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영화 팬들에게 강렬히 기억된 한 해였다. 극한직업을 시작으로 시원하게 포문을 열더니 어벤져스 : 엔드게임, 스파이더맨 같은 기대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알라딘, 토이스토리4로 잠시 동심을 찾아주더니 하반기에는 기생충, 조커와 같이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들도 만날 수 있었다. 이 활기찬 기세는 연말까지 보기 좋게 이어졌다. 신드롬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겨울왕국2의 흥행, 흥행보다 큰 팬덤을 만든 나이브스 아웃까지 그야말로 볼거리가 풍성한 극장가였다. 그러나 누군가가 나에게 단 한 편의 영화를 추천하라면 이 영화를 꼽고 싶다. 포드 V 페라리다.
파산한 페라리를 인수하려던 미국의 포드는 페라리와 같은 이탈리아계 회사인 피아트에 선수를 빼앗기게 되고, 그 과정에서 엔초 페라리(페라리의 창립자)가 던진 일갈은 포드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준다. 돈으로 ‘승리의 징표’를 손에 넣을 수 없게 된 포드는 실력으로 페라리를 이기고 말겠다는 다소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세우게 된다.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된 캐롤 셸비(포드 GT40의 디자이너)와 켄 마일스(포드GT40의 테스트 드라이버)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 끝에 1966년도 르망 레이스에서 그들이 만든 포드 GT40으로 페라리를 꺾고 승리하게 된다.
영화 <포드 v 페라리> 포스터
많은 관객에게 응원을 받았던 이는 아마 크리스천 베일이 분한 켄 마일스일 것이다. 그는 가난하고 고달픈 삶에도 항상 카 레이싱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포드의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후에는 주변의 방해와 괄시에도 오직 ‘빠른 차’를 만들려는 생각에만 사로잡혔다. 고집불통에 자존심은 거만할 정도로 센 그에게 캐롤 셸비는 조금만 현실과 타협하자고 애원에 가까운 부탁을 한다. 하지만 켄 마일스에게는 오직 완벽한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목표만 선명할 뿐 나머지는 모두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는 타협할 필요도 없었고, 실제로 타협하지도 않았다. 나에겐 그런 열정이 있었을까.
고3 가을이었다. 영어 선생님이 대뜸 수업 시간에 이런 말을 했다. “대학에 들어가면 하나를 파 보세요. 꼭 하나만 파라는 건 아니고, 적어도 하나는 꼭 파보라는 말입니다. 노래가 좋으면 캠퍼스 한가운데에서라도 노래를 부르세요. 남들이 뭐라고 하던, 손가락질을 하던 신경 쓰지 마세요. 20살의 1년간은 여러분들이 하고 싶은 것에 미쳐보세요. 운동도 좋고, 춤도 좋습니다. 캠퍼스 안의 사람들이 '어떤 것'을 말하면 바로 내가 떠오를 수 있도록 여러분이 원하는 그 '어떤 것'에 매진해보세요.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포드 V 페라리를 보고 나서 10년도 더 된 스승의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한없이 부끄러웠다. 나는 한 가지에 미쳐본 적이 있을까.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사진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조금 관심이 있던 것이라 대학에 오자마자 사진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러나 다소 일정이 빠듯한 그곳과 지나칠 정도로 자유분방한 나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사진 동아리를 나오고 난 이후에도 몇 번 사진에 대해서 공부를 해보았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개강과 방학이 반복될 때마다 나의 의지와 열정도 리셋되었고 그렇게 20살, 군 생활, 대학 생활이 차례로 끝났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사진을 좋아한다고 말로만 떠들고 다녔다.
20살의 나는 기숙사에 살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도 대학 생활 동안 사진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어느 여름날 우리는 짧게 사진에 관해서 이야기했는데, 우리는 둘 다 초보 입문자 수준이었기에 그다지 긴 대화는 나누지 못했다. 내가 기숙사를 나온 이후에도 SNS로 그 친구의 소식을 종종 들었는데 그 친구는 계속 사진을 공부하는 것 같았다. 해가 바뀌어도, 군대에 가서도, 제대한 이후에도. 부러우면서도 한 편으론 궁금했다. “저렇게까지 노력할 만한 동기는 어디서 얻는 걸까?"
결국 나는 그럴듯한 전시회 한번 하지 못하고 대학을 졸업했다. 기숙사에서 만났던 그 친구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졸업했는데, 그는 복수 전공으로 사진을 전공했고, 졸업할 때쯤엔 학교에서 개인 전시회를 열었다. 그리고 캠퍼스에서 누구나 사진에 대하여 이야기하면 그 친구의 이름이 함께 언급되었다. 나 역시도 그를 그렇게 인식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한참이 지나서야 나의 궁금증은 해결되었다.
‘저렇게까지 노력할 만한 동기’는 어디에도 없다. 그저 자신이 묵묵히 길을 만들어갈 뿐이다. 사진을 깎아내리는 사람이 나타나든, 사진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 나타나든 동요하지 않고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사진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의 비결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결국 그것을 어느 정도 이루고 대학을 벗어나 사회로 나갔다. 그의 인생에 두 번째 필름이 채워지는 기분이었을까.
책 <신경 끄기의 기술>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자신이 정말 어떤 일을 좋아한다면, 그 일에 수반되는 어려움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지를 보라는 것이다. 가령 훌륭한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은 사람은 무대 위에서 관객을 휘어잡는 모습만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매일 지겹게 반복되는 연습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과정까지 좋아할 수 있어야 진정한 기타리스트가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좋은 카메라가 없다고, 좋은 카메라를 사기엔 돈이 없다고, 돈을 구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하다며 불평했던 나는 진정으로 사진을 좋아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에게도 무더운 여름날 오르막을 쉼 없이 오르며 풍경을 찾아다니고, 한겨울에 손이 꽁꽁 얼어도 기필코 한 장을 '건지겠다'며 눈 덮인 산을 오르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이었을 뿐이었다. 나는 그것을 지속하지 못했다. 그놈의 ‘동기부여’를 찾으며, 내 안에 있는 그놈을 밖에서 찾는다며 구천을 떠돌다 서른 살이 되었다.
켄 마일스는 자신을 정신병자 취급하던 기업가들과 자신을 비웃던 라이벌들 때문에 자신의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다. 궁핍한 삶과 구차해 보일 정도로 힘겨웠던 현실 앞에서도 그의 생각은 오직 최고의 레이싱 카를 만드는 것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현실에서는 비루해 보일지언정 언제든지 실력을 뽐낼 준비된 락스타였다. 그의 무대는 트랙이었고 그곳에 올라서면 그는 언제나 자신의 뜻대로 무대를 장악했다. 그에게 일상의 어려움과 달갑지 않은 감정은 그저 순간에서 끝났다. 최고를 향한 목표와 열정은 영원했고 어려움과 서러움은 순간이었다. 20대의 나는 그 반대로 살아왔다.
영화는 끝났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 우리도 더이상 관객으로 남아있을 수 없다. 일어나 밖을 나가 다시 우리의 삶을 영위해야 한다. 그러나 영화를 보기 전과 보고 난 후가 똑같다면 우리는 또 후회할 것이다. 우리의 트랙은 어디인가, 우리는 트랙 위에 올라갈 준비가 되어있는가. 지금 그대의 열정은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