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나의 위례일지, 10년째 위례에 삽니다.

by 김무균

지리적으로 ‘위례’는 ‘분당’ 위다. 그래서 ‘위래’다. 위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집값은 분당이나 판교보다 아래다. 자족도시로 설계됐지만 업무단지 입주가 요원하고, 지하철 노선이 이어지지도, 생기지도 않아 교통이 불편해서라고 한다. 그나마 최근 지하철 ‘위례신사선’과 위례와 상동을 잇는 ‘삼동선’ 건설이 공론화되고, 내년이면 노면전차 트램이 준공 운영된다고 하는데 이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위례는 역사적으로 한동안 백제의 수도였다. 삼국시대에는 이 지역을 차지하는 자(者)가 패권을 가졌다. 백제, 고구려, 신라가 차례로 이 지역을 차지해 패권을 차지했다. 조선시대에는 임금들의 피난처가 되기도 했는데, 위례신도시 뒷산에 있는 남한산성이 그 역할을 했다. 건국 이후에는 군사시설이 들어섰다. 군부대가 있었고, 미군 땅도 있었다. 군 골프장도 있었는데, 신도시가 들어서고 몇 년 지나자 없어졌다. 대학시절 교련복을 입고 이곳 군부대시설인 문무대에 입소해 일주일 동안 군사교육을 받았다. 그런 시절이었다. 그래도 교련교육 덕분에 군대생활을 45일 단축했다. 한 달 반이라는 기간이 얼마나 긴지는 체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군대 복무기간이 30개월 하던 시절이었다.

어느 봄날, 북위례 장지천변 호수공원

2016년 위례신도시 아파트 입주가 본격화되면서 위례에 살게 됐다. 분양을 신청하기 전까지는 위례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도 못했다. 내가 살던 곳은 서울의 북쪽이었다. 어째 어째 “그런 게 있다던데” 하면서 분양신청을 했는데, 운 좋게도 당첨이 됐다. 물론 몇 년간 아파트 중도금과 입주 잔금을 넣느라고 애들 돌 반지까지도 팔았다. 그런데 어느덧 10년째 위례에 살고 있다. 위례에 살면서 좋은 점은 천혜의 산책, 혹은 등산 환경이다. 뒷산이 남한산성이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사 초기에는 거의 매주 남한산성을 올랐다. 산행할 준비가 따로 필요치 않았다. 두 시간이면 남한산성 남문까지 다녀왔다. 덕분에 병자년 호란과 남한산성에서의 항전(抗戰)에 대해 나름대로 공부했고, ‘남한산성 1636’이라는 ‘브런치북’도 발간했다.


위례는 편의시설을 봐서도 대형쇼핑몰이 있고, 공판장을 비롯해 중소규모의 마트도 여러 개 있다. 식당, 은행, 영화관, 도서관이 곳곳에 있어 생활에 불편함 또한 없다. 게다가 상급종합병원 입주도 확정됐고, 업무지구에도 곧 대기업 종합연구소가 들어올 것이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을 떠나 위례에는 5km에 달하는 ‘휴먼링’ 산책로와 장지천 호수공원과 장미정원, 창곡천 수변공원이 있다. 산책로 옆으로는 마가목, 자귀나무, 산딸나무, 흰말채나무, 개쉬땅나무, 벚나무, 느릅나무, 은행나무 등이 계절마다 모습을 바꾸고, 영산홍, 철쭉, 진달래, 수국, 장미가 자태를 뽐낸다. ‘휴먼링’ 산책로는 봄에는 봄꽃이 만발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봄꽃보다 붉다. 내가 위례에 사는 이유다. ‘어디서 살 것인가?’ “나는 위례에 살고 싶다.”(2025.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