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아저씨 May 13. 2020

숭례문, 그 수난의 역사

당신이 모르는 과거의 5월14일

과거로부터 배우는 오늘 : 위하고 알새과오

목차

숭례문, 그 수난의 역사

1396년 서울 도성의 남쪽 정문으로 세워진 숭례문(남대문)에는 엄청난 수난의 역사가 서려있습니다. 1907년에는 을사오적 매국노들이 대문의 성곽을 철거하였습니다. 명분상으로는 홍예(무지개 모양으로 반쯤 둥글게 만든 문)를 관통하는 철로로 인하여 사람, 마차, 전차가 뒤섞여 교통이 번잡하니 성곽을 없애고 선로를 새로 부설하자는 것이었습니다만, 5백년 조선왕조의 상징을 없애려는 의도였습니다.

1910년에는 숭례문 앞에 있던 연못 ‘남지(南池)’가 매립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박람회 전시장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해방 후 한국전쟁에서는 박격포에 맞아 흉측하게 훼손되는 수난을 당했고, 전후 임시방편으로 수리를 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모양이 뒤틀리는 등 후유증을 겪었습니다.

이에 어렵사리 재원을 마련한 정부에서 1961년부터 1963년까지 해체 중건 공사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수난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2008년에 몰지각한 한 시민의 방화로 전소되다시피 훼손되었고, 전통 방식에 가까운 긴 복구공사 끝에 2013년 5월 다시 제 모습을 찾았습니다.

6백여년 동안 서울을 지켜온 숭례문, 이제 더 이상의 수난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담배연기처럼 허무한 역사...

1975년 오늘 뉴스에 보면 ‘정부, 양담배 판매 및 흡연자에 10년 이하 징역 5백만 원 이하 벌금 부과 방침 수립’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당시 담뱃값 100원의 5만배, 직장인 월급 5만원의 100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각오하고 양담배를 피워야 하는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엄혹한(?) 환경에서도 굳이 양담배를 피우는 이들이 있었으니, 단속을 피하려는 꼼수로 좌우 주머니에 국산담배와 양담배를 나눠서 가지고 다니던 어느 코미디언이 단속반에게 보란 듯이 국산담뱃갑을 꺼내 보이려다가 실수로 양담배를 꺼내는 바람에 딱 걸렸다는 웃픈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이러한 양담배 규제는 1980년대까지 이어졌는데요, 1984년에는 현직 국회의원들이 적발되어 그 명단 발표를 놓고 정치권이 공방을 벌이는 해프닝도 벌어졌다고 합니다.

한 푼의 외화라도 아끼겠다는 정부와 내 돈 내고 내 맘대로 사서 피우겠다는 시민의 치열한 양담배 전쟁, 그러나 그 전쟁은 엉뚱하게도 미국 등의 담배시장 개방 요구에 정부가 승복하면서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돌이켜보면 담배연기 만큼이나 허무한 양담배 역사였습니다.


남북관계의 상징, 전기(電氣)

1948년 오늘 한반도 남쪽 대부분 지역이 암흑천지로 변했습니다. 북쪽이 예고도 없이 일방적으로 남쪽으로 보내던 전기를 끊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한반도에는 미군과 소련군이 주둔하고 있었지만 아직 분단되기 이전이었고, 일제가 주로 압록강 등 북한지역에 발전소를 건설하고 물러간 탓에 그곳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나누어 쓰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북쪽이 남쪽의 단독 총선거에 항의한다는 명분으로 일방적으로 송전을 차단한 것입니다. 이 단전조치로 남쪽의 공장 대부분은 가동을 멈추었고, 모내기 철 양수기를 돌리지 못해 농사마저 차질이 생겼습니다. 이에 미군정까지 나서서 소련군정사령관에게 송전 재개를 요청하였지만 북쪽은 막무가내였습니다.

‘4.13 단전조치’는 사실상 남과 북의 분단이 수면 위로 드러난 사건이었고, 결국 2년 후에는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끊어졌던 남북송전선은 59년 후인 2007년이 되어서야 개성공단 전력 공급을 목적으로 다시 개통되었습니다.

남북관계의 역사를 상징해온 전기가 다시 흘러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는 남과 북이 함께 평화와 번영의 환한 불을 밝히기를 기대합니다.


지하철 1호선 타고 대학로에서 충무로로 간 배우들!

황정민, 설경구, 김윤석, 조승우, 장현성 등 내로라 하는 배우들이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충무로의 스타 자리에 올랐습니다. 극단 학전의 대표이자 연출가인 김민기가 독일의 ‘Line 1’이라는 원작을 한국에 맞게 번안 각색한 이 작품은 1994년 초연부터 2008년 막을 내리기까지 4천회가 넘는 공연이 이어졌으며 71만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습니다. 소극장 공연인데다가 지금처럼 뮤지컬이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시절이 아님을 감안하면 실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1995년에 내한하여 이 작품을 본 원작자는 가장 완벽한 번안작품이라며 저작권료 전액을 면제해주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이 작품은 한국 뮤지컬 최초로 반주테이프가 아닌 라이브 밴드가 연주하며 10여명의 배우가 80개의 역할을 연기하는 1인 다역 연기를 펼칩니다. 그래서 100% 공개 오디션으로 배우를 선발하여 혹독한 훈련을 시키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공식적으로 2008년에 막을 내렸지만 비정기적인 한정공연이 열리기도 하는데, 코로나19가 완전 종식되어야 기대라도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학전, 지하철 1호선 그리고 김민기>

https://www.youtube.com/watch?v=wUmFFdx0i7A



작가의 이전글 스티비 원더, Isn't He Lovely?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