가지인 삶을 살고 있네. 시간은 또 하필이면 새벽 다섯시고, 하물며 내일은 아니, 오늘은 월요일이니까. 나는 누구에게도 전화를 걸 수 없겠구나. 핸드폰 배터리는 한참 남았는데. 화면이 뜨뜻하게 달궈질 때까지 전화할 준비가 나는 된 것 같은데, 아쉽다. 미정은 왼손을 뻗어 바닥에 널브러진 이어폰을 주워 들었다.
화면 밝기를 최소로 줄이고 이미 열 번은 들은 asmr을 귓구멍에 쑤셔 넣었다. 나는 왜 이 넘쳐나는 asmr 중에서도 맨날 듣던 것만 듣지? 유튜브 프리미엄 결제하면 맨날 핸드폰 화면 키고 잠들 필요도 없을 텐데. 갑자기 새 사람이 된 것 마냥 외관도 취향도 가치관도 바뀔 순 없을까? 이왕이면 소득과 탄생 배경도 좀 생기면 좋으려나. 말만 해서 뭐해. 아 좀 뭐라도 해봐. 다른 사람들처럼 이 시간에는 투정 부리지 말고 잠을 자봐. 야 다른 사람들처럼 12시 전에 잠에 들고 아침엔 일어나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을 하러 가봐. 아니, 아니, 안 되겠어. 못하겠어 말만 하지 말고. 너 무슨 마음으로 사표 내고 조막만한 이 집에 기어 들어왔니. 뺨을 철썩철썩 때리다 뺨보다 손바닥이 아파지면 휘두르던 팔을 잡아 세운다.
스스로 때리고 스스로 얻어맞은 볼이 똥똥하게 부어오르는 동안 미정은 상체를 일으켜 구역감이 올라오는 알약 다섯 개를 고개를 흔들어 삼킨다. 유난히 큰 알약 하나는, 작은 알약 네 개가 미끄럼틀 타듯 내려가는 동안 물을 꼴딱꼴딱 서너 번 더 삼켜야 그제서야 어쩔 수 없다는 듯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에이 그래, 나까지 니 목구멍에 걸려선 니가 살겠냐- 싶어서 움직여주는 것 같다. 알약과 수면의 질을 타협한 뒤엔 침대에 가지런히 누워 여섯 자리 간편 비밀번호를 누르고 통장 잔고를 확인한다. 영이 한 개, 두 개, 세 개, 네 개, 다섯 개, 여섯 개. 아니 다섯 개? 아닌가, 여섯 개? 그래, 뭐가 되었든. 아직 한 달은 더 버틸 수 있을 거야. 지난번처럼 갑자기 응급실에 실려가지 않는 이상 개처럼 번 이 돈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진 않겠지.
닫히지 않는 눈꺼풀을 암막 커튼과 안대로 짓누르려 하면 그는 숟가락 살인마 대신 물음표 살인마가 쫓아오는 듯한 묘한 기시감에 시달린다. 나는 왜 전화를 걸려고 했지?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어차피 살아내고 있는 삶이 없으니 투명히 뱉을 수 있는 말도 없었을 텐데. 전화를 끊고 나면 영문 모를 부러움과 서러움에 사랑하는 친구를 남몰래 미워했을 텐데. 나는 왜 자꾸 나를 인식해주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나를 확인받고 싶어 할까. 사람은 다 그런 거냐? 에라이 불공평하다. 슬프다 슬퍼. 슬픈 생각을 그만해야 슬픈 꿈도 그만 꿀 텐데. 오늘도 빼도 박도 못할 개꿈 당첨이다. 아무리 멀리 도망쳐도 내 손으로 붙잡을 수 있는 건 내 목과 내 손뿐인 것처럼. 미정은 혼자라서 안전한 공간에 혼자라서 외롭게. 외롭게 버티고 있었다.
사계절을 한 이불로 나는 그는 사람을 그려보세요. 하면 중학생이 그렸을 법한 바른 자세로 잤다. 여름이어도 무거운 이불에 눌려있지 않고서는 잠이 오지 않았기에, 바르게 누운 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거운 이불로 자신을 고정했다. 미정은 가끔 궁금했다. 아주 가끔. 엄마는 아직도 서울 홍은동의 구석진 빌라에서 요일도 시간도 상관없이 기도를 올리고 있을지. 누군가 한 번이라도 그 기도에 답한 적이 있는지. 그리고 지금쯤 아빠는 어느 바다에서 어떤 물고기를 잡고 있는지. 지금 같은 철에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이런 알아봤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이 궁금했다. 특히나 마트에서 할인하는 고등어를 사 올 때나, 그 고등어를 좁은 원룸에서 굽고 나서 냄새를 빼느라 하나뿐인 창문과 현관문까지 열고 있을 때 궁금해졌다. 육십 줄이 되어가는 그들의 삶이 나와 함께하던 때에서 얼마나 변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그대로인지, 당신들은 이전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사람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질기게 살아남으면 어떻게 되는지가 궁금했다.
사실 그 둘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길거리에서 무심코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 보고 싶었다. 똑똑 엄마 나 미정이야. 하고 대놓고 찾아가긴 싫었다. 흥신소 아저씨가 기분이 내킬 만큼 돈을 짭짤하게 내고 바다 내음을 수소문해 아빠를 찾아가기도 싫었다. 십 년쯤 지난 지금. 혹은 앞으로 십 년 더 있다가. 내가 나의 모습인 채로도 그들이 나를 미정이로 알아볼지. 그것이 궁금했다. 당신들이 낳고 내가 찾아간 나. 나는 이미 당신 몸 밖으로 나왔는데도, 당신으로부터 내가 나왔다는 걸 부정당할까 봐. 잘린 탯줄에서 이미 인연이 끊겼을까 봐. 그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우스웠다. 누가 먼저 집을 나왔는데. 누가 먼저 울음을 터뜨렸는데. 누가 먼저 가쁜 호흡을 쏟아냈는데.
미정은 그들이 낳아준 딸로 살아갈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애초에 딸로 태어난 적이 없을 것이다. 미정은 그들의 아들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집을 나오던 날 엄마가 미정이 침대 밑에 숨겨둔 바지 교복을 움켜쥐고 올리던 기도를 생각한다. 엄마는 살려달라고, 살려달라고 빌고 있었다. 바지 안감에는 미처 지우지 못한 갈색 핏자국이 드문드문 말라붙어있었다. 바지 교복을 여러 벌 살 돈은 없어서 하나만 주야장천 입느라 헤진 무릎에 엄마가 얼굴을 묻던 것도. 뒤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내가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한 채로 연신 살려달라는 말만 반복하던 엄마의 불쌍한 기도를 생각한다. 아니 저런 일방적인 절규도 기도라고 할 수 있나. 아니지, 기도라는 건 다 일방적인 거 아닌가? 그때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기억이 났다.
이상한 딸을 낳은 자신을 살려달라는 건지, 불쌍한 우리 미정이를 살려달라는 건지. 둘 중 어느 쪽인지도 모르겠고, 둘 중 어느 쪽이어도 미정은 그것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문을 열고 도망쳤다. 그 집에 있던 것 중 미정이라는 이름만 가진 채로. 달리고 또 달리고 달려서. 누군가의 딸이어야만 했던 그 집에서 멀어졌다.
그런데 어떡하지. 그날 이후로 미정이 오른 피난길에는 끝이 안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