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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풀 Jan 12. 2023

귤과 인성 쓰레기의 연관관계

옷깃을 여밀 때면 동네 곳곳 새콤한 주홍빛 전구들이 반짝인다.

집집마다 귤 내음으로 가득한 늦가을, 초겨울


“ 제주에서는 돈 주고 귤 사 먹으면 인성 쓰레기래. ”


적어도 두 번은 사용한 듯한 구깃구깃한 종이봉투가 품에 묵직하게 안겼다. 새콤한 표정으로 달콤한 귤과 시큼한 말을 건네주었다. 인성 쓰레기라니. 이 감귤 국에 내려와 처음으로 주홍빛 찬란한 동그라미를 대가 없이 받은 날였다. 자신을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쓰레기 신세를 면했다. 현관 앞에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큰 검은 비닐 속 보석처럼 빛나는 노지 귤! 너무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아니 대체 누가 내 인성을 걱정해준 거지?

구세주는 옆집에 사는 집주인이었다.   


- 어머, 웬 귤이에요~ 이렇게나 많이 주시다니요~

- 저희 식구 먹을 거 따면서 맛 좀 보시라고요 조금 담아봤어요.

- 아니, 한 달은 먹겠어요! 혹시 밭이 있으세요?

- 네 뭐 하하, 제주는 거의 다 귤 밭 하나씩 있어요~ 다 먹으면 말해요 또 줄게~



그 후로도 문 앞에 귤은 계속 쌓여갔고, 집주인뿐 아니라 몇 안 되는 지인들까지도 시린 바람에 손 비벼가며 귤을 건네 왔다. 냉장고 문을 열면 1/4칸이 주홍 주홍 했고, 김치 냄새보다 귤 냄새가 한 수 위였다. 냉장고 속 김치 냄새를 없애고자 많은 투자와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했지만, 저 정도의 귤이면 우린 귤 밭 속에서 물을 마시는 기분을 낼 수 있을 정도다.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했다. 늘 남편에게 얘기했다. 우리는 참 복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이렇게 귤을 사 먹지 않아도 되는 인성을 만들어주는 지인들 덕에 너무나 행복하다고.




 '똑똑' 10월부터 노크하는 노지 감귤은 11월이 되면 우수수 나오기 시작한다. 이 작은 섬이 귤 태엽으로 인해 척척척 돌아가게 된다. 도로 곳곳 귤 실은 차들이 기름을 흩날리며 달린다. 귤 밭들마다 콘테나가 하늘 높이 쌓여있고, 작고 큰 여러 손들은 각각의 비닐을 주홍빛으로 채우기 바쁘다.

 


귤밭은 맑은 날도 흐린 날도 참 예쁘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목선을 타고 가슴골까지 내려오는 12월의 제주. 아무리 따뜻한 남쪽 제주라 해도 겨울 바닷바람에 콧물은 피해 갈 수 없었다.

  

이른 하원을 하러 간 어린이집 문 앞에는 '마음껏 가져가서 드세요'라는 따뜻한 한 마디와 함께 아래 작은 글씨로 "OO부모님 귤 밭에서 직접 따 오신 거예요"라고 적혀있었다. 여러 크기의 귤들이 가득 담긴 콘테나를 보며 못난 식탐에 얼마나 가져갈까 고민하는 중 아이가 나왔다. 아이는 가방 미어터지게 귤을 채운 후 양손에 하나씩 쥐고 선생님께 인사를 하며 나왔다(식탐은 분명 유전이다).

  

저녁 식사 후 귤을 많이 먹어도 되는지 묻는 아이 말에 잠시 잊고 지냈던 해프닝이 떠올랐다. 귤 때문에 병원도 달려갔던 그때를 잊고 살고 있었다. 돌 즈음부터 주위 사람들이 아이를 보고는 얼굴이 점점 노래진다고 입 모아 말을 했다. 황달인가? 혹시 간이 안 좋은 건가? 발가벗겨 구석구석 살펴보니 얼굴부터 몸 손발바닥까지 노란빛으로 변해 있었다. 걱정과 아이를 싣고 병원에 갔다.


육아책 한 페이지 읽지 않았던 무지하고 용감한 엄마는 12개월 아이의 1일 귤 섭취량이 1.5개라는 걸 소아과 의사에게 처음 듣게 되었다. 1일 열댓 개씩 먹어대던 아이는 '귤 과섭취로 인한 착색'이라는 처방을 받았다. 귤, 당근을 많이 먹으면 피부가 귤색으로 착색이 될 수 있다며 적당히 먹이라는 애정 어린 꾸중을 들었다. 한껏 가벼워진 두 발로 병원을 나서고는 양손 무겁게 사과를 사서 귀가했다.



 

귤 착색에 대해 이야기하면 다들 농담도 잘한다며 믿지 않곤 했는데, 감기약을 타러 간 읍내 병원에서 나가는 뒤통수에 말씀하셨다.  "ㅇㅇ는 귤 조금만 가져가 ~ 얼굴이 노오란 게 귤 많이 먹은 거 같아 ~" (이 병원의 신뢰도가 급상승했다.)

 

나가는 입구에 역시나 큰 귤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간호사 한 분의 아버지께서 무농약으로 키운 거 라며 많이 챙겨가라고 손을 잡아끄셨다. 못 이기는 척 주섬주섬 주머니를 볼록볼록 채웠다. 

'무농약이라니 이건 아이를 먹이고 어린이집에서 받아 온 귤은 내 입으로 넣어야겠군.' 

집어가는 사람은 관광객과 비타민 섭취가 필요한 감기 걸린 이 아이뿐였다. 왜 다들 안 가져가는 거지?


약을 타러 간 약국에도, 옷을 찾으러 간 세탁소에도, 사무용품 판매하는 곳에도, 맛집 식당에도 가는 곳마다 입구에 늘 귤이 쌓여있었다. 여쭤보면 내가, 우리 부모가, 나의 자녀가 귤 밭을 한다고 많이 챙겨가라며 가방에 두세 개 더 넣어주시곤 했다. 찐하게 느껴지는 감귤 국의 바이브.


제주는 정말 우리 빼고 다들 귤 밭을 가지고 있나 보다.




히뽀의 네 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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