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예술 시장의 정의(正義)를 그린 어느 선언에 관하여
Frieze 매거진 217호 (2021년 2월 23일 발행)
제목 아티스트들은 작품 판매 계약으로 판을 뒤집을 수 있는가
원제 Can Artists Use Their Sale Contracts to Game the System?
저자 로렌 반 하프텐-시크(Lauren Van Haaften-Schick) | 번역 조현주
*배너 이미지 : 1971년 아티스트 계약의 스케치 (출처 : MoMA)
1971년 3월, 뉴욕의 한 독립 출판사는 전면에 굵직한 글씨체로 ‘아티스트의 소유 권리 양도 및 판매 계약’ 이라 쓰인 포스터를 찍어냈다. 포스터의 앞면에는 획기적인 행보를 이어왔던 전(前) 아트 딜러이자 개념 미술 큐레이터 겸 출판인인 세스 시겔롭(Seth Siegelaub)이 “흔히 알려진 예술계의 불공정성 중 일부”를 설명하는 선언문이 쓰여있었다. 그리고 그 뒷면에는 꽤나 난해한 법률 용어들로 당시 젊은 변호사였던 로버트 프로잔스키(Robert Projansky)가 예술계의 부조리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담아 19개 조항을 적어 넣었다. 그 조항들에는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작품이 전시되는 것을 거부할 권리, 자신의 작품을 누가 구입한 것인지 알 권리, 그리고 특히 아티스트가 작품의 사용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고, 또 그것이 미래에 갖게 될 가치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작품의 모든 재판매 수익의 15%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되어 논란이 되었다.
곧 ‘아티스트 계약’으로 알려지게 된 이 기념비적인 간행물은 인지도나 작품 분야에 상관 없이 모든 아티스트들이 작품을 직접 판매하거나 차후에 그 소유권이 이전될 때의 계약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콜렉터와의 합의 내용을 표준화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5%의 높은 아티스트 로열티는 이전의 예술품 관련 계약들에서도 책정된 바 있었는데, 설치예술가 에드 키엔홀즈(Ed Kienholz)가 1969년에 사인한 계약과 세스 시겔롭이 회원으로 발을 들이기도 했던 악명높은 사회운동 단체 예술노동자연합(Art Workers’ Coalition)의 계약들이 그 예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례들과 달리 1971년의 아티스트 계약이 예술가의 경제적 권리와 재산권에 대한 대대적인 논의의 중심에 놓였던 것은 문서의 내용을 여러 언어로 번역하고 포스터의 형식으로 복사해 널리 배포되도록 한 시겔롭의 홍보 전략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 아티스트 계약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971년 5월에 예술노동자연합이 발행한 '예술 노동자 뉴스레터'(Art Workers Newsletter)의 한 기사를 통해 이 계약이 아티스트와 콜렉터 사이의 현실적인 권력구도를 고려하지 않아 자신의 작품을 두고 실제로 그러한 계약을 체결하고 이행할 수 있는 영향력과 충분한 자원을 갖고 있는 아티스트들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또한 개개인의 아티스트에게 돌아가는 혜택만을 강조한 계약의 조항들은 더 큰 결함으로 받아들여졌다. 예술노동자연합의 일부 회원들은 작품의 재판매에서 아티스트가 얻는 로열티는 그들이 추구하는 더 전반적이고 근본적인 경제적 평등을 아주 한시적으로만 구현하는 임시방편이라고 생각했다. 예술노동자연합은 1970년 3월에 발표한 요구 성명에서 재판매 로열티를 언급했지만, 예술 시장을 통해 발생하는 부(富)를 공동체적으로 재분배하자는 계획 또한 같은 성명을 통해 발표했다. 이를 위해 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예술가들의 작품을 재판매할 때 로열티 대신 세금을 징수해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살아있는 예술가들을 위해 사용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또한 그들에게 이와 같은 계획은 예술가들이 “모든 사람에게 보장되는[…] 최저 소득”을 확보할 때까지만 필요한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의 비판론자들에게 시겔롭과 프로잔스키가 설계한 계약은 부(富)의 재분배라는 시대의 선(善)을 간과하는 것으로 비춰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시겔롭과 프로잔스키의 아티스트 계약은 일반적인 관행이 되지는 않았지만, 후대의 많은 예술가들이 (그들과 협력하는 아트 딜러, 혹은 변호사들과 함께) 계약의 내용을 인용하고 또 새롭게 사용했으며, 로열티에 대한 조항은 계약의 개정판들에도 수차례 포함되었다. 경제적 정의를 향한 예술 노동자 뉴스레터의 주장을 반영하려는 노력도 전개되었다. 1992년의 캐디 노랜드(Cady Noland), 2019년의 나리 와드(Nari Ward)가 사인한 계약들은 콜렉터가 작품의 재판매를 통해 얻은 이익의 전액 혹은 일부를 예술가가 지정한 자선 단체—이 둘의 경우 각각 '노숙자를 위한 파트너쉽(Partnership for the Homeless)'와 '보워리 미션(Bowery Mission)'을 지정했다—에 기부해야한다는 조항을 포함했다. 2019년에 나(저자 로렌 반 하프텐-시크)는 카디스트(Kadist) 소속의 큐레이터 조셉 델 페스코(Joseph del Pesco), 변호사 로렌스 아이젠슈타인(Laurence Eisenstein)과의 협력 하에 1971년의 아티스트 계약을 콜렉터가 재판매 수익의 15%를 예술가가 선택한 자선 단체에 환원하도록 하는 조항을 넣어 개정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아티스트가 자신이 운영하는 자선 단체, 혹은 자선 경매나 판매 등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함에 따라 작품이 갖는 경제적 생산력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까지 뒷받침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시스템은 아티스트가 본인의 개인적인 삶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비용의 측면은 크게 고려하고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고 보여진다.
팬데믹의 여파로 미국과 여타 국가의 예술 재단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아티스트들을 위해 자금의 재분배를 제안했던 예술가노동연합처럼 긴급 재난 지원금을 새롭게 설치하거나 그 투자 비중을 늘리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들은 일시적인 시도에 그치고 있다. 여전한 부(富)의 쏠림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근본적인 재분배의 움직임은 미미하다. 잠정적 해결책들로 위태로운 상황을 근근이 해결하려 하기보다, 판을 뒤집기 위한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이다. 이 다음에 닥칠 비상 상황에는 무엇이 우리의 삶을 지탱하게 될 것인가? 예술 시장의 재정적 흐름과 이를 주도하는 법적 장치들에 어떤 방향성을 부여할 것인가? 권력과 자원의 재분배는 협상 테이블에 앉은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희생을 바탕으로 하니 말이다. 되짚어보며,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애초에 15%로 충분했던 적이 있었던가?
*1971년 '아티스트의 소유 권리 양도 및 판매 계약' 원문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