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를 남기는 형식
플라톤의 대화는 무엇인가
플라톤은 철학을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대화를 남겼다.
플라톤의 대화편은
하나의 주장을 전달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질문과 응답이 오가고,
정의가 제시되었다가 흔들리며,
결론에 이르지 못한 채 멈추는 장면을 기록한다.
이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사고가 어떻게 진행되는가이다.
플라톤은
철학을 교리로 정리하지 않고,
사고가 작동하는 과정을
대화의 형식으로 남겼다.
그래서 그의 대화는
답을 제공하지 않고,
독자에게 사고의 책임을 넘긴다.
이제,
그 대화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그대로 살펴본다.
메논 편
소크라테스
그대는 덕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메논
안다. 덕이란 훌륭한 시민이 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훌륭한 시민이라면
아이에게도 같은 덕이 필요한가?
메논
아이에게는 아이에게 맞는 덕이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덕은 하나인가, 여러 개인가?
메논
여러 개일 수도 있겠다.
소크라테스
그대는 덕을 말한 것인가,
아니면 덕의 예를 나열한 것인가?
메논
… 예를 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
덕이 무엇인지 말하지 못한 셈이군.
라케스 편
라케스
용기란 전투에서 물러서지 않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무모하게 돌진하는 것도
물러서지 않는 것 아닌가?
라케스
그것은 용기가 아니다.
소크라테스
그 둘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라케스
용기는 판단에 따르지만,
무모함은 그렇지 않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용기는 판단인가, 행동인가?
라케스
지금은 분명히 말할 수 없다.
소크라테스
그대의 말은 설득력이 있으나,
아직 충분하지는 않다.
변명 편
소크라테스
사람들은 내가 지혜롭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재판관
그렇다면 왜 그대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가?
소크라테스
묻지 않고서는
삶을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
“검토되지 않은 삶은
인간에게 살 가치가 없다.”¹
AI 시대 왜 이 대화가 다시 필요해졌는가
플라톤의 대화는
질문이 하나의 답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대화는 계속되지만,
결론은 남지 않는다.
이 형식은
오늘날 우리가 AI와 나누는 대화 속에서도
낯설지 않게 반복된다.
AI는 답을 제시하지만,
그 답은 확정되지 않는다.
사실 여부는 다시 확인되어야 하고,
근거는 재검토를 요구한다.
질문은 멈추지 않고 이어진다.
이때 사고는
단일한 질문의 형식에서 벗어나
대화의 형식으로 유지된다.
플라톤의 대화가 그랬듯,
AI와의 대화 역시
정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사고가 멈추지 않도록 붙들어 둔다.
고대의 플라톤은
AI 시대를 예견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AI 시대에 다시 필요로 하게 된
사고의 형식은
이미 그의 대화 속에 남아 있다.
[1] 플라톤, 변명(Apologia), 38a.
그리스어 원문: *ho de anexetastos bios ou biōtos anthrōpō*.
국내 번역본에서는 “검토되지 않은 삶은 인간에게 살 가치가 없다”,
사진 : Plato, Republic, Medieval Greek manuscript (9–10th c.),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Paris (Parisinus graecus 1807),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Bn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