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술이니 술로 돌아가라! 마치 인생이 그러하듯”
처음에는 엄마 심부름으로 동네 술도가에서 받아오는 노란 주전자의 물탄 막걸리로 시작했다. 국민학교 졸업식날 동창들과 학교 앞 가게에서 몰래 산 말만 샴페인인 싸구려 샴페인을 마신 후로는 술과 인연이 없었다. 쓰고, 시고 밍밍한 저것을 어른들은 왜 한사코 마시는지 몰랐다. 중학교 때는 술을 접한 기억이 없다. 다른 놀 것들이 너무 많았다. 고등학교 3학년 야간자습을 마치고 친구들과 어울려 자전거를 타고 오는 20리 길에 탁구장이 있었고, 늦은 밤에도 술을 파는 가게들이 있었다. 탁구를 한 게임 마친 날 막걸리를 사서는 산 어귀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막걸리를 마셨다. 가끔은 취한 적도 있었다. 맛도 멋도 모르고 그냥 마셨는데, 유치하기 짝이 없는 시절이었다.
대학에서 술은 일상이었다. ‘먹고마시고대학’, 엄마는 늘 ‘먹고대학’이라 불렀는데, 사실은 ‘마시고대학’이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같은 과 친구들과 마시고, 데모 후에는 써클 선후배들과 마셨다. 주로 소주나 막걸리를 마셨으나, 어쩌다 맥주를 마시는 날도 있었다. 휴일과 방학 때는 일부러 학교까지 나가서 술을 마셨다. 덕분에 학교 앞 술집들은 번성했으나, 그들이 부자가 됐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다. 술집마다 손목시계와 학생증이 계산대 서랍에 가득했고, 귀퉁이가 말려 올라간 얼룩진 외상장부 공책은 매일 두께를 더해갔다.
직장에서의 술은 대학시절과 또 달랐다. 양주라는 술이 있었고, 맥주에다 양주를 섞어서 마셨는데, 양주잔에 가득 따른 양주를 맥주잔에 붓고 그 위에 다시 맥주를 고봉으로 가득 따라서 마셨다.(지금처럼 1/3로 채우다 만 폭탄주가 아니었다.) 모름지기 폭탄주는 이래야 했었다. 전설의 10-10, 20-20을 아시는가? 알잔 10잔 폭탄주 10잔은 주당(酒黨)이었고, 알잔 20잔 폭탄주 20잔은 주선(酒仙)이었다. 듣기로 30-30의 주신(酒神)도 있었다고 하나, 나는 보지를 못했다. 직장생활이 길어질수록 마시는 주종과 방식이 다양해졌다. 소주, 맥주, 막걸리, 소폭, 양폭, 블렌디드 위스키, 싱글몰트 위스키, 가끔은 테킬라와 사케를 마시기도 했고, 대부분은 이들을 섞어서 마시기 일쑤였다. 어쩌다가 회사의 높으신 분들과 와인을 마시기도 했는데, 와인은 도대체가 알 수 없는 맛이었다. 돈 주고 왜 이런 것을 마시지? 무진장 술을 마셔댔으나, 제 돈 주고는 마실 술도 마실만한 양도 아니었다. 그 시기에는 ‘법카’라는 지니의 램프 같은 신기한 물건이 있었고, 상사라는 특별한 양조장이 있었다.
은퇴를 하고 나니 술을 마실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만나는 사람이 없으니, 술을 마실 기회가 사라졌고, 어쩌다 모임이 있어 나가면 지갑의 안부를 물어야 했다. 그리하여 집에서 홀로 먹는 독주(獨酒)의 시간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물이 주님을 만나 얼굴을 붉혔다. Water saw its Creator and blushed.”(이 문장 하나로 ‘바이런’이 케임브리지 재학시절 최우수학점을 받았다는데 그 진위여부는 알지 못하겠다.)는 와인을 마셨다. 보르도니 부르고뉴니, 신대륙이니 구대륙이니 공부도 하고(시간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넘쳐났다.), 와인을 사 모으기도 했다. 싼 곳을 찾아다녔으나, 그래도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와인을 마시더라도 값비싼 와인은 딸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값싼 와인만 골라서 먹었다. 이러니 ‘천상의 맛’이라는 좋은 와인의 맛은 알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어찌하랴. 와인은 한번 열면 흘러간 강물이고, 와인셀러에 있는 동안만 자랑이 가능했고, 내 자산이 될 수 있었다.
어느 순간, 와인을 마시기까지의 절차가 번거로워지기 시작했다. 또 와인은 한 번 뚜껑을 따면 2~3일 내에 모두 마셔야만 해 심리적 저항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순간 위스키가 눈에 들어왔다. 위스키도 와인처럼 지식 없이 마실만한 술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와인만큼 또 많은 지식을 필요로 하는 술은 아니었다. 위스키는 장비 없이 손으로 열어서 바로 마셔도 됐다. 2~3일 내에 바로 마시지 않아도 되었고, 6개월, 1년을 두고 마셔도 썩거나 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6개월 정도 에어링을 한 상태가 가장 맛있다고도 했다. 이런 점에서 위스키는 아주 훌륭한 술이었다. 또 위스키는 마시는 방법도 다양해서 니트(neat)로 마셔도 됐고, 물을 첨가해서 마셔도 됐고, 온더락으로 마셔도 됐다. 하이볼로 마셔도 됐고, 칵테일을 해서 마셔도 됐다. 이런 점에서 위스키는 아주 탁월한 술이었다. 알코올 도수가 높아 한 번에 많이 마실 수는 없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그런데 위스키는 대체로 와인보다 구입하는 비용이 비쌌다. 저가의 위스키도 3~4만 원은 했고, 입문용 위스키 대부분도 가격이 10만 원 내외로 고가였다.
지갑의 안부를 묻기가 겁이 날 즈음 어쩌다 한 번 마셔본 사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케는 첫맛이 향긋했고, 뒷 맛은 깔끔했다. 먹기 좋은 단 맛에 알코올 도수도 높지 않았다. 우선 해외직구를 통해 잘 알려진 브랜드의 사케를 몇 병 주문했다. 해외직구를 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가격이 국내가보다 훨씬 싸기 때문이다. 지금 집에는 얼마 전 직구로 받아 놓은 사케가 있고, 주문을 해서 조만간 받아볼 사케도 있다. 새로운 술이 도착하면 바로 마셔볼 생각인데, 무척 기대가 크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 난 후에도 술은 그저 술일 것이었다. 주락(酒樂)은 짧고 후회와 숙취(宿醉)만 길었던 ‘명정(酩酊) 40년’, 그간의 경험에 의하면 그것이 소주든, 맥주든, 막걸리든, 소폭이든, 양폭이든, 와인이든, 위스키든, 보드카든, 테킬라든, 코냑이든 호기심의 충동에서 시작해 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더 이상 일상을 자극할 새로운 그 무엇도 사라지고 남아있지 않게 될 때, 우리는 그냥 처음 시작한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너는 술이니 술로 돌아가라!” 마치 우리의 인생이 그러하듯.(2025.7)
※작가노트
와인을 먹으면서 와인 잔을 새로 샀다. 보르도 잔, 버건디 잔, 화이트 와인 잔, 샴페인 잔. 위스키를 마시면서 샷 잔, 글렌캐런 잔, 온더락 잔, 코피타 잔, 하이볼 잔을 샀다(혹은 위스키를 사면서 증정용으로 받았다). 심지어 최근에는 이동용 위스키 캐리어까지 구입했는데, 위스키잔 4개와 위스키 한 병이 들어갈 수 있다. 사케를 마시게 되면서는 잔을 어떻게 할까?, 고민 중이다. 지금은 그냥 위스키 잔에 마시고 있는데, 사케 잔도 사야 할까? 위스키를 평범한 소주잔에 따라 마시면 고가의 위스키라도 소주같이 친근한 술이 된다. 쏟아도 버려도 그렇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위스키를 위스키 잔에 따라 마시면 위스키가 된다. 쏟으면 피 같은 술이 되고, 버릴 일은 없으니 버릴 걱정은 하지 않는다. 위스키 잔에 소주를 따라 마셔 봤다. 소주가 위스키처럼 있어 보였다. 위스키나 소주 모두 술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으나, 가치는 달라졌다. 예전 공부할 때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는 명제가 있었다. 그때 술로 공부했어야 했다. 사케 잔을 새로 준비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