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곧 아티스트이다'
"관객은 예술가의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소비자가 아닌
작품의 의를 만들어내는 생산자이다.
그들이 곧 작가이자 아티스트이다.
나의 역할은 그들이 생각할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일 뿐이다."
- 올라퍼 엘리아슨
현대미술이 난해하다고들 한다.
보는 즉시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그동안 우리가 보는 즉시 이해되는 작품들에만 익숙해져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보고 머리로 이해하는 감상방식이 일반적이었다.
매우 정적이었다.
이런 관습에 질문을 던지는 예술가가 있다. 동시대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로 손꼽히는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이다. 그의 작품 앞에서 관객은 천장을 향해 드러눕기도, 춤을 추기도, 요가와 명상을 즐기기도 한다. 관객의 참여가 있어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그의 예술 세계는 오감을 동원한 생생한 경험 그 자체다.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은 1967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태어났다. 그가 네 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아버지는 자신의 고향인 아이슬란드로 돌아갔다. 어린 시절 그는 덴마크에서 자라면서도 방학마다 아버지가 있는 아이슬란드의 거칠고 광활한 대자연을 마주했다.
태초의 시간을 간직한 채 끓어오르는 화산 지형, 메마른 대지를 덮은 두터운 이끼, 거대한 중력을 거스르지 않는 폭포, 그리고 대기를 투명하게 가로지르며 시시각각 표정을 바꾸는 북유럽의 빛. 이 원초적인 풍경들은 훗날 그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재료가 되었다. 그는 도시에 살며 무뎌진 우리의 감각을 다시 깨워내기 위해서 미술관이라는 인위적인 공간 안으로 그 기억의 조각들을 불러낸다.
10대 시절, 비보잉(B-boying)에 깊이 빠져 덴마크 챔피언이 되기도 했던 경험은 그가 '공간 속에서 움직이는 신체'와 '관객의 동선'을 중요하게 여기는 예술가로 성장하는 토대가 되었다.
그의 예술세계는 뮤직비디오에서 거울과 빛, 춤을 활용하며 본인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사실 그의 예술세계는 훨씬 방대하다. 빛과 물, 안개와 빙하와 같은 자연을 재료로 쓰기도 하고, 조각, 설치, 미디어아트, 건축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활동을 이어간다.
엘리아슨은 시시각각 변화하다 결국 녹아 사라지는 빙하의 순간을 사진이라는 매체로 포착했다. 이는 훗날 그가 실제로 빙하를 도심 한복판으로 가져온 '아이스 워치(Ice Watch)' 프로젝트의 모태가 되기도 한다.
주제와 장르의 한계가 없어보이는 올라퍼 엘리아슨의 예술세계를 하나로 묶어주는 키워드는 바로 '관객'이다.
오감을 동원한 관객이 '참여'하고 '경험'하는 여백을 작품에 포함시켜놓음으로써 그의 작품을 완성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뛰어난 기술력이 필수적이다.
이 작품은 우리가 매일 오르내리는 평범한 계단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는 순간, 풍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천장 전체가 커다란 거울로 덮여 있기 때문이다.
계단 난간에는 반쪽짜리 동그라미인 '반원' 모양의 전등들이 제각기 비스듬하게 매달려 있다. 이 기울어진 반원들은 우주 공간에서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들의 궤도를 의미한다. 천장의 거울은 이 반쪽짜리 빛을 비추어 비로소 완벽한 '동그란 원'으로 완성한다. 엘리아슨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행성들의 질서를 미술관이라는 구체적인 장소에 옮겨왔다.
결국, 나는 발바닥으로는 단단한 계단을 딛고 있지만, 거울을 보는 눈은 우주 허공에 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땅을 딛고 있다는 확신과 우주를 유영한다는 착각이 머릿속에서 기분 좋게 뒤섞이는 순간. 엘리아슨은 이 낯선 혼란을 통해 우리를 일상의 중력에서 해방시켜 광활한 우주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빛은 사물을 보이게 하는 근원이자,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매 순간 형태를 바꾸는 가장 유연한 재료다. 북유럽의 길고 짙은 어둠 속에서 자란 그에게 빛은 단순한 물리적 현상을 넘어, 세상을 감각하게 만드는 경이로운 생명력 그 자체였다.
올라파 엘리아슨은 1989년부터 1995년까지 왕립 덴마크 미술 아카데미에서 수학하며 빛의 굴절과 반사 등 과학적인 원리에 관심을 두었다. 졸업 후 예술적 에너지가 넘치던 베를린으로 이주, 1995년 자신의 이름을 딴 '스튜디오 올라퍼 엘리아슨(Studio Olafur Eliasson , SOE)'을 설립하며 본격적인 실험을 시작한다.
'스튜디오 올라퍼 엘리아슨(Studio Olafur Eliasson)의 구성원들은 단순히 작가의 조수를 넘어, 약 100여 명에 달하는 구성원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정교한 협업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Architects & Designers (건축가 및 디자이너)팀은 거대한 설치 미술품이 공간과 맺는 관계를 설계하고, 구조적인 안정성을 검토한다.
Craftspeople & Technicians (장인 및 기술자)팀은 금속, 유리, 목재 등 다양한 재료를 다루며 아이디어를 물리적인 실체로 구현한다.
그런가하면 빛의 물리적 특성, 기하학적 원리, 색채 이론 등을 심도 있게 연구하여 작품의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는 Scientists & Researchers (과학자 및 연구원)팀이 있다.
Art Historians & Archivists (미술사학자 및 기록물 보관 전문가)팀은 작품의 철학적 배경을 정리하고, 모든 작업 과정을 기록하며 전시 기획을 지원한다.
이 많은 식구들을 위한 Kitchen Team (주방 팀)에는 전속 요리사들이 상주하며 모든 구성원에게 유기농 채식 식단을 제공한다. 함께 식사하는 문화를 통해 부서 간의 경계를 허물고 영감을 공유한다.
엘리아슨은 이 전문가 집단을 '생각하는 탱크(Thinking Tank)'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 사람의 천재성에 기대기보다, 다양한 시선이 모여 지각의 한계를 시험하는 거대한 실험실인 셈이다.
연구소의 팀원들의 구성을 보면, 그가 추구하는 예술세계를 가늠하는 것도 쉽지 않으나 예술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는 그의 예술관은 놀랍기만하다.
그의 예술은 한 개인의 깊은 고뇌를 넘어, 다양한 지성이 모여 빚어낸 웅장한 교향곡과 같다. 건축과 과학, 요리까지 아우르는 이 거대한 실험실은 혼자서는 닿기 어려운 감각의 영역을 함께 탐구하며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확장한다. 예술은 이토록 유연하게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연결될 때,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음을 그는 자신의 스튜디오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는 아름다운 설치 미술에 머물지 않고, 환경 문제와 사회적 실천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엔지니어 프레데릭 오테센과 함께 설립한 사회적 기업 리틀 선(Little Sun)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전력망이 닿지 않는 지역 사회와 협력하며, 모두에게 깨끗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알리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2019년 엘리아손은 유엔개발계획(UNDP)으로부터 재생에너지 및 기후변화 대응 분야 친선대사로 임명되었다.
보통의 예술이 완벽한 환상을 구축하여 관객을 압도하려 한다면, 엘리아슨은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그는 무지개를 만드는 노즐과 태양을 띄우는 전선, 안개를 뿜어내는 기계 장치들을 투명하게 노출한다. 이것은 기계가 만든 인위적인 현상임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그 안에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마주한다. 장치를 숨기지 않음으로써, 그는 우리가 느끼는 감각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그리고 그 감각이 얼마나 실재하는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그의 작품 제목에는 유독 '당신의(Your)'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당신의 무지개 파노라마(Your Rainbow Panorama)', '당신의 행성 모임 (Your Planetary Assembly)',
'당신의 무지개 빛 (Your rainbow light)' 등이다.
이는 예술의 마침표를 찍는 주체가 작가가 아닌, 그 자리에 서 있는 관객임을 명확히 하는 선언이다.
작가는 단지 현상을 제공할 뿐이며, 그 현상을 감각하고 해석하여 예술로 완성하는 권한은 오롯이 관객에게 있음을 시사한다. 그의 공간에서 관객은 수동적인 감상자가 아닌, 작품의 본질을 구성하는 핵심 주체가 된다.
덴마크 오르후스Aarhus 미술관 옥상에 설치된 150미터 길이의 원형 산책로이며 그의 대표적인 공공 예술 작업이다.
무지개 빛깔의 유리 벽을 통해 도시 전체를 내려다보며 걷게 된다. 시시각각 변하는 도시의 풍경을 감상하고 같은 경험을 나눈 사람들과 함께 공간의 일부가 되어 작품을 완성한다.
어떤 색의 유리를 통과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의 온도는 뜨겁게도, 혹은 차갑게도 변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 각자의 '필터'가 풍경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 몸소 체험하게 하는 지각의 실험실과도 같은 공간이다.
공간을 함께 만들어가고, 주변 환경을 자아, 공동체, 그리고 세계에 대한 더 큰 담론의 일부로 경험하도록 초대하는 작품이다. 영국 옥스퍼드 북부의 신규 혁신 지구인 '옥스퍼드 노스(Oxford North)' 의 팔라이즈 공원Fallaize Park 곳곳에 펼쳐진 여덟 개의 유리 다면체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시간을 보내고, 서로 공간을 공유하도록 이끌어준다. 주거, 교육, 과학 시설이 어우러진 이 지역에 자리 잡은 이 작품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방문객을 맞이한다.
공원의 구불구불한 산책로를 따라 배치된 다면체들은 태양계 모형에서 영감을 받았다. 색상은 수성부터 화성, 해왕성에 이르기까지 망원경으로 관측한 행성들의 주요 색조에서 가져왔으며 조명이 켜진 이 다면체들은 공원을 거닐 때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벽면을 가득 채운 작은 유리 구(球)들은 각각 하나의 렌즈 역할을 한다. 관객이 이 작품 앞에 서면, 수천 개의 유리알 속에 각기 다른 각도로 굴절된 무지개들이 맺힌다. 관객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수천 개의 유리알 속 무지개는 일제히 그 색과 형태를 바꾼다. 내가 멈추면 빛도 멈추고, 내가 움직이면 빛도 살아난다.
결국 이 벽면을 채우는 '당신의 무지갯 빛'의 완성자는 그 앞에 서서 몸을 움직이는 바로 '당신'이라고 말한다. 관객의 움직임에 의해 작품이 변하며 다르게 보이는 전형적인 시도이다.
엘리아슨의 예술 세계에서 '본다'는 행위는 곧 자신을 향한 성찰로 이어진다. 특히 만화경이나 거울 장치를 활용한 작업에서 관객은 조각난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시선을 응시하게 된다.
결국 그의 작품은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를 대면하게 하는 거울이다.
이러한 성찰의 정점은 거대한 회전 거울 설치작인 '천천히 시간을 가져요'에서 드러난다. 천장에 매달린 커다란 거울이 아주 느린 속도로 회전하며 전시장 전체와 그 안의 관객을 비춘다. 거울의 움직임에 따라 바닥과 벽, 그리고 그곳에 서 있는 나의 위치는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관객은 거울 속에서 흔들리는 자신의 형상을 보며,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스스로의 신체를 낯설게 감각한다.
제목 그대로, 천천히 시간을 들여 나를 투영해 보는 지각의 장(場)이 펼쳐지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멈춰있는 대상을 내가 움직이며 바라보는 방식에 익숙하다. 하지만 이 작품 앞에서는 그 관계가 뒤짚히는 생경한 경험을 하게된다. 마치 누워 있는 내가 하나의 작품이 되고, 정작 작품이어야 할 거울이 움직이며 나를 관찰하는 관람자가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이어지는 '별 만화경' 역시 시선의 방향을 내부로 돌려놓는다. 관객은 조각난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눈동자와 마주하며, 대상을 바라보는 '보는 자'로서의 자신을 마주한다.
가끔 서랍 깊숙이 넣어둔 오래된 만화경을 꺼내 본다. 한쪽 눈을 감고 가까이 대면, 색유리 조각과 구슬들이 만드는 미세한 움직임이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가는데 찰나의 순간이동이자 즐거운 환상이다.
하지만 엘리아슨은 이 현란한 주인공인 색유리 조각과 구슬들을 과감히 치워버렸다. 화려한 무늬가 사라진 자리에는 이제 거울에 반사된 나의 조각들만 남는다.
익숙한 즐거움을 걷어낸 만화경 속에서, 우리는 즐거운 환상 대신 냉정하게 현실적인 나 자신과 대면한다. 그는 관객이 익숙한 관점에서 벗어나길 원한다. 거울에 반사되어 수만 개로 쪼개진 상을 보며, 내가 믿어온 '실재'가 얼마나 단편적이고 주관적인지 몸소 체험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엘리아슨은 1997년 이후 설치와 조각, 사진과 영화를 넘나들며 전 세계 미술관에 자신의 질문들을 던져왔다. 2016년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세상의 모든 가능성' 전시는 그 질문들이 무지개의 형상으로 구현된 자리였다. 1993년 작가는 이 작품에 '뷰티(Beauty)'라는 이름을 붙였으나, 리움에서는 '무지개'라는 이름으로 관객 앞에 섰다.
어두운 전시장, 천장에서 뿜어내리는 미세한 물방울이 조명을 머금고 신비로운 빛의 막을 형성한다. 미술관이 건넨 투명 우산을 받쳐 들고 그 안개 속으로 들어서던 순간, 우산 위로 떨어지는 미세한 진동과 눈앞에서 부서지는 빛의 파편들은 지금도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예술이란 결국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나의 움직임이 더해질 때 비로소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나는 것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우리는 대개 공기의 존재를 망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물 안개가 가득한 그 공간에서 나는 비로소 공기가 피부를 감싸는 밀도 높은 실체임을 깨달았다. 미세한 물방울과 조명이 어우러진 빛의 지각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감각을 일깨워주었다.
자연에 대한 관심은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엘리아슨을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린 것은 2003년 런던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의 작업이었다. 과거 거대한 발전용 터빈들이 놓여 있던 터빈 홀(Turbine Hall)은 길이 155미터, 높이 35미터에 달하는 압도적인 규모의 전시장이다. 작가는 이 거대한 산업의 유산 안에 인공 태양을 띄운 '더 웨더 프로젝트(The Weather Project)'를 선보였다.
수백 개의 단색광 램프와 거울, 가습기가 만들어낸 거대한 황금빛 공간 앞에서 관객들은 엄숙한 감상을 버렸다. 사람들은 차가운 기계의 온기 대신 인공 태양이 뿜어내는 기묘한 경외감에 젖어들었다. 바닥에 누워 천장 거울 속의 자신을 확인하고, 낯선 이들과 나란히 누워 이 거대한 자연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되었다. 미술관은 단순한 전시장을 넘어 타인과 연결되는 광장으로 탈바꿈했다. 예술이 어떻게 공공의 지각을 흔들고 사람들을 묶어낼 수 있는지 증명해 보인 셈이다.
2024년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MOCA) 게펜 컨템포러리에서 열린 전시 'OPEN'에서 엘리아슨은 미술관과 외부 세계를 연결하는 대규모 현장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전시장에 드리운 거대한 반원의 빛은 미술관이라는 닫힌 벽을 허물고 바깥의 태양과 무지개를 안으로 불러들인다. 전시장 안과 도시 밖의 경계를 지우고, 자연과 인공의 선을 흐릿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반원의 빛이 물리적인 벽을 허물어 경계를 해체한다면, 만화경은 쪼개진 상을 통해 우리가 믿어온 확실성을 무너뜨린다.
만화경이 보여주는 불확실성이란, 내가 지금 보고 있는 풍경이 고정된 진실이 아니라 찰나의 조건들이 빚어낸 우연일 뿐이라는 자각이다. 엘리아슨은 이 흔들리는 무늬를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건다. 세상에 절대적인 정답은 없으니, 그 변화하는 흐름 속에 몸을 맡기고 매 순간 새로운 진실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리라고 말이다.
작가는 이 혼란스러운 틈새야말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가장 정직한 창(窓)임을 역설한다. 빛이 만들어낸 경계의 해체 속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 그 불확실성을 수용하는 것. 그것이 엘리아슨이 제안하는 새로운 지각의 방식이다. 관객을 단순히 보는 자가 아닌, 스스로 의미를 생성하는 '아티스트'로 정의하는 그의 철학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엘리아손은 수년에 걸쳐 공공 공간에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여러 도시에서 진행된 ' 그린 리버(Green River)' , 건축가 크예틸 토르센과 공동으로 디자인한 2007년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 2008년 뉴욕 해안가에 설치된 '뉴욕시 폭포(The New York City Waterfalls)' 등 이 대표적이다.
강철 비계 구조물 위로 뿜어 올려진 물줄기가 다시 강으로 떨어지는 장관은 도시인들에게 잊고 있던 자연의 소리와 움직임을 일깨워 주었다. 밤이 되면 폭포를 비추는 조명이 켜지며 낮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며 어둠 속에서 하얗게 쏟아지는 물줄기는 도시의 불빛과 어우러져 더욱 초현실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엘리아슨의 시선은 이제 기후 위기라는 전 지구적 과제로 확장된다. 2014년에는 지질학자 미니크 로징과 함께 그린란드 누크 외곽의 피오르드에서 자유롭게 떠다니는 빙산을 코펜하겐의 공공 광장으로 옮겨와 최초로
'아이스 워치 Ice Watch'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코펜하겐 2014, 파리 2015, 런던 2018)
그린란드에서 가져온 거대한 빙하 조각들을 도시 광장에 시계 방향으로 배치했다. 사람들은 빙하에 귀를 대고 수천 년 전 갇혀 있던 공기가 터져 나오는 소리를 듣는다.
'워치(Watch)'라는 단어는 시계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주의 깊게 지켜본다는 뜻도 품고 있다. 엘리아슨의 작품 앞에서 관객은 시간의 흐름을 목격하는 동시에, 대상을 바라보는 자기 자신을 지켜보는 관찰자가 된다. 시간과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지각의 실험은 완성되는 셈이다.
아이스워치가 수많은 환경미술과 차이점은 자연요소인 빙하와 접촉하는 경험을 제공했다는데 있다. 사람들은 빙하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손으로 빙하를 만지고 빙하가 녹으면서 기포가 터지는 소리에 귀기울이며 기후변화가 바로 우리곁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가 기대하는 것이 각자의 다른 경험과 생각이었듯이 녹아서 점점 작아지는 빙하를 보면서 느끼는 시선도 그래서 각자 다를 것이다.
당신이 곧 아티스트
올라퍼 엘리아슨,
아직도 들여다보고싶은 그의 작품은 끝이 없다.
장르의 경계를 허물며 관객을 이끄는 그의 도전은
우리가 알던 예술의 범위를 훌쩍 넘어선다.
관객의 참여로 비로소 예술의 완성을 추구하는 그로부터
앞으로 또 어떤 경험을 얻게 될지 자못 기대된다.
우리가 예술을 감상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내 안의 잠든 감각을 깨우는 일이다.
어떤 형태로든 자극을 받고 새로운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도록 한 줄기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는 것.
이런 면에서 올라퍼 엘리아슨은 우리에게 '당신이 곧 아티스트'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한다.
관람하는 주체에 따라서 다르게 경험되고 이해되는 그의 작품세계.
그만큼 관람자의 몫이 이토록 크다면,
그것이야말로 관람자로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의 새로운 실험을 기다리게 된다.
본문에 사용된 모든 작품 사진의 출처는 작가 공식 홈페이지(olafureliasson.net)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