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운명을 개척하는 능동의 길
“바로 이곳이다. 나는 아직 돌아갈 수 있다. 나는 아직 적법성을, 합법성을 저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대단할 것 없는 강(그렇다. 바로 이 대단할 것 없는 강-이탈리아 북동부에 있는 이 강은 고대 로마시대 이탈리아 갈리아와 이탈리아를 나누는 경계였다. 길이는 80km에 불과했고, 폭은 우기의 서울 중랑천보다 훨씬 좁았다. 하지만 누구도 이 강을 군대를 이끌고 건널 수는 없었다. 군대를 해산하지 않고 이 강은 건넌다는 것은 바로 로마에 대한 반란을 의미했다.-이 기원전 1세기, 가까이는 로마와 지중해의 역사를 바꾸고, 멀리는 서쪽의 브리타니아에서 동쪽의 파르티아, 그리고 남쪽의 이집트까지의 역사를 바꾸는 현장이 될 것이었다.)을 건너는 순간, 나는 조국의 종에서 침략자로 바뀐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지난 2년 내내 알고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을 고려하고 기획하고 계획하며 몹시도 애써왔다. 스스로 엄청난 양보를 결심하기도 했다. 심지어 일리리쿰(그리스 북서쪽에 있는 로마의 속주, 현대 알바니아의 드린 강부터 북부의 이스트리아 그리고 동부의 사바강까지)과 1개 군단만으로 만족할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그러는 매 순간, 나는 그들이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들이 내게 침을 뱉고, 내 얼굴을 진흙탕에 문대고,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들 작정임을 알고 있었다. 절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닌 나를, 절대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전락하는 데 동의하지 않을 나를, 이건 내가 바라던 상황이다. 카토 이제 넌 그걸 보게 될 것이다. 넌 내가 조국을 향해 진군하도록 만들었고, 내가 합법적인 대응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폼페이우스, 당신은 막강한 적과 맞서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곧 알게 될 것이다. 발부리의 발이 강물에 젖는 순간 나는 반역자가 된다. 반역의 오명을 벗기 위해 나는 전쟁을 개시하고 내 동포들과 싸울 것이다. 그리고 이길 것이다.”(마스터스 오브 로마 Ⅴ. ‘카이사르’ 3권 51p)
한 번도 ‘모스마이오룸(mos maiorum, 전통의 질서)’에 적법한 적이 없었던 원로원의 최종권고와 카토와 마르켈루스와 아헤노바르부스와 그들의 충실한 보니파와 침묵으로 조종하는 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그들의 카이사르에 대한 터무니없고, 끝없는 두려움이 결국은 카이사르의 결정을 재촉했다.
“루비콘 강 너머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들은 몇 개 군단의 병력을 모아놓았을까? 실질적으로 얼마나 준비되어 있을까? 나는 그들이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했을 거라는 직감만으로 이 전쟁에 나서고 있다. 폼페이우스는 어떻게 전쟁을 시작하는지 모르고, 보니파는 어떻게 전쟁을 치르는지 모른다는 내 직감만으로, 폼페이우스가 치른 전쟁은 모두 특별직권에서 비롯되었으니, 그는 전쟁을 먼저 시작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단지 빗자루질을 기막히게 잘할 뿐이다. 반면 보니파는 전쟁을 시작하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런 재능도 없다. 싸움이 시작됐을 때, 폼페이우스는 그의 발목을 잡고 비난과 잔소리를 퍼부으며 그를 통제하려는 보니파 의원들과 공존할 수 있을까? 그들은 이 상황을 게임이나 가설쯤으로 여겼다. 절대 실제 상황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 역시 이것을 게임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겐 천부적인 재능은 물론 행운까지 따른다. 그는 갑자기 머리를 뒤로 젖히고 소리 내어 웃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메난드로스의 시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어로 ‘에네리힉소오 키이보오즈(ανερρίφθω κύβο!, 주사위를 높이 던져라)!’라 크게 외치더니 발부리의 옆구리를 부드럽게 찼다. 그리고 루비콘 강을 건너 이탈리아 속으로, 반란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마스터스 오브 로마 Ⅴ. ‘카이사르’ 3권 51~52p)
다소 긴 문장을 인용했으나, 카이사르가 단신으로 들어오라는 원로원의 요구를 거부하고 로마의 반란자라는 오명을 감수하면서까지 그의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너야만 했던 심정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관습을 지키고 단신으로 들어가 원로원에 의해 축출될 것이냐? 아니면 군대를 이끌고 들어가 로마의 반란자가 될 것이냐? 죽음이냐? 반란이냐? 카이사르에게는 이것이 문제였다. 카이사르는 적법과 합법을 추구했지만 숙명론자가 아니라, 모험가였다. 그리고 그는 장발의 갈리아에서 8년간 전쟁 속에 있었다. 그에게 있어 루비콘 강을 건너는 것은 수동으로 주어진 숙명의 길이 아니라, 새로운 운명의 길을 개척하는 능동의 길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주사위는 수에토니우스의 라틴어 ‘alea iacta est’가 아니라, 플루타르코스의 그리스어 ‘ανερρίφθω κύβος!’였던 것이고, 던져진 것이 아니라, 그가 주사위를 높이 던진 것이었다. 고귀한 파트리키 태생이면서도 민중파였던 그가 내전을 선택한 이유였다. 그의 나이 50년 6개월, 기원전 49년 1월의 열 번째 날이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그의 저서 ‘로마인 이야기 4권, 율리우스 카이사르·상권’(한길사. 1997년 7쇄) 508 페이지에서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넌 날짜를 기원전 49년 1월 12일이라고 기록했는데, 어떤 날짜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전은 4년간 이어졌다.
※작가노트
‘발부리’는 발굽이 갈라진 말이고, ‘보니파’는 원래는 선량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나 쉽게 귀족파라 이해하면 되겠다. 메난드로스는 그리스 아테네의 극작가다. 수에토니우스(가이우스 수에토니우스 트란퀼리우스)는 로마 오현제 시대 때의 역사가이자 정치가이고, 플루타르코스(플루타크)는 고대 로마의 철학자이자 저술가다. 표지사진은 ‘마스터스 오브 로마’의 저자 콜린 매컬로가 그린 카이사르 연필화, 괄호 안의 글들은 작가 주(註)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