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갑자기 꼰대가 되다

내가 나이를 든 걸까

by 무어

지하철에 앉아 있는데 교복을 입은 여고생 두 명이 탔다.


타자마자 욕을 입에 걸고 있다. 한 문장에 욕이 하나쯤 섞이지 않으면 말이 되지 않는 것처럼 들렸다.

키는 150cm쯤 될까 싶은 작은 체구에, 치마는 허벅지 끝까지 과감하게 올라가 있었다. 아이들이 내 앞을 지나칠 때 화장품 냄새가 진하게 흔들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딸을 낳았다면 저 나이쯤 됐을까, 아니면 이미 더 컸을까. 만약 내 딸이 저렇게 다닌다면 나는 어떤 기분일까. 나와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저럴 것 같지는 않지만, 자식 일은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들 하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애초에 인간은 발가벗은 상태로 태어난다. 머리카락 몇 가닥 달고 세상에 나온다. 나이가 들고 사회화되면서 수치심을 배우고, 자연스럽게 남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인생도 편하진 않겠지만, 남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인생 역시 만만치 않다.

저 아이들은 아직 남을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 무리가 세상의 전부이고, 그들이 쓰는 언어와 생각이 절대적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 나이엔 그랬다. 집과 학교를 오가며 만나는 사람들은 늘 비슷했고, 세계는 그 안에 있었다.


세계사 시간에 4대 문명과 세계대전을 배웠지만,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가장 멀리 가본 곳이라곤 시골집이 있는 전라도가 전부였다. 책 속의 유럽과 미국, 중동과 남미는 정말 존재하긴 하는 걸까. 한때는 트루먼 쇼의 주인공처럼, 가짜 세상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한 적도 있었다. 물론 그런 생각은 대학에 입학하고, 자아에 대한 고민이 극에 달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아무튼, 자기 키만 한 세계에 갇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 믿으며 거침없이 행동하는 아이들.

측은하지만, 솔직히 부럽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이 생각만큼 대단하지 않고,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니진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추운 겨울, 솜이 잔뜩 들어간 두꺼운 패딩을 여미고 모자까지 깊게 눌러쓴 채 이른 아침 지하철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 무엇에 쫓기는지 종종걸음으로 다른 칸으로 이동하는 사람들.

그들 사이를 비집고,
여고생들의 욕설이 아무 일 없다는 듯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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