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례 이월, 분노

분노는 들끓는 독과 같아서....

by 김무균

그는 요즘 돌아가는 세상일들에 환멸을 느낀다. 텔레비전 뉴스를 안 본지는 꽤나 오래됐다.

하지만 매일 알게 모르게 뉴스는 그의 곁으로 다가온다. 그럴 때마다 그는 자주 분노한다.

분노는 들끓는 독과 같아서....’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타인 때문에 -그들의 뻔뻔함과 부당함,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태도- 우리가 화를 낸다면 우리는 그들의 권력 아래에 놓인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고 자란다. 분노는 들끓는 독과 같아서....”

하지만 그는 분노가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분노의 늪 속으로 빠져들지 않기 위해 그는 세상사 대신 노후를 위해 투자한 주식과 암호 화폐를 생각한다.

(사실 이 때문에 그는 더 자주 분노한다.)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생각하고, 앞으로의 생계를 고민한다.

세상사와 관계없는 책을 읽고, ‘넷플릭스’에서 드라마와 영화를 본다. 그리고 매일 헬스장에 가서 강도 높은 운동을 한다. 그는 차츰 책이 지겹고, 더 볼 드라마와 영화도 없어지게 된다.

운동도 체력적으로 힘들어 쉬는 날이 늘어난다. 그는 어떻게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까 생각한다.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다. 어느새 저녁이 오고 밤이 된다. 밤은 어두워 길고, 새벽은 늘 더디게 온다.

그는 이 밤이 빨리 지나갔으면 한다. 긴 밤도 즐거우면 짧아진다.

그는 오늘 밤 어떤 와인을 마실까 생각한다.

와인을 마시기 위해서는 코르크 마개를 열어야 한다. 그는 늘 이 절차가 번거롭다.

(가끔은 이 절차에 큰 의미를 부여할 때도 있었다.)

스크루캡으로 되어 있는 와인이 있을까 찾는다. 하지만 그의 와인셀러에는 스크루캡 와인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코르크 마개의 와인을 연다.

중심을 찾지 못한 오프너의 끝이 코르크 마개 중간을 뚫고 삐져나온다. 코르크 마개가 부러진다.

그는 조심스럽게 다시 코르크 마개의 중심을 찾아 와인 오프너를 돌린다.

부서진 코르크 조각이 테이블 위에 흩어진다. 이때 병을 탈출한 와인 향(香)이 코끝에 와닿는다.

그는 와인의 향이 무슨 향인인지 헛갈린다. 볼이 넓은 커다란 버건디 잔에 와인을 따른다.

향과 달리 와인의 색깔은 언제나 선명하고 영롱하다. 그는 한참 동안 물끄러미 와인 잔을 바라본다.

그리곤 몇 번 잔을 돌려서 와인 향을 맡아보곤 입술을 열어 약간의 와인을 입안으로 흘려 넣는다.

와인을 잇몸 사이로 밀어 넣고, 혀 위에서 굴려도 본다. 그는 아직 와인이 익숙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익숙해지기 위해서 그는 와인을 더 마셔야 한다 생각하고, 실천한다.

병 속에 와인 대신 공기가 가득 찬다. 그때쯤이면 은근한 취기(醉氣)가 올라온다. 취기는 자라나 꽃이 된다.

그 순간 세상사의 환멸도 망각된다. 가까이 있던 불편한 뉴스도 사라지고, 분노도 사라진다.

파스칼 메르시어 장편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 530쪽, 분노에 대한 프라두의 글

그는 ‘분노는 들끓는 독과 같아서’의 마지막 문장을 떠올린다. “.... 그래서 화창한 평화로움 속에서 우리가 ‘와인’을 마실 동안, 분노의 불길이 이번에는

그에게서 타오르도록.”

그는 오늘 밤은 좀 더 쉽게 잠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커피’ 대신 바꾸어 놓은 ‘와인’이 그렇게 할 것이었다.(2025.2)


※작가노트

분노는 들끓는 독과 같아서....’ 파스칼 메르시아의 장편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 529p에 나오는 ‘아마데우스 프라두의 글’ 중에 나오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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