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상(Topology) 감각

변해도 변하지 않는 꼴의 본질

by mookssam

찌그러진 종이배와 도넛의 기하학


어린 시절, 우리가 신문지나 갱지로 접어 개울가에 띄웠던 종이배를 떠올려 봅니다. 그 배는 완벽한 형태를 유지하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물결을 타는 순간 거친 섬유질 사이로 물기가 스며들어 눅눅해졌고, 찌그러지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그 배가 아무리 짓눌리고 일그러져도 우리는 그것을 여전히 ‘배’라고 불렀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처음에 가졌던 그 ‘배’로서의 근본적인 연결 상태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훗날 나는 이것이 수학에서 말하는 위상(Topology)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위상수학의 세계에서는 찰흙으로 만든 도넛을 주무르고 길게 늘여도, 그 가운데 구멍이 하나 뚫려 있는 한 그것은 여전히 도넛입니다. 그 형태를 이루는 요소들 간의 관계와 구멍의 개수라는 본질적 질서가 유지된다면 그것은 '같은 꼴'로 정의됩니다.


소년 시절의 나는 신문지를 뭉치고 펴는 그 투박한 놀이 속에서, 겉모양의 화려함보다 더 중요한 ‘변하지 않는 핵심’을 손끝으로 먼저 읽어내고 있었던 셈입니다. 형태의 품격은 매끈한 표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변형 속에서도 끝내 유지되는 그 내면의 구조에서 시작됩니다.


일그러짐 속에 감춰진 고유한 장력


사람들은 보통 형태가 일그러지면 그것이 ‘망가졌다’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존재론적 관점에서 볼 때, 일그러짐은 파괴가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존재의 치열한 ‘몸부림’입니다. 신문지로 만든 딱지가 수천 번 바닥에 매쳐지며 모서리가 닳고 둥글게 변해갈 때, 그 딱지는 처음에 가졌던 빳빳함을 잃은 대신 상대의 타격을 유연하게 흘려보내는 독특한 ‘장력’을 얻게 됩니다. 외형은 엉망이 되었을지 몰라도, 그 딱지를 이루는 종이 섬유들의 결속과 무게중심이라는 위상적 가치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 단단해진 것입니다.


우리의 삶 또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세월의 풍파에 치여 젊은 날의 팽팽했던 꿈은 찌그러지고, 사회라는 거친 손길에 눌려 본래의 매끄러운 꼴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위상 감각을 가진 이라면 그 일그러짐의 정도에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짓눌려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내 안의 ‘본질적 구멍’, 즉 내가 나일 수 있게 만드는 핵심적인 관계의 질서가 여전히 살아있는가가 관건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어 주름이 잡히고 삶의 궤적이 비뚤어진다 해서 우리의 존재가 훼손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굴곡진 선들 사이에는 젊은 날의 매끈함이 결코 가질 수 없었던, 세상을 견뎌낸 자만의 고유한 장력이 흐릅니다. 찌그러진 종이배가 여전히 배이듯, 시련을 통과한 인간의 꼴 안에는 변하지 않는 영혼의 좌표가 박혀 있습니다.


유연함이 지키는 존재의 품격


‘위상 감각’은 그 규율을 가슴에 품고도 유연하게 변주할 줄 아는 존재의 여유를 의미합니다. 진정한 품격은 박제된 채 변하지 않는 완벽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외부의 압력에 따라 기꺼이 몸을 구부리면서도, 그 압력이 사라진 순간 다시 자신의 본래 꼴로 돌아오려는 복원력(Resilience)에 있습니다.


강한 바람 앞에 꼿꼿이 서 있다 부러지는 고목보다, 바람의 결을 따라 땅 끝까지 몸을 눕혔다 다시 일어서는 갈대가 더 위상적으로 강한 존재입니다. 갱지 한 장을 접을 때 손가락 마디로 꾹꾹 눌러 길을 냈던 그 정성은, 이제 어떤 시련에도 찢어지지 않는 ‘질긴 내면’으로 치환됩니다.


위상적 사고를 하는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담장을 쌓아 단절하기보다, 스스로를 늘리고 구부려 상대와 연결되는 법을 택합니다. 형태는 변형될 수 있으나 관계의 본질은 지켜내는 것, 그것이 바로 존재의 품격을 결정하는 사중주의 마지막 완성인 ‘조화’입니다. 우리는 일그러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 유연함을 통해, 비로소 부러지지 않는 단단한 존재로 거듭나게 됩니다.


변하지 않는 꼴을 향한 긴 호흡


이제 이 장을 마무리하며 나는 확신합니다. 우리가 만졌던 그 푸석한 신문지, 손가락 마디의 통증, 그리고 찌그러진 종이배의 기억은 모두 ‘위상 감각’이라는 거대한 사유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존재는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형되는 흐름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흐름 속에서도 우리는 길을 잃지 않습니다. 우리에겐 겉모양의 화려함에 현혹되지 않고 존재의 깊은 속내를 읽어내는 눈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찌그러진 종이배를 다시 품에 안고 2장의 세계로 걸어 들어갑니다. 형태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그 무엇, 그것을 찾는 여정이 바로 우리가 세상을 향해 내딛는 가장 당당한 '꼴값'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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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Polina Tankilevitch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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