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종말론 때문에 긴장했었던 1999년 만우절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대가 마이클 베이 감독.(이하 그냥 '감독')
그의 명작들로 세대를 구분할 수도 있는데 후배들이 <트랜스포머 > 세대라면
난 <나쁜 녀석들 >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내 귀에는 "어쩔 거냐고?"라고 들리기도 했던 영화 주제곡까지 대히트를 기록한 <나쁜 녀석들 >.
그다음에 만든 <더 록>까지 흥행신화를 이어가자 감독은 차기작 카메라 앵글을 과감하게 지구밖으로 돌렸다.
그러나 외계 악당을 쳐부수는 이야기는 대선배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인디펜던스 데이>때문에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그보다는 2% 부족하더라도 좀 더 현실감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서 미항공우주국까지 오가며 자료조사를 하던 중 기막힌 소재를 발견하게 된다.
평화로운 지구.
그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별덩어리(행성과 혜성의 차이를 몰라서 그냥 '별덩어리').
지구와 충돌하면 인류는 종말이고 충돌까지 남은 시간은 한 달도 안 된다.
그럼 그 거대한 별덩어리를 어떻게 처리하나?
최첨단 레이저광선이나 핵미사일로?
그럼 러닝타임 얼마 안 나오겠는데?
그렇다. 사람이 직접 그 별에 가서 구멍을 뚫고 폭탄을 심어서 터뜨려야 한다. 그 길밖엔 방법이 없다.
구멍을 뚫어? 지구밖 어느 별 맨땅에?
그 개고생을 누가 연기하나?
그렇다. 개고생이라 하면 <다이하드>의 브루스 윌리스가 최고다.
감독은 바로 핸드폰 연락처 B의 첫 번째를 눌렀고 통화 5분 만에 브루스 윌리스는 오케이 했다.
시나리오, 주조연배우들, 촬영스케줄까지 일사천리로 진행이 이루어졌다.
단 하나, 영화 제목만 빼고..
시나리오 작업 단계에선 우선 가제로 <공포의 별>이라고 해놨지만 TV 주말의 명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구 폭발>은 너무 과한 느낌이었다.
우주의 7인, 지옥의 3주, 다크 스타,..
수십 개의 후보가 등장했지만 맘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다.
한계에 부딪힌 감독은 갑자기 아플 정도로 허기를 느꼈고
'이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하며 노트북을 덮고 단골로 다니던 LA 코리아타운 한정식집으로 향했다.
식당 건물 전체가 한옥 스타일인 것이 너무나도 맘에 들었고, 연못을 사이에 두고 본관과 조금 떨어져 있는
별채에서 먹는 걸 즐겼다.
그날도 별채에 자리 잡고 불고기 정식을 기다리며 연못 속 금붕어를 보고 있는데 맞은편 단체룸에서 말다툼 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귀 기울여 들어보니 중년의 한국 여성들이었는데 결국 그중 한 명이 자리를 나가버렸고 또 한 명이 말리려고 따라나간 뒤에야 볼륨이 줄어드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전부터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약간의 한국말도 가능했던 감독이었지만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직접 밑반찬을 갖고 온 식당 주인 사모님에게 어설픈 한국말로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주인은
살짝 부끄러워하더니 천천히 또박또박 이렇게 말했다.
" 많이 시끄러우셨죠? 죄송해요.
매달 오시는 분들인데.. 다들 친하신 분들이거든요.
근데 오늘 금전적으로 오해가 있었나 봐요.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곗돈 때문에.."
거기까지 듣던 감독은 잠시 멍해졌다가 갑자기 괴성을 지르더니 두 손으로 테이블을 내리치며 벌떡 일어섰고
그 바람에 즐겨 먹던 김칫국의 무 조각이 튕겨 올라 감독의 코를 때렸다.
그렇게도 풀리지 않던 신작 제목에 대한 고민이 밥 먹으러 간 한식집에서 해결된 것이다.
아마.. 곗돈.
<아마겟돈 >
또 다른 전설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밀레니엄을 앞둔 마지막 만우절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