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진짜 바람을 폈을까

우리 가족의 아이러니한 비극에 대하여

by 무근지

도저히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있다. 언제인지 특정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사리 분별이 명확한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 즈음부터 오빠는 아빠가 바람을 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는 그 주장을 처음에 들었을 땐 "....? 그..런......가?" 하다가, 이내 확신했다. 아, 이건 어떤 장면을 단편적으로 보고 빚어진 오해다. 나도 오빠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학교-집-학원의 무한 루프로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그 시절 나는 책을 많이 읽었다. 책을 통해 쉽게 알 수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살고, 대부분의 관계는 우리가 쓰는 언어로 정의되거나 설명하기 어렵다. 어떤 범주로 묶일 수는 있겠지만 예를들어 '가족'이라는 울타리만 해도, 우리 부모님은 두분 다 친모에게 자라지 못하셨다. 이런 것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부모님은 모두 정상 가족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냥 우리는 이런 것들을 굳이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프레임으로 범주화해 인식한다. 시시각각 흘러가는 모든 일들의 팩트를 완전히 가려낼 수도 없고, 내 인생에 개입되지 않는 한 굳이 디테일하게 따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우리 부모님의 성격이나 당시의 정황 상으로는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참 세상 일들은 묘하게도 이치가 맞는 일들이 있다. 이를테면 그 상대자가 남편이 없었던 분이었고, 우리가 성인이 되는 그 시점에 그 분의 새로운 아이가 태어났다. 이런 묘한 부연 설명들은 내가 가진 안전한 프레임을 살살 갉아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럴 이유가 없었다. 물론 그 당시 아빠는 그 분과 자주 어울렸던 것 같지만, 그런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B%B0%94%EB%9E%8C3.jpg?type=w800 <바람 바람 바람>의 한 장면


어찌됐건 내 인생에 중요한 일은 아니었고 그 대화는 금방 내 기억에서 사라졌다. 오빠에게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엥? 그런가?" 정도로 넘어갔던 것 같다. 어쩌면 오랜 세월을 오로지 두 사람끼리만 지낸다는 건 폭력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빠는 가끔 그 분을 집에 데려왔고 한가롭게 만화책을 읽던 나와 인사시켜 주셨다. 그 두 사람의 대화나 상황에서 농밀한 무언가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 분이 낳은 아이 사진도 내게 여러 번 보여 줬다. 직장에서 만난 사람이었는데, 현재는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서 오래 전부터 두분은 만나고 있지 않다. 그리고 지금 우리 엄마와 아빠는 같은 집에서 그냥 평범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다. 우리는 이미 전부 분가해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오빠는 여전히 자신의 인생의 불행한 인과에 있어서 가족의 역할을 개입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몇 년 전에도 '그 일'에 대해 굳건히 믿고 있던 오빠를 보고 이건 좀 기묘하다 싶어 엄마와 목욕탕에 가서 그 일에 대해 물어봤다. 엄마는 피식 웃으며 아니라고 대답했다. 사실 실제로 바람을 폈다고 한다면 어떨까? 그래도 여전히 그 일에 관해선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빠의 그런 행동은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법적 공방이라던가, 수험에 방해가 되는 장기간의 대치 상태라던가, 드라마 등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바람'의 결과는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을까? 목욕탕에서 들은 그 대답을 통해서는 상처와 회한이 느껴지지 않았다. 엄마는 모르게 일어난 일이었을까? 그러기엔 엄마도 그분과 아이의 존재에 대해서 명확히 알고 있었다. 그 외에 다른 영향에 대해서는 내가 짐작할 수가 없다. 아빠는 최근에 정년 퇴직을 하셨고 나나 오빠가 학창시절 그리고 대학을 가기까지 그 관계로 인해 피해본 일은 없었다.


그러나 바로 어제. 나는 다시 충격받고 말았다. 우리는 결혼도 하고 각자의 가정도 꾸린 채로 살고 있는데, 오빠는 그 '일(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어도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여전히 이야기한다. 그 때 얼마나 자신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서, 아빠란 사람의 신뢰를 영원히 회복할 수 없다는 이야기에 소름이 끼쳤다. 20년 가까이 지난, 실제로 검증되지 않은 일에 대하여 말이다.


놀라운 점은 실제로 두 사람이 부딪혀 오해를 정정한 적도 있었다. 오빠는 잠깐의 방황기에 부모님과 크게 싸운 적이 있는데 그 때, 아빠에게 직접 '나 어릴 적에 바람 폈던 거 다 기억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아빠는 카톡으로 가족 단톡방에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다른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그런 일은 없었다고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한다.' 나도 종종 그 일에 대해서 그가 언급할 때마다, 그것은 확실한 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끊임없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오빠는 그걸 완전한 사건이자 우리 가족을 파괴한 주범이라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그리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진실인 것처럼 말했다. 나는 뭐가 오빠를 저렇게 괴롭히는지 알 수 없었고, 어째서 그 이야기를 퍼뜨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기를 바라는 걸까?


세상의 많은 이야기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영원히 와해되지 않는다. 그들은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싸움을 멈추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오빠는 그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말하고, 나는 여전히 그 일은 진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빠는 내 말을 듣지 않는다. 나는 가치관에 혼란이 왔다. 어쩌면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그 일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때나 지금이나 나에게 아무 영향이 없다. 그건 오빠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비극이라고 생각했다. 혹시 나는 더 어릴 때 오빠에게 더 적극적으로 이 일은 사실이 아니며, 부득이한 적개심을 가지지 말라고 설득했어야 할까? 그랬다면 이렇게까지 악화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일이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았든 대체 우리가 무슨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 오빠는 아빠가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기를 바라는 걸까? 나는 이것에 대해 오빠에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 일이 더이상 언급되길 바라지 않았다. 나의 이런 침묵도 오빠가 이렇게까지 믿는 데 일조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사이에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을 진작에 깨달았다.


이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다음 달에 오빠와 가족을 이룬 새언니가 아들의 출산을 앞두고 있다. 나는 아빠를 받아들이지 않는 오빠가 한 아들의 아빠가 된다는 이 운명의 장난에 대해서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그러나 어쩌면 이 새로운 탄생은 그들이 완전히 화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오빠가 부디 그 일로부터 생겨난 상처에 너무 오래 얽메이지 않고, 새로운 가족과 함께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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