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진 Jun 22. 2023

#35 왜 공부를 열심히 해야 돼요?

고등학생 시절 국어를 가르치던 선생님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있다. 졸업 이후에 몇 번 찾아가 식사를 하기도, 함께 술자리를 가지다 거나하게 만취한 적도 있는 추억의 선생님이다. 흑역사에 가까운 추억을 뒤로하더라도, 선생님의 사진을 통해 모교 후배들을 만나고 고향의 계절들을 조금씩 훔칠 수 있어 자주 그곳을 찾게 된다. 손 안의 다락방 같은 곳이다.


오늘은 선생님이 글을 한 편 올리셨다. 타인의 글을 발췌한 것으로 작가는 배움의 이유를 '몸에 새긴 기억'으로 꼽았다. 삶을 이끌어가는 앎은 지식이 아니라 몸에 새긴 기억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수고로울수록 깊게 새겨진 기억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훗날 공부한 내용을 잊더라도 몸과 마음의 작용이 남아 오래도록 삶을 이룰 것이라고 했다. 선생님은 그 글을 제자들에게 꼭 보여주겠다고 덧붙였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어릴 적부터 수 없이 질문했으나 그 어떤 대답도 정답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질문은 타인의 언어로는 접근할 수 없는 근원적 이격에 둘러싸여 있는 섬과 같았다. 오로지 스스로 만든 배로 바다를 건너야만 도달할 수 있는 미지의 땅. 시간이라는 바다와 우여곡절이라는 파도를 건너,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넘어서야 그 질문에 조금이나마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의 말에 동의한다. 열심히 노력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기억이라기보다 차라리 하나의 표피처럼 삶에 점착(粘着)된다. 학창 시절도, 시험성적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져 가지만 열심히 노력했던 나 자신은 계속 오늘의 나와 함께 살아간다. 오늘의 내가 치열했던 나와 함께할 때, 우리는 조금 더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조금 더 자신을 용서할 수 있다.


왜 공부를 열심히 해야 돼요? 아직도 그 질문에 명쾌히 대답하긴 어렵다. 그러나 열심히 공부를 했을 때 남는 것이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후배들과 은사님, 그리고 나 자신의 건투를 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