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위험한 꼴과 안전한 꼴

당신의 일상을 위협하는 '각'은 무엇입니까

by mookssam


형태의 공포와 안도

우리는 흔히 유클리드가 정의한 직선과 삼각형을 인류 지성이 도달한 가장 순수한 사유의 언어라고 말한다. 유클리드는 그의 저서 '기하학 원론'에서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임을 증명하며 기하학적 완결성을 제시했다. [1] 그러나 인간을 형태철학자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몸은 그 완벽한 기하학 앞에서 언제나 약간의 긴장을 품고 있음을 알게 된다.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사실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그 날카로운 꼭짓점을 눈앞에서 편안하게 마주하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꼴은 생각보다 먼저 반응을 일으킨다. 논리 이전에 감각에 닿고, 미학 이전에 생존을 묻는다. ‘꼴’은 철학이 되기 전부터, 위험과 안전을 가르는 가장 원초적인 신호였다. 나의 기억은 1970년대 성북동, 서향의 햇빛이 길게 늘어지던 어느 오후로 돌아간다. 어린 시절 종이를 오려 무언가를 만들 때, 내가 가장 먼저 의식했던 것은 ‘각’이 주는 서늘함이었다. 가위 끝에서 만들어진 예리한 종이 조각들은 책상 위에서 작은 가시처럼 느껴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 뾰족한 부분들을 둥글게 다듬거나, 서로 맞물려 감추려 했다. 그것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나의 인지적 영토를 지키려는 무의식적인 ‘방어 기제’였다.


진화가 새긴 기하학적 기억

날카로운 예각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미세한 불안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수백만 년 동안 축적된 생존의 기억이다.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날카로운 형태를 마주하는 순간, 위험과 경계를 담당하는 영역인 편도체(Amygdala)를 즉각 활성화한다. 모셰 바와 마이탈 네타의 연구는 우리가 왜 본능적으로 예리한 각을 경계하는지를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2] 각은 도구이기 이전에 상처의 가능성이었다.


반대로 곡선은 다른 신호를 보낸다. 곡선은 공격을 유보시키고, 시선의 흐름을 부드럽게 만들며, 뇌의 처리 부담을 낮춘다. 실비아와 바로나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직선보다 곡선으로 이루어진 물체에 대해 훨씬 높은 선호도와 심리적 안정감을 보였다. [3] 잘 익은 과일의 윤곽이나 대지의 능선이 주는 안정감은 단순한 미감이 아니라, ‘지금은 안전하다’는 생물학적 판정에 가깝다. 여기에 대칭이라는 질서가 더해지면 인간은 비로소 환경을 예측 가능하다고 느끼며 깊은 안도를 경험한다. [4]


새벽 세 시의 문소리가 바꾼 세상

"1981년의 어느 날, 애플의 그래픽 개발자인 빌 앳킨슨(Bill Atkinson)은 모니터 앞에 선 스티브 잡스에게 더는 물러설 곳이 없음을 항변하고 있었다.


'스티브, 이건 미친 짓이에요. 화면에 사각형을 띄우는 것조차 버거운 연산 능력인데, 둥근 모서리까지 계산하라는 건 불가능합니다. 지금 기술로는 너무 비효율적이에요.'


잡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퇴근을 앞둔 빌의 팔을 잡아끌고 연구실 밖으로 나갔다. 해 질 녘 거리를 함께 산책하며 잡스는 길가에 세워진 표지판을 툭툭 치며 외쳤다.


'빌, 주위를 봐! 이 표지판의 모서리가 어때? 둥글지? 저기 주차된 자동차도, 창문의 틀도, 길가에 버려진 상자도 다 마찬가지야. 세상은 온통 둥근 모서리로 가득 차 있어! 왜 우리가 기계 안에 가두는 세상을 직선의 감옥으로 만들어야 하지?'


잡스의 집요함은 단순한 미감이 아니라 실존적 통찰이었다. 그는 차가운 금속 상자가 인간의 영토에 들어올 때 발생하는 미세한 공포를 읽어낸 것이다. 결국 빌 앳킨슨은 그날 밤부터 며칠을 더 지새운 끝에 수학적 한계를 극복한 ‘둥근 사각형(Round Rects)’ 루틴을 완성했다. 그리고 새벽 세 시, 빌은 곧장 스티브 잡스의 집으로 달려가 문을 두드렸다. 잡스가 잠결에 문을 열자 빌은 외쳤다


'스티브, 드디어 됐어!' " [5]


이 선택은 루이스 설리번이 주창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근대 디자인의 오랜 명제를 한 단계 확장한다. [6] 기능이란 단지 소프트웨어가 돌아가는 속도가 아니라, 인간이 기계 앞에서 안심하고 마음을 열 수 있는 ‘심리적 조건’까지 포함한다는 선언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스마트폰의 둥근 아이콘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안도하는 감각의 뿌리는, 바로 그 새벽 세 시의 거리에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 초반의 하드웨어 사양으로 화면에 매끄러운 곡선을 실시간으로 뿌려주는 것은 기술적 재앙에 가까웠다. 빌 앳킨슨은 처음에는 연산 효율을 이유로 완강히 거부했다. 그러나 잡스의 끈질긴 설득 끝에, 앳킨슨은 밤을 지새우며 수학적 해결책을 찾아냈다.


그는 사각형의 네 귀퉁이에 들어갈 아주 작은 원의 사분면(Quadrant)을 비트 단위로 미리 계산하여 고속으로 렌더링 하는 '퀵드로우(QuickDraw)' 알고리즘을 완성했다. [5] 0과 1로 이루어진 차가운 비트의 세계에, 인간의 신경계를 안심시키는 따뜻한 곡률이 처음으로 이식되는 순간이었다. 이 '비트의 곡선' 덕분에 우리는 매킨토시를 켤 때마다 각진 공포 대신, 수잔 케어가 디자인한 둥근 사각형 속 '해피 맥(Happy Mac)'의 미소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직각에서 한옥의 곡선으로

근대 이후의 도시 거주자들은 일상 속에서 거대한 ‘직각의 감옥’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 콜린 엘라드가 지적했듯, 효율성과 경제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설계된 격자형 도시 구조와 수직으로 뻗은 고층 빌딩들은 인간의 시야를 예리한 직선으로 가득 채운다. [7] 문제는 우리의 신경계가 이러한 인공적 직선을 처리하는 데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며, 무의식적인 긴장 상태인 ‘직각 피로감’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거칠게 깎인 콘크리트 모서리와 차가운 유리 벽면의 교차점은 생물학적으로 우리에게 안식보다는 경계의 신호를 보낸다.


반면, 어릴 적 성북동 한옥의 추녀마루가 그리는 완만한 곡선은 인위적인 질서를 자연의 능선과 화해시키는 ‘안전한 꼴’의 전형을 보여준다. 임석재 교수의 분석처럼, 비를 흘려보내고 햇빛을 조절하는 기능적 목적을 넘어 그 곡선은 시선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공간의 긴장을 해소한다. [8]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가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라고 단언하며 자연의 유기적 형태를 건축에 녹여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9] 자연계에는 완벽한 직각이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생명력을 품은 부드러운 흐름만이 존재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곡선의 안식을 회복하는 일은 인공의 숲에서 훼손된 인간의 감각을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놓는 치유의 과정이다.


상호지지구조가 가르쳐준 관계의 철학

솔직히 말해, 얇은 종이를 접고 세우며 스스로 서게 만드는 일은 오랜 시간 몰두해야 하는 작업이다. 처음에는 종이의 각을 날카롭게 세워 물리적인 힘으로 버티게 하려 했다. 하지만 각이 지나치게 날카로우면 구조는 일시적으로 멋져 보여도 종이 자체가 그 긴장을 이기지 못하고 쉽게 찢어져 버린다. 사람도 비슷하다. 홀로 너무 각을 세우고 살면 타인과의 관계보다 자신의 마음이 먼저 닳아버리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방향을 선회했다. 이제 나는 단단한 각 대신, 얇은 종이 조각들을 퍼즐처럼 맞물리게 하여 스스로 일어서게 만드는 '상호지지구조'를 연구한다. 가냘픈 종이 한 장은 힘없이 쓰러지지만, 정교하게 설계된 조각들이 서로를 받쳐주고 의지할 때 비로소 견고한 입체가 완성된다.


내가 만드는 종이 도형 퍼즐에는 일부러 틈을 남긴다. 완전히 닫힌 형태보다, 서로의 몸을 빌려 세워진 모서리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는 구조가 더 오래 버티고 더 아름답다. 한옥의 차경처럼, 그 틈은 공간을 넓히고 마음을 숨 쉬게 한다. 나는 종이를 통해 세상의 물리 법칙과 홀로 싸우기보다, 조금씩 기댄 채 공존하는 법을 배운다. 서로를 지탱하며 부드럽게 휘어져 비바람을 막아주고, 그 사이로 별빛이 조금 새어 나오는 꼴. 그것이 내가 발견한 꽤 현실적인 생존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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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로 만든 조명

묵샘의 질문

여러분은 오늘 하루, 어떤 꼴 앞에서 안도감을 느끼셨나요? 혹은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만들었던 날카로운 '꼴'의 순간이 있었나요?


그것은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는 공간의 디자인일 수도 있고, 타인이 건넨 부드러운 말 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를 베어버릴 듯 날 선 관계였을지도 모릅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부터 불쾌한 감정의 찌꺼기까지, 결국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은 저마다의 '꼴'을 지니고 있습니다.



[1] 유클리드, 기하학 원론, 제1권, 토마스 히스 역, 뉴욕: 도버 출판사, 1956, 153쪽.

[2] 모셰 바 & 마이탈 네타, 주관적 선호의 시각적 요소, 심리학 과학, 제17권, 제8호, 2006.

[3] 실비아 & 바로나, 사람들은 곡선 물체를 선호하는가?, 미학, 창의성 및 예술 심리학, 제3권, 제4

호, 2009.

[4] 레버 외, 처리 유창성과 미적 즐거움, 성격 및 사회심리학 리뷰, 제8권, 제6호, 2004.

[5] 월터 아이작슨, 스티브 잡스, 뉴욕: 사이먼 & 슈스터, 2011, 132쪽.

[6] 루이스 설리번, 예술적 관점에서 본 고층 사무실 빌딩, 『리핀컷 잡지』, 1896.

[7] 콜린 엘라드, 마음의 장소: 일상생활의 심리 지리학, 뉴욕: 벨뷰 리터러리 프레스, 2015.

[8] 임석재, 한국 전통 건축의 미학, 서울: 북하우스, 2005.

[9] 안토니 가우디, 가우디의 노트, 바르셀로나: 트라이앵글 포스탈스, 2002.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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