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a Moment - 잠시, 그리고 영원히
"2025년의 마지막 페이지에,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빛과 제 마음의 물결을 나란히 놓아봅니다.
올 한 해 브런치를 통해 맺어진 소중한 인연과 제 글에 마음을 보태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띄웁니다. 여러분 덕분에 저의 2025년은 비로소 선명한 색채로 완성되었습니다."
올해 초 오랜만에 만난 친구로부터 탁상용 캘린더를 선물 받았다. 화가의 이름은 생소했지만 그림의 고요한 아름다움이 자꾸 눈길을 끌었다. 얼마 후 '앨리스 달튼 브라운 회고전' 소식을 접하면서 캘린더를 다시 살펴보며 전시를 기다리게 되었다.
캘린더를 절반이나 넘긴 한여름 어느 날, 전시장을 찾았다. 더현대서울 갤러리는 지극히 현실적인 백화점 공간을 지나 들어서는 순간,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묘한 매력이 있다.
전시장 입구에 드리워진 긴 커튼을 걷고 들어가는 행위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았다. 백화점의 번잡함은 얇은 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신기루처럼 멀어진다. 커튼 너머로 언뜻 비치는 푸른 바다는 이곳이 현실과 예술이 교차하는 지점임을 말해준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Alice Dalton Brown, 1939~ )의 예술 세계는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는 결단에서 시작되었다. 193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난 그녀는 코넬 대학교(Cornell University)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후, 본격적인 회화작업을 독학으로 시작한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화업(畵業)을 시작하던 1960-70년대 뉴욕 예술계는 남성 작가들이 주도하는 추상의 물결이 거대한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보다 형체를 알 수 없는 모호함이 곧 현대 예술의 정점으로 추앙받던 시기였다.
전시된 작품들의 변화는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초기작에는 추상적 이미지가 등장하지만, 이내 지금의 화풍으로 정착해 가는 과정을 선명히 보여준다. 주류라는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 역시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비로소 자신만의 색채를 발견하고 단단히 지켜냈다.
그녀는 영상 인터뷰를 통해 '당시 예술계는 모두가 추상을 말했지만, 내게는 그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라고 고백한다. 주류가 정해준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예술가에게 고독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결국 그녀는 타인의 목소리가 아닌 자신이 진정으로 반응하는 대상, 즉 '빛'과 '현실의 풍경'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이후 그녀는 세 아이를 키우는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만의 구상회화(Figurative Painting)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시대의 유행이 거창한 철학을 담아낼 때, 그녀는 집 안의 작은 공간에서 창가에 비치는 자연광의 미세한 변화를 추적한다. 직접 촬영한 수많은 사진을 정교하게 조합하여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이상향을 구현해 내는 그녀의 방식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선 치열한 창조의 과정이다.
시대의 유행보다 자신의 내면을 더 신뢰했던 이 조용한 확신은 그녀의 작품에 독보적인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주류의 소음에서 벗어나 찰나의 빛에 집중했던 그녀의 선택이, 오늘날 우리에게 '잠시 그리고 영원히(In a Moment, Forever)'라는 이름의 고요를 선물한 셈이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예술 세계를 관통하는 가장 극적인 변화는 시선의 이동이다. 초기작에서 그녀의 눈은 주로 집의 외부(Exterior)에 머물렀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그려진 작품들은 건물의 외벽, 정교한 기둥, 그리고 그 위로 쏟아지는 강렬한 햇살이 만드는 기하학적인 그림자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이 시기의 시선은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둔 관찰자의 그것에 가깝다. 건축물의 구조적 완벽함에 집중하며 빛이 빚어내는 형태의 질서를 탐구하던 시기이다.
한낮의 빛은 사선으로 길게 늘어지며 그림자라는 무늬를 그려낸다. 그녀의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일상의 평범한 귀퉁이는 비로소 고유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초기작들에서 화가는 건물의 외벽에 집중했다. 맑은 날, 목조 건물의 하얀 난간이나 분홍빛 벽면에 내려앉은 햇살은 서늘하리만큼 날카로운 그림자를 빚어낸다. 이 시기의 그녀는 빛이 사물의 형태(Form)를 어떻게 정의하고 분절하는지, 그 기하학적인 질서를 집요하고도 다정한 선으로 추적하고 있었다.
재현된 공간의 벽면에 드리워진 그림자 존재처럼, 우리 삶의 그늘 또한 풍경을 완성하는 필연적인 존재임을 깨닫는다.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이 공간에서 나는 비로소 화가가 발견한 '영원한 고요'의 실체를 마주한다.
아치형 구조물과 레이스처럼 섬세하게 드리워진 그림자, 그리고 온화한 분홍빛 벽면은 마치 작가의 사적인 공간으로 초대받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캔버스 속에 머물던 고요한 공간이 전시장이라는 물리적 현실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이 입체적인 풍경의 어느 구석에선가, 여전히 붓을 든 그녀가 묵묵히 빛을 기록하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착각에 빠져든다.
1990년대에 들어서며 그녀의 화풍은 비로소 완전한 성숙기에 접어든다. 밖에서 집을 바라보던 시선은 이제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것으로 그 방향이 바뀐다. 안과 밖의 경계에 서 있던 그녀의 예술 세계는 이제 호수와 바다가 펼쳐지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인 평화를 뜻하는 라틴어 <Pacem> 앞에서는 한동안 멈춰 서 있었다. 커튼 사이로 부서지는 빛, 창밖의 푸른 바다, 그리고 반사된 그림자가 바닥에 내려앉는 장면은 우리 마음에 가득한 고요를 채워주었다.
이러한 시선의 전이는 작품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 놓는다. 날카롭던 건축물의 선은 얇은 커튼의 일렁임에 가려 부드러워지고, 정적인 벽면에는 나뭇잎의 그림자가 살아있는 듯 생동한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온 시선은 이제 사물의 외형을 넘어 그 사이를 통과하는 바람과 빛, 그리고 물의 흐름이 만들어낸 투명한 색채를 담아내기 시작한다.
이것은 단순한 구도의 변화를 넘어 삶을 수용하는 화가의 시선이 깊어진 결과이다. 대상을 정밀하게 분석하던 관찰자의 시선은 이제 일상의 평온을 누리는 따뜻한 안착(Settling)으로 나아간다. 물리적 공간의 이동을 넘어 화가의 내면이 확장되는 과정을 목격하는 일은 관람객에게도 깊은 위로를 건넨다.
주류 예술계의 소음에서 벗어나 묵묵히 자신의 일상을 성소로 가꾸어온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깊어진 시선의 기록이다.
수많은 작품이 태어난 작가의 공간을 재현하였다. 앨리스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고뇌하며, 때로는 가족의 일상과 숨결 속에서 작업을 이어왔다. 한 점의 그림이 완성되기까지 차곡차곡 쌓여온 여정의 여운이 남는다.
https://youtu.be/Cy2s4Aq93cg?si=1zwFqqz2nYRT_ALX
이탈리아 로마의 아카데미(성)에서 마주한 황금빛 찰나이다. 밖을 응시하던 작가의 시선이 대자연의 고요함과 만나는 지점이며, 우리를 캔버스 너머의 평온한 공간으로 초대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캔버스 위에는 늘 두 주인공이 공존한다. 화가가 그리고자 했던 '실체로서의 대상', 그리고 대상이 만들어낸 '그림자'라는 또 다른 존재다. 그녀의 화폭 속에서 그림자는 풍경의 깊이를 완성하는 독립적인 주인공으로 당당히 자리한다.
그녀의 그림을 응시하다 보면 우리의 인생 역시 이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삶에는 늘 간절히 원하던 빛나는 순간과, 그 뒤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그림자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그림자를 빛의 반대편에 선 어둠으로 읽지 않는다.
오히려 그림자는 ‘원 플러스 원(1+1)’과 같은 존재에 가깝다. 나만의 ‘원함’을 구했을 때 기어이 따라오고야 마는 예기치 못한 ‘덤’인 셈이다. 이 선물은 마음이 머무는 자리에 따라 매번 다른 무늬로 일렁이며, 인생의 풍경을 한층 깊이 있게 만든다.
삶의 고요는 빛과 함께 찾아온 ‘그림자라는 덤’까지 기꺼이 껴안을 때 완성된다. 빛과 그림자가 충돌하고 섞이며 빚어내는 예기치 못한 변주를 받아들일 때, 인생이라는 캔버스는 비로소 깊고 온전한 풍경이 된다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져 만드는
이 찬란한 이중주 속에서,
나는 어떤 풍경을 담고 싶은 걸까.
나의 인생이라는 캔버스는 지금,
어떤 무늬로 깊어지고 있는 걸까.
나의 풍경을 깊어지게 한,
깊어지게 할 그림자들을
다시 소중하게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