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디비전과 존 레논의 "Isolation"
누군가의 죽음을 안고 내딛는 첫 발걸음의 무게를 상상할 수 있나. 멤버의 죽음을 시작점으로 출범하는 밴드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을지 나는 감히 가늠할 수 없다. 그저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의 음악을 들으면 뉴 오더(New Order)를 떠올리고 뉴 오더의 음악을 들으면 조이 디비전을 떠올릴 뿐이다. 뉴 오더는 조이 디비전의 프론트맨 이안 커티스(Ian Curtis)의 사망 이후 남은 멤버들이 계속 음악을 해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새로운 질서였을 것이다. 납추를 매단 시곗바늘 같았을 그들의 심정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들의 사연을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지는 건 당연하다.
그에 비해 조이 디비전의 곡 “Isolation”은 얼핏 들어서는 무겁지 않다. 강한 비트에 풍성한 신디사이저 사운드가 곡 전반을 지배하는, 오히려 경쾌한 멜로디의 곡이다. 어둠은 이안 커티스가 직접 쓴 가사에 묻어난다. 하루하루가 두려움이며 자신의 존재가 부끄럽다고 노래한 그는 이 곡이 세상에 나오기 두 달 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 곡이 수록된 앨범 <Closer>는 조이 디비전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이다. 모든 녹음과 준비를 마치고, 공식 발매와 북미 투어를 앞둔 시점에 이안 커티스는 떠났다. 조이 디비전 (그리고 뉴 오더의) 드러머 스테판 모리스(Stephen Morris)는 훗날 한 인터뷰에서 이안이 쓴 <Closer>의 수록곡 가사를 듣고도 어떻게 그의 극심한 우울감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후회한다고 말했다. 커티스의 사망 전 멤버들이 다함께 결정했다는 앨범커버의 묘지 사진을 보면서도 팬들은 저마다 가슴 아픈 추측을 이어간다. 떠난 자는 말이 없지만, 신나는 멜로디에 숨겨 Isolation을 거듭 외쳤던 그의 목소리는 우리 곁에 이렇게 남아있다.
그로부터 10년 전 또 다른 뮤지션이 고립을 노래했다. 조이 디비전의 “Isolation”이 이안 커티스의 유작이 되어버린 그들의 마지막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반면, 존 레논의 “Isolation”은 비틀즈(The Beatles) 해체 후 발표한 그의 (공식적으로는) 첫 솔로 앨범 <John Lennon/Plastic Ono Band>에 수록된 곡이다. (같은 날 오노 요코 역시 플라스틱 오노 밴드라는 동명의 앨범을 발표하므로 구분을 위해 보통 앞에 존 레논의 이름을 붙여 표기한다.)
이 앨범은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새 여정을 여는 원초적 고백 같은 앨범이다. 그는 비틀즈라는 거대한 이름에서 스스로를 분리시키고 (“God”), 자신의 존재를 완성시키는 요코에게 사랑과 존경을 표하며(“Love”), 아픈 가족사를 털어놓는다(“Mother”, “My Mummy’s Dead”). 비틀즈 해체 후 첫 솔로 앨범에서 ‘비틀즈를 믿지 않아’라고 노래하는 존 레논의 모습은 당시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 하지만 그가 오랜 시간 겪었던 위태로움과, 독립된 자신을 선언하기까지 필요로 했을 용기 또한 그 충격만큼이나 큰 것이었을 테다. 그와 동시에 비틀즈 시기가 없었다면 이렇게 처절하면서도 아름다운 음반이 나오기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에 이르면, ‘비틀즈’와 ‘(비틀이 아닌) 존 레논’의 관계성이 잔인한 운명의 장난처럼 느껴진다.
양날의 검 비틀즈의 나날을 지나 요코를 만난 후 존 레논이 펼친 전위적 행보에 세간은 무수한 말들을 쏟아냈다. 신처럼 숭배되던 인물이 터닝포인트에 서서 변화를 자처하니, 이미 차갑게 식은 마음들이 그를 괴짜 취급 하기란 참으로 손쉬운 선택이 아니었을까. 존 레논의 “Isolation”은 그가 그런 세상에 회답하듯 내어놓은 노래라고 느낀다. 가사는 존과 요코의 시점으로, 자신들을 옭아매는 두려움에 대해 고백하면서도 그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며 도리어 우리를 다독여준다.
끈질기게 이어지는 고립의 시간에 고립을 노래한 음악을 듣는다.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두 예술가가 외로움과 두려움을 연료 삼아 만든 음악을. 노래를 듣는 것이 곧 애도를 하고 위로를 받는 행위가 된다는 건 참 슬프고도 아름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