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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Jun 20. 2023

#33 예비군이 된 사촌동생

사촌동생이 오늘 전역했다. 실로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낸 친구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재수를 했지만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했다. 아쉬운 맘을 품고 입학한 곳에서도 코로나로 인한 휴교로 대학생활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비대면 수업으로 첫 학기를 다닌 후 입대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작년 여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날 사촌동생이 서울에 왔다. 입대를 앞두고 인사 온 것이라 했다. 그는 재수 끝에 얻은 것은 고작 현역 시절과 비슷한 성적뿐이었으며, 재수 끝에 등록한 곳도 입학식 때 단 하루 가본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그리곤 군대에 다녀온 후 수능을 다시 치고 싶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이유를 여러 차례 물어봤지만 그는 답하지 않았다. 그것이 입대 전 마지막 모습이었다.



입대 후에 그를 만난 건 올해 초였다. 그의 부대가 경기도에 있던 탓에 본가로 가기 위해서는 서울역을 들려야 했다. 우리는 서울역 앞에서 만나 뜨끈한 중림장 설렁탕을 먹었다. 불현듯 그가 수능이 끝나고 재수를 결심한 무렵에도 꼬리곰탕을 함께 먹었는데 계절도, 메뉴도 비슷해 기분이 묘했다. 




다행히 군생활은 무난하다고 했다. 부대가 전체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감에 따라 힘든 일도 거의 없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하여 훈련도 대거 취소되고 종종 간부와 함께 부대 밖으로 나가 군것질도 한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했다.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냐고 물어보니 한참을 뜸 들이다 수능은 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불과 입대한 지 6개월 만이었다. 이미 결제한 설렁탕과 2년 전의 꼬리곰탕도 환불받고 싶었다. 



길게 잔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꼰대가 될 것 같아 그만두었다. 다만 운동을 하든지 책을 읽든지 군 복무하면서 생기는 자투리 시간을 알차게 쓰라고 했다. 나 역시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가장 아까운 것이 낭비한 시간이었으니까. 그렇게 그를 서울역에서 배웅하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계절은 빠르게 바뀌었다. 다시 겨울이 찾아왔고 어느덧 그는 제대 소식을 알려 왔다. 서울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고향으로 내려간다고 했다. 제대를 앞둔 그는 무슨 생각과 계획을 갖고 있을까. 궁금증이 생기면서도 문득 무슨 말을 들을까보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고민이 앞선다. 그의 앞에 서면 나도 영락없는 꼰대가 된다. 



어릴 적 나를 보던 어른들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그와 나는 성격도, 일상도, 취미도, 관점도 다를 것이다. 내가 했던 실수를 그가 똑같이 하라는 법이 없고, 내가 아쉬워하던 일들을 그가 똑같이 아쉬워할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내가 생각나 만나기도 전에 잔소리를 한 뭉텅이씩 움켜쥐게 된다. 이런 오지랖 때문에 10살이나 어린 그가 귀엽고 보이다가도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시기에 뺀질거리는 모습을 보면 꿀밤을 쥐어박고 싶을 때도 있다.  오늘 그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벌써 기다려진다. 



2021년 12월 5일 처음 쓰다.

2023년 6월 20일 고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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