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을 읽고-
줄리언 반스는 1946년 영국에서 태어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 (2011)>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영국의 대표 작가다. 그의 작품은 상업적으로도 영국에서 성공하였고 프랑스, 미국, 독일에서도 상을 받았다. 그는 1989년부터 2013년에 걸쳐 영국의 미술 전문잡지 <현대 화가>를 비롯한 여러 유명 잡지에 에세이를 냈고 그것을 모아 2015년 첫 예술 에세이 책 <Keeping an Eye Open>을 냈다. 그 책의 번역서가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이다.
줄리언 반스는 1964년 여름, 대학에 진학하기 전 파리에서 몇 주를 보내면서 비로소 자유의지로 그림을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미술에 관해 쓰기 시작한 것은 <10½장으로 쓴 세계 역사(A History of the World in 10½ Chapters) (1989)>에서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에 관한 장을 쓰면서부터였다고 한다.
‘미술은 단순히 흥분을, 삶의 전율을 포착해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미술은 가끔 더 큰 기능을 한다. 미술은 바로 그 전율이다.’
-책 중에서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책 표지 상단에서는 풍성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 턱을 손으로 괸 채 우리를 바라보는 인물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은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팡탱 라투르의 그림 <식탁 모서리(By the Table(1872)>>의 일부다. 책에서는 이 그림을 ‘수염을 기른 사람들 틈에서 아기 천사처럼 턱을 괴고 우리의 왼쪽 어깨너머를 바라본다.’라고 표현한다. ‘아기 천사’라는 말에 나는 내가 이제까지 보았던 아기 천사의 그림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린 1.6 m× 2.25m 크기의 그림이 궁금하다. 피부를 어떻게 표현했는지 보고 싶다. 턱을 괴고 있는 그가 누구인지 알고 싶은가? 그는 시인 아르투르 랭보다. 랭보 왼쪽 옆에는 그가 사랑에 빠졌던 시인 폴 베를렌이 머리가 벗어진 모습을 하고 오른손으로 포도주잔을 잡고 있다.
이 책은 제리코, 들라크루아, 쿠르베, 마네, 팡탱 라투르, 세잔, 드가, 르동, 보나르, 뷔야르, 발로통, 브라크, 마그리트, 울 든 버그, 이것은 예술인가?, 프로이트, 호지킨까지 17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루치안 프로이트란 화가에 대해 알았다. 루치안 프로이트는 지그문트의 손자다. 그의 성격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은 여러 글에서 나타난다. ‘그는 은밀한 생활을 했다. 침묵과 비밀은 그와의 친분의 대가라는 것을 그와 가까운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다.’, ‘서사 주의자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과 실패에 죄책감을 느낀다. 일화 주의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나서 그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서로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로이트의 사생활보다 더 순수한 일화 주의자의 예는 없을 것이다.’, ‘그는 지배욕이 강하고 매사에 간섭이 심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이게 프로이트의 그런 면과 상관이 있을지 없을지는 확실치 않지만 말이다.’라는 문장들에서 그의 삶을 짐작했다. 지그문트가 그의 손자를 본다면 아마 그의 카우치에 눕히고 싶지 않았을까라는 상상을 하며 루치안의 삶 이야기를 읽었다.
이 책은 소설가의 관점에서 쓴 미술이야기라는 점에서 다른 평론과 다르다. 책에는 낭만주의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그림과 그 그림의 배경이 된 사건, 그 화가의 삶에 관한 이야기, 그림이 완성될 때까지 이야기가 있다. 각각의 화가들이 어떻게 삶을 살아가고, 자신의 삶을 이해했는지, 화가들의 참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한 장에 한 화가의 인생이 들어있기에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어 계속 집중해 읽기가 쉽지 않다. 시간을 두고 한 작가씩 천천히 읽기를 추천한다. 책에 나오는 그림 이야기에 비해 수록된 그림은 일부이기에 그림을 찾아보며 읽으면 더 좋을듯하다. 좋아하는 화가들부터 읽기 시작해도 무리가 없다. 그러나 어떤 글은 그 의미가 모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시간이 난다면 원서와 비교하며 읽어도 좋을듯하다.
‘미술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천한다. 미술 작품도 변천한다.’,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도 시간에 따라 변천한다.’, ‘새로운 미술 운동은 이전 것에 대한 재평가를 의미한다.’, ‘모름지기 작품은 흥미로워야 하니까’라고 책은 말한다. 책을 읽으며 그림은 그것을 그린 화가의 의도보다 나의 생생한 반응이 더 중요하다고 이해했다. ‘우리 눈의 관심을 끄는가? 두뇌를 흥분시키는가? 정신을 자극하여 사색으로 이끄는가? 가슴에 감동을 주는가? 예술이 주는 지속적인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의외의 각도에서 접근하여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감탄을 자아내는 힘이다.’라는 문장들이 내게 다가왔다. 나도 잠시 멈추게 하는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