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自立)을 위한 자술
가끔 그리움이 형체도 없이 밀려올 때면 나는 구글 어스(Google Earth)를 켠다. 차가운 인공위성의 렌즈가 성북동의 가파른 지형을 훑고 내려가 내가 살던 그 좌표를 비춘다. 하지만 화면 속 어디에도 소년들의 아지트였던 앞집 희락이네 안방은 없다.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은 오직 무심할 정도로 푸른 녹지뿐이다.
나의 유년이 머물던 그 방 한 칸은 이제 영원히 흙 아래로 침잠했다. 발바닥에 닿던 지면의 경사는 예전보다 완만해졌고, 우리가 갱지를 펼치던 장판의 흔적은 이제 나무뿌리들이 대신하고 있다. 공간은 이토록 무력하게 변하고 사라진다. 하지만 그 푸른 숲으로 덮여버린 좌표 위에서 내가 길어 올린 '형태의 진리'만은 더욱 선명한 각을 세우며 나를 다그친다.
나는 왜 그토록 무언가를 세우려 했던가. 왜 어린 시절의 나는 그 연약한 갱지의 등뼈를 꺾어 세우며 그토록 가슴 뛰어야 했던가.
그것은 단순히 장난감을 만드는 유희가 아니었다. 중력이라는 거대한 침묵에 맞서, 내 존재의 부피를 확보하고 위상을 선언하려 했던 고귀한 저항이었다. 명수학교 아이들의 휘어진 등뼈를 보며 느꼈던 그 막막한 통증은, 결국 내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실존의 무게였다. 나 역시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에, 나는 나의 방식대로 나의 '꼴'을 만들어 그 무게를 견뎌내야만 했다.
퍼스널 업(Personal UP)의 탄생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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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꼴에 끌리는가? [출간 예정]
나는 이제 나 자신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어떤 꼴로 서 있는가. 너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어떤 각을 세우고 있는가. 혹시 중력에 굴복하여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린 채, 누군가 너를 집어 들어 세워주기만을 기다리는 낱장의 갱지로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성북동 소년이 발견한 갱지의 자립은 이제 나의 남은 생(生)으로 전이되어야 한다. 위태로움을 부정하지 않겠다. “서 있는 모든 것은 위태롭다. 그러나 그 위태로움을 견뎌내는 꼴만이 진실로 자립할 수 있다.” 이 문장은 내가 나 자신에게 건네는 가장 단단한 약속이다.
구글 어스의 위성사진에서 보았던 그 푸른 숲은 내게 말한다. 집은 사라져도 그곳에서 세운 원리는 남는다고. 나의 형태주의는 이제 이 글을 마치는 나의 손끝에서 다시 시작될 것이다.
나만의 '꼴값'을 완성하겠다. 중력을 이기고 우뚝 선 나의 뒷모습이야말로, 내가 평생을 바쳐 추적해 온 가장 아름다운 형태가 될 것이라 믿는다.
성북동 사라진 좌표 위에서, 나를 향한 항해를 마치며.
mookss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