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비아누스는 네로를 찾아갔다. “당신의 아내를 원합니다.”
나르보에서의 마지막 날 눈치 빠른 아그리파에게 모든 것(이혼, 리비아 드루실라, 그가 봉착한 선택의 문제에 대해서는 다소 말을 아꼈다. 그가 겪고 있는 감정적 괴로움에 아그리파가 전적으로 마음을 써서는 안 되었다. 그는 더 할 일이 많았고, 옥타비아누스의 군사집행부였다.)을 이야기 한 옥타비아누스는 살인적인 일정에도 불구하고 그해(기원전 39년)가 끝나기 전 로마로 돌아왔다. 옥타비아누스에게는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명료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중 몇 가지는 굉장히 시급했지만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문제는 리비아 드루실라였다(이 문제와 관해서는 마이케나스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마이케나스는 이 문제에서 빠져나오라고 할 것이 분명했다. 이 문제는 옥타비아누스 자신이 직접 처리해야 했다. 자신의 인격적인 결함이나 약점을 절대 마이케나스가 알아선 안 되었다.). 옥타비아누스는 네로를 찾아갔다. “용건이 뭐요, 옥타비아누스?” 네로가 물었다. 그냥 대놓고 말하자. 그게 최선이다. “당신의 아내를 원합니다.” 네로는 할 말을 잃었다. 짙은 색 눈동자가 둥그레지며 입이 떡 벌어졌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다 캑캑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물병을 잡고 마셨다. “농담을 하시는군.” “절대 농담이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 누가 남의 아내를 달라고 한단 말이오! 우스꽝스런 일이오! 내가 뭐라 대답할 줄 알았소? 도대체 할 말이 없군! 이게 진담일 리 없소! 이건 될 법한 일이 아니오! 옥타비아누스 당신도 나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니 이게 될 법한 일이 아님을 당연히 알 것 아니오!” 네로는 미친놈을 집에 들였다고 생각하며 하인을 불러 도움을 청하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네로가 소리칠 틈도 없이 옥타비아누스가 몸을 숙여 그의 팔을 꽉 붙들었기 때문이다. 네로는 바실리스코스(수탉 머리에 뱀의 몸을 한 상상의 괴물)와 눈이 마주친 쥐처럼 꼼짝 못했다. “당신이 이 값을 매길 수 없는 귀한 진주를 내게 양보하는 대가로 나는 당신의 금전적 어려움을 덜어주겠습니다. 자, 네로 썩 괜찮은 조건이죠.” 네로가 재정적으로 어려운 것은 온 로마가 다 아는 사실이었다.
“지금 뭐하자는 거요?” 네로가 소리질렀다. 그는 한참 동안 혼란스럽던 기분을 쫓으려는 듯 수건으로 엎질러진 물을 닦았다. “지금 나를 놀리는 거요? 그렇소?” “전혀 그럴 의도는 없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부탁하는 것은 종교적인 사유를 대고 즉각 아내와 이혼하라는 것뿐입니다.” 옥타비아누스는 토가 주름에 손을 넣어 접힌 종이를 꺼냈다. “당신이 골치 아프지 않게 여기 방법을 아주 상세히 적었습니다.” “아.....음.....어” 이 상황에 말려들기까지 옥타비아누스가 보인 능란함을 따라잡을 수 없었던 네로는 말을 더듬거렸다. 옥타비아누스가 문을 나서며 다시 말했다. “이혼하는 즉시 리비아 드루실라를 베스타 신녀 관저로 보내십시오. 그러면 우리 사이 볼일은 끝납니다. 당신이 받게 될 첫 번째 100탈렌툼(옥타비아누스는 네로의 어마어마한 빚을 대신 갚고 매년 100탈렌툼을 주겠다고 약속했다.)은 발부스은행에 맡겨져 있습니다.” 옥타비아누스가 조용히 문을 닫고 떠났다.
방금 벌어진 일의 기억이 빠르게 희미해져갔지만 네로는 옥타비아누스가 표현만 달리했을 뿐 현재 자신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천하에 폭로하거나, 영원히 침묵하거나. 폭로한다면 빚은 그대로고 옥타비아누스가 약속한 돈도 받지 못한다. 입을 다물면 그는 로마 최상류층에서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터다. 그 어떤 아내를 데리고 산다 한들 이보다 가치 있을 수는 없다. 그리하여 그는 침묵하기로 했다. 그는 종이를 끌어다 이혼장을 작성한 뒤 리비아 드루실라를 불렀다. 이혼의 사유는 그가 오명을 뒤집어쓸 이유가 없는 종교적인 이유였고, 그것은 옥타비아누스가 준 종이가 제시한 방법이었다.
리비아 드루실라는 옥타비아누스가 다녀간 사실을 몰랐다. “미인이야.” 네로는 찬찬히 아내를 뜯어보며 생각했다. 그래 확실히 미인이다, 하지만 어째서 하필 이 여자에게 끌렸을까. 옥타비아누스가 벼락 출세자이긴 해도 원하는 여자를 고르고도 남을 텐데. 도대체 그자는 단 한 번의 만남에서 이 여자의 무엇을 발견한 걸까? 6년을 같이 산 남편도 보지 못한 무언가가 이 여자에게 있는 걸까?(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이 있는 사람의 장점을 잘 보지 못한다. 그것들은 단지 남들만이 볼뿐이다. 내가 그것을 알아챌 때쯤이면 그 사람은 이미 내 곁을 떠났거나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다.) 네로가 이혼장을 내밀었다. “종교적 이유로 당신과 이혼하겠소, 리비아 드루실라 15인 신관단이 시빌라 예언서(고대 로마에서 신이 가사 상태로 아폴론의 신탁을 전했다고 하는 무녀가 기록한 예언서. 이 예언서는 특별히 조직된 신관단-처음에 2명, 기원전 4세기에 10명, 기원전 1세기에 15명으로 증원-의 감독하에 카피톨리누스 언덕의 유피테르 신전에 보관되고, 홍수, 역병, 전쟁 때에 신관단이 원로원의 명령에 의해서 이것을 풀어서 신의를 물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에 새로 추가된 시구를 해석한 뒤 그중 하나가 우리의 결혼과 관련 있으며 우리가 즉각 이혼해야 한다는 결론을 냈소. 그러니 즉시 짐을 싸서 베스타 신녀 관저로 가시오.” 드루실라는 할 말을 잃었다.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고 머릿속이 멍했다. “아이를 만날 수 있나요?” “안되오. 신성모독행위가 될 것이오.” “그러면 뱃속의 아이도 포기해야겠군요.” “그렇소, 태어나는 즉시.” “저는 어떻게 되나요? 제 지참금은 돌려주시나요?” “아니, 나는 당신의 지참금을 일절 반환하지 않소.” “그러면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지요?” “앞으로 당신이 어떻게 살아갈지는 더 이상 내 소관이 아니오. 나는 당신을 베스타 신녀 관저로 보내라는 지시만 받았소.”
리비아 드루실라는 발길을 돌려 자신의 좁은 거처로 돌아갔다. 앞으로 어떻게 살라는 거냐고 네로에게 묻긴 했지만 솔직히 그런 것은 걱정되지 않았다. 만일 신들이 그녀를 눈여겨보았다면, 그리고 이 끔찍한 결혼생활로부터 그녀를 구해주려 했다면, 그들은 필시 그녀가 베누스 에루키나(자유분방하고 비도덕적인 사랑을 다스리는 여신. 베누스 에루키나 축제 동안에는 매춘부들을 여신에게 바쳤고, 신전에서는 성사된 매춘에서 돈을 받았다.) 신전 앞에서 남자를 유혹하도록 타락시키거나 굶겨죽이지 않을 터였다. 베스타 신녀 관저에 머무르는 것은 일시적인 조치일 게 분명했다. 리비아 드루실라는 작은 여행 가방에 얼마 안 되는 옷가지를 담았다. 집사가 와서 팔라티누스 언덕의 게르말루스 고지에서 포룸 로마눔까지 걸을 준비가 되었냐고 물었을 즈음, 그녀는 여행 가방에 짐을 모두 싸고 끈으로 가방을 묶고 바깥의 추위와 위협적인 눈발에 대비해 망토를 꼭꼭 싸매 입은 터였다. 그녀는 여행 가방을 든 하인을 뒤쫓아 최대한 빠르게 한참을 걸어 베스타 신전에 도달했다. 그녀를 마중 나온 여자 하인이 체격 좋은 갈리아 여자에게 여행 가방을 넘겨주고 리비아 드루실라를 방으로 데려갔다.(이 모든 것의 전에 이미 옥타비아누스의 치밀한 조치가 있었다.) 방에는 침대와 탁자와 의자가 하나씩 있었다. “변소와 욕실은 저 복도를 따라가면 나옵니다.” 가정부로 보이는 여자 하인이 말했다. “독서를 하고 싶으신지 물어보라고 하셨습니다만?” “그래 난 책 읽기를 무척 좋아한다네.” “어떤 책을 읽고 싶으신지요?” “신녀들이 괜찮다고 하는 거라면 라틴어 책이든 그리스어 책이든 다 좋아.” 교육을 잘 받은 리비아 드루실라가 말했다. “혹시 더 궁금하신 게 있으신지요?” “한 가지 있네. 목욕물은 다른 사람과 같이 써야 하나?”(프리겔라이의 오래된 시가지를 산책하고, 또 뜻하지 않게 옥타비아누스를 만나고 돌아온 리비아 드루실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남편과 아들 티베리우스가 사용한 기름때가 둥둥 떠 있는 목욕물이었다. 여기에 남편은 오줌을 누었을지도 몰랐다. 헝겊 조각으로 최대한 이물질을 걷어낸 뒤 온기가 거의 사라진 물에 몸을 담군 리비아 드루실라는 어떤 남자든 오로지 그녀만 사용하는 예쁜 대리석 욕조에 달콤한 향수를 뿌린 깨끗하고 따뜻한 물을 채워 목욕할 수만 있게 해 준다면 아내의 의무 따위는 기꺼이 내팽개치고 그에게 가리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평온한 세 주가 지나가고 새해가 일주일 지난 뒤 가정부가 편지를 들고 왔다. 옥타비아누스의 편지였다. “내 일생일대의 사랑 리비아 드루실라에게. 그동안 잘 지냈나요? 이 편지가 증명하듯 나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는 프리겔라이에서 우리의 만남 이후 당신을 잊지 않았소. 추문이나 오점 없이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로부터 당신을 자유롭게 할 방법을 찾느라 시간이 필요했어요. 나는 내 해방노예 헬레노스에게 새 시빌라 예언서를 뒤져 당신과 네로와 연관 있다고 해석할 만한 시구를 찾으라고 지시했소.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소. 헬레노스는 당신과 나와 연관 있다고 할 만한 시구 역시 찾아내야 했지요.....이 편지를 쓰는 지금 나는 창공을 날아오르는 이카로스만큼 행복하오. 나의 리비아 드루실라, 부디 날 실망시키지 말아요! 그러면 난 죽고 말테니. 이미 그 전에 추락으로 죽지 않았다면 말이오. 여기에 당신과 네로의 시구를 적겠소.
밤처럼 검은 남편과 아내
그들의 결합은 로마의 재앙이니
둘은 하루바삐 갈라져야 하네
그러지 않으면 로마는 영원히 표류하리라
반면에 당신과 나의 시구는 캄파니아의 장미밭이라오.
금발에 새하얀 신의 아들
그가 맞아야 할 신부는 두 아이의 어미이며
갈라진 부부의 밤처럼 검은 아내
두 사람이 함께 로마를 세우리라
마음에 드오? 나는 이 두 시를 읽고 무척 기뻤소. 헬레노스는 아주 똑똑한 문헌 전문가라오. 그를 수석 비서로 승진시켰소. 이달인 1월의 열일곱 번째 날에 당신과 나는 혼인으로 하나가 될 것이오. 나는 이 시 두 편을 15인 신관단(옥타비아누스 자신이 15인 중 한 명이었다.)에 보여주었고 그들은 내 해석이 옳다는 데 동의했소. 우리를 가로막고 있던 모든 방해물들이 치워졌고, 당신과 네로의 이혼 그리고 우리의 결혼을 승인하는 쿠리아법이 통과 되었어요. .....당신을 사랑하오.” 리비아 드루실라는 두루마리가 다시 말리도록 문진을 치운 뒤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방에서 살며시 빠져나갔다. 그리고 지하실 석조 계단을 내려가 운 좋게 마주한 숯불이 타고 있는 화로에 편지를 집어던졌다. 여자들만의 공간인 이곳에서는 비밀이 있을 수 없어. 봉인된 편지를 뜯어볼 생각은 못하겠지만 내가 등을 돌리면 다들 편지를 읽어보려 달려들걸.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진실이 무엇이든 이 편지의 내용이 공개되어서는 안 되었다.
기원전 38년 리비아 드루실라는 옥타비아누스와 막시무스 옵티무스가 함께하는 신전에서 결혼했다. 그들의 결혼식은 일반적인 결혼과 달리 콘파레아티오(Confarreatio) 결혼식이어서 앞으로 깨어질 수 없었다. 리비아 드루실라의 나이 스물한 살이었고(그때 그의 뱃속에는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의 8개월 된 아이가 들어 있었다.), 옥타비아누스의 나이 스물다섯 살이었다. “이젠 잘 시간이오. 당신 거처가 따로 있소. 당신이 어느 쪽 전망을 좋아할지 모르겠소. 혹시 다른 곳을 선호한다면 집사 부르군디누스에게 말하면 돼요. 괜찮소?” “엘리시온(신들의 총애를 받는 영웅들이 삶을 마친 뒤 들어가는 축복의 땅) 들판에 온 것 같아요. 나를 위해 이렇게 많은 수고와 비용을 감수했다니요! 카이사르, 나는 당신을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어요. 하지만 이제 알겠어요. 나는 당신과 함께하는 매일 매일 당신을 더더욱 사랑하게 될 거예요.” 그들은 첫날밤 의식을 치루지 않았다. 보아 데나의 예언처럼 둘 사이에는 자식도 없었다. 하지만 11년 뒤인 기원전 27년, 옥타비아누스는 아우구스투스 존엄한 자가 되었고 그 자리에서 40년을 더 로마를 통치했다. 리비아 드루실라(A.D 14년부터는 ‘율리아 아우구스타’라 불렸다.)는 옥타비아누스가 카이사르보다 더 산만큼 15년을 옥타비아누스보다 더 살고 죽었다. 그녀와 클라우디우스 네로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첫 번째 아들 티베리우스는 로마 2대 황제가 되었다.
※작가노트
이 글은 MASTERS OF ROME Ⅶ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1권 287p~342p까지를 요약하면서 중간 중간 내 생각을 넣고 지명과 역사적 사실 등에 주(註)를 단 글이다. 표지사진은 ‘마스터스 오브 로마’의 저자 콜린 매컬로가 그린 카이사르 연필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