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얼굴 인식 유전자

태아의 선천적 꼴과 직관의 형성

by mookssam


고사리와 움켜쥐기


점심시간, 동네 청국장집에서 한 두어 살 배기 아이의 경이로운 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사장님의 지인인 듯 식탁 위에는 정성이 가득 담긴 메뉴들이 '건강식'이라는 이름으로 빼곡히 쌓여갔다. 부모는 연신 이것저것 아이의 입에 넣어주려 애썼지만, 아이는 완강히 고개를 저으며 모든 호의를 거부했다. 그러다 아이의 손이 자연스럽게 닿은 곳은 고사리 줄기 한 토막이었다.


아이에게 그것은 맛이기 이전에 '잡기 편한 꼴'이었고, 양념이라는 오염이 없는 '무결한 꼴'이었다. 복잡한 논리와 영양의 가치 이전에, 손이 먼저 알고 자연스럽게 나아가는 무결한 꼴의 선택. 이것이 우리가 세상과 맺는 가장 원초적인 관계다.


자궁 속의 시각 실험_'삼 점(Three Dots)'의 기하학


인간의 형태 인지는 학습 이전의 본능이다. 이를 학술적으로 입증한 것이 빈센트 레이드(Vincent Reid) 교수팀의 태아 시각 반응 실험이다 [1]. 연구팀은 4D 초음파 기술을 활용하여 임신 3분기(약 34주) 태아 39명을 대상으로 시각 자극에 대한 행동 반응을 정밀하게 추적했다.


자궁 내 환경 모델링 연구에 따르면, 자궁벽은 외부의 빛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으며 특히 장파장인 적색광을 통과시키는 필터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산모의 복부에 붉은색 레이저 점 3개를 투사했는데, 이때 '정립(Upright)'된 삼각형(얼굴형)과 '반전(Inverted)'된 삼각형(비얼굴형) 두 가지 방향을 사용했다.


실험 결과는 경이로웠다. 태아는 얼굴 모양인 정립 삼각형 자극(그림 1)에 대해 평균 1.03회의 고개 회전 반응을 보이며 적극적으로 추적(Tracking)했다. 반면, 동일한 자극을 180도 뒤집은 반전 삼각형에는 평균 0.44회만 반응했다(그림 2). 이는 인간의 지각 체계가 아무런 기준 없는 백지상태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생존에 필수적인 '얼굴'이라는 기하학적 꼴을 즉각 알아보도록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2]


(좌 그림1) 자극에 대한 개념적 그림, (우 그림2)자극에 대한 태아 머리 회전 횟수


인절미의 향수와 정형기(노년기)의 말뚝


하지만 인간의 꼴은 설계도만으로 박제되지 않는다. 동네 떡집을 지날 때 검은콩 인절미를 보며 입안에 침이 고이는 것은 단순히 허기를 느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린 시절 고모님이 다정하게 내 입에 넣어주던 그 '맛의 꼴'과 '사랑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복원의 과정이다. 유전자가 만든 뼈대 위에 경험이 살을 입혀 나만의 지각 체계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복원은 인생의 꼴이 단단하게 굳어지는 '정형기(定型期)'에 접어들면 역설적인 단절을 부르기도 한다. 육십이라는 세월을 지나며 스스로 박아놓은 '말뚝'은 너무나 견고하여 새로운 기술적 꼴과의 마찰을 빚는다. 식당의 키오스크 앞에서 느끼는 난감함은 노년의 무능이 아니라, UI를 글로만 배운 이들이 만든 '무질서한 꼴'에 대한 정당한 거부다.


박물관 끝에서 만나는 상징의 자유


우리가 낯선 도시로 여행을 떠나 박물관을 찾는 이유도 이 정형화된 내면의 꼴에 새로운 영감을 수혈하기 위함이다. 나는 박물관 안에서 소장품을 보는 것만큼이나, 전시실을 나와야만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굿즈샵과 도록, 그리고 관련 서적들이 쌓인 곳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다.


전시실의 유물들이 거대한 역사의 파편이라면, 도록은 그 방대한 서사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요약하고 압축해 놓은 '상징의 정수'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혼자 여행을 해야만 한다. 타인의 보폭이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그 응축된 상징들 앞에서 마음껏 머물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를 전율케 했던 것은 박제된 유물 그 자체보다, 그 상징들을 내 손 안의 크기로 정제해 놓은 한 권의 도록과 서적들이었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의 굿즈샵이 'MZ 세대의 성지'로 떠오른 현상은 이 철학의 현대적 증명이다. [3] 젊은 세대가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나 '달항아리 굿즈'에 열광하는 것은, 수천 년을 버텨온 우리 고유의 '무결한 꼴'이 정교하게 압축되어 그들의 선천적 직관과 공명했기 때문이다. 세대를 넘어 박물관 굿즈에 몰입하는 이 현상은, 우리가 평생을 걸쳐 '나만의 꼴'을 확인하고 소유하려는 본능적인 갈망을 보여준다.


AI 시대, 꼴을 통한 직관의 형성


이제는 굳이 태평양을 건너지 않아도 내 연구실 안에서 '에디슨의 노트'를 펼쳐볼 수 있는 시대다. 박물관 끝에서 만났던 그 응축된 상징들처럼, AI는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핵심적인 꼴을 추출해 내 연구실로 배달한다. 결국 직관이란, 태초의 선천적 꼴 위에 평생 마주한 상징들이 덧입혀지며 구축된 결과물이다. 세상의 꼴들이 AI를 통해 재구조화될 때, 나의 업(業)은 삶이 지속되는 동안 함께할 수 있는 현재 진행형이다.



[1] 빈센트 레이드 연구: 4D 초음파를 통해 태아가 자궁 내에서 얼굴 형태의 빛 패턴에 우선적으로 반응함을 입증하여 형태 인식의 선천성을 밝힌 연구


[2] 지각의 선천성: 신생아의 얼굴 선호도는 출생 후 경험에 의한 빠른 각인이 아니라, 태아기부터 형성된 생물학적 편향의 결과임.


[3] 문화적 공명: 국립중앙박물관 굿즈에 대한 MZ 세대의 열광은 전통적 꼴의 응축된 상징이 현대적 직관과 만난 결과임.


사진_국립중앙박물관 반가유사유상 굿즈 (촬영 mookssam)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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