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연애를 알게 된 것은 이모의 전화 통화 때문이었다. 그날이 주말이었나, 방학이었나, 아니면 학교가 끝난 후였나.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나는 방에 있었고 이모는 거실에서 누군가와 전화하고 있었다. 방문을 열어놨었던가? 이것도 정확하지 않다. 이모의 목소리가 들렸고, 나를 인식하는 시선을 느꼈고, 어떤 내용에서 목소리가 작아지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거 하자고 했단다.” 통화 상대가 잘 못 알아들었는지 이모는 두 번이나 말했다. 마지막엔 그래서 엄마가 헤어지자고 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나는 두 번 모두 정확히 들었다.
엄마는 일찍이 아빠를 먼저 보냈다. 먹고 살기 위해 미용 기술을 배워 미용실을 차렸다. 단칸방이 달린 미용실이었다. 단칸방은 생활공간, 부엌, 화장실로 나뉘어져 있다. 화장실에는 화변기만 있고 샤워 공간이 따로 없다. 우리는 좁은 부엌에서 쪼그려 앉아 씻었다. 미용실에는 미용 의자 두 개, 열처리 기계 한 대, 소파, 싱크대, 미용 약품 수납장, 간식 수납장 등이 있었다. 또 미용대회에서 받은 트로피와 그때 찍힌 엄마의 사진도 있었다.
내가 열세 살이 되었을 때, 나와 동생은 교육 때문에 타지역의 이모네 가족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가끔 방학이나 명절에 만나는 사람이 엄마가 되어버렸다. 엄마가 우리에게 오는 일은 잘 없었다. 작은 시골 동네에 스무 개가 넘는 미용실이 있었다. 공식적으로 쉬는 날은 한 달에 두 번이었다. 자의적으로 더 쉴 수도 있었지만 혼자 돈을 벌어야 했던 엄마는 손님을 빼앗길까 봐 그럴 수 없었다. 시외전화 요금이 비싸서 엄마가 핸드폰을 사주기 전까지 원하는 만큼 충분히 연락하기도 어려웠다.
서로 모르는 시간이 생겼다. 같이 살 때도 그런 시간은 있었다. 나는 학교에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하지 않았고, 엄마도 혼자 있을 때 누구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전부 말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예상할 수는 있었다. 나와 동생이 학교에 있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 엄마와 함께했으니까. 엄마의 일터에서 함께 지내고 함께 잠들었으니까. 엄마의 공간이 내 공간이었으니까. 내 친구도, 엄마의 친구도, 미용실 손님도 서로의 관계망 안에 속해 있었으니까. 하지만 떨어져 지내면서 우리에겐 유추할 수 없는, 말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시간이 생겼다.
전에는 내가 엄마의 핸드폰을 마음대로 이용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핸드폰은 방에 두고 일을 했다. 그럴 때 전화가 오면 내가 먼저 발신자를 확인하고 “엄마, ~한테 전화 왔어!” 알려주기도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엄마는 핸드폰을 몸에 지니려고 했고 발신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전화를 받기도 하고 받지 않기도 했다. 이모의 전화 통화 장면이 떠올랐다. 엄마가 핸드폰을 방에 잠깐 놓고 일을 하는 사이, 문자메시지함을 뒤졌다. “사랑해요.” 누군가 엄마에게 보낸 사랑 고백 메시지를 발견했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의 이름을 지금도 기억한다.
저녁 여덟 시 오십 분이면 미용실 ‘싸인볼’을 끄고 ‘샷다’를 내렸다. 아홉 시는 엄마가 씻는 시간. 함께 살 때 엄마는 부엌 미닫이문을 반 틈 정도 열어두고 씻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엄마는 문을 완전히 닫았다. 이어 차례대로 들려오는 소리들. 졸졸, 큰 고무대야에 물 받는 소리, 웅웅, 오래된 환풍기가 돌아가는 소리, 달칵, 라이터 버튼을 누르는 소리. 불투명한 유리에 비친 빨간 불빛과 뚜껑이 닫힌 세탁기에 기대어 있는 실루엣. 새어 나오는 담배 냄새. 수증기가 부엌을 가득 채우고 담배 냄새가 사라질 때쯤 엄마가 등을 밀어달라며 문을 열었다. 비누 향이 나는 따뜻한 수증기 사이로 모른 척할 수 없는 냄새가 났다. 참기가 어려웠던 어느 날 나는 닫힌 문을 열어버렸다. 열리는 문을 멈추려 다급하게 움직이던 발, ‘쾅!’ 발과 문이 부딪치면서 나는 소리, 구멍 뚫린 욕실화 밑창.
야시장이 열리던 날 저녁, 엄마의 가족들과 함께 구경을 갔다. 흔치 않은 날이라 사람들이 많았다. 발 디딜 틈이 없어 엄마 옆에 딱 붙어 있었다. 구경하려고 해도 사람들의 등과 뒤통수만 보였다. 들어가려는 사람과 나오려는 사람이 맞물려 몇 걸음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잠시 서 있는데 누군가 엄마의 어깨를 톡톡 쳤다. 돌아본 곳엔 어떤 아저씨들이 있었다. 술에 취해 반쯤 풀린 눈, 입가에 슬며시 비치던 미소. “왜 저래?” “그냥 그러는 거야.” 앞에 있던 외삼촌을 쳐다봤다. 그는 못 본 것 같았다. 내 시선도 못 느꼈을까? 이번엔 어깨였지만 다음에는? 만약 다른 데를 건드린다면?
음식물 쓰레기 문제로 욕설하며 미용실 안으로 무작정 들어오려던 옆 가게 아저씨. 그는 방 안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도 멈추지 않았다. 쉬는 날이라 손님도 없었고 미용실의 전등도 켜지 않았다. 엄마와 나, 둘 뿐이었다. 엄마가 미안하다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달래며 아저씨를 문밖으로 밀어냈다. 화가 났다. 화가 났는데 끝까지 아저씨를 노려볼 수 없었다. 똑같이 소리칠 수 없었다. 문을 잠그고 돌아온 엄마가 이번에는 나를 달랬다. 별일 아니라는 듯 웃는 엄마의 얼굴, 어떤 대처도 할 수 없었던 굴욕스럽고 무력한 감각, 풀어지지 않는 화를 고스란히 엄마에게 떠넘기는 동시에 스스로가 미워지던 순간.
우리는 여전히 함께 공유하는 시간과 공간이 없다. 서로의 사적인 경험을 물어보거나 먼저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서로를 모른다. 다만 나는 낯선 엄마를 만났던 순간을 기억한다. 엄마가 내게만 엄마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성애적 존재로 인식되는 순간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무례하게 굴어도 되는 존재로 하찮게 여겨지는 순간을, 자신만을 위한 온전한 시간과 공간을 가지고 싶은 한 인간임을 드러내는 순간을.
나는 엄마를 모른다. 엄마를 이름 가진 한 사람으로 대하는 방법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