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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풀 Jan 12. 2023

글 쓰는 제주 엄마들

모임 일지-3.  10/6, 목요일

새벽 두 시쯤 평소보다 늦게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잠이 오지 않는다. 동이 트면 사계 쪽으로 그녀들을 만나러 갈 것이다. 이 모임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완전체가 만나는 날이니 오늘 만남은 큰 의미로 다가온다. 우리는 어떤 하모니를 이루게 될까?


사계리 가는 길



서로 평생을 모르고 살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네 명의 여자가 이곳 작은 섬에서 만났다.


가끔 연락하며 지내는 사주 언니의 말처럼 남들보다는 조금 빠른 속도로 삶이 흘러가는 경험을 몇 번 겪고 나니 웬만한 일에는 그냥저냥 넘어간다. 무언가를 새롭게 하려는 의지는 점점 사라지고 그저 무탈하기만을 바라는 재미없는 사십 대가 되어버렸다. 매우 놀라는 일도 사라졌지만 설레는 일은 더더욱 생기지 않는 날들에 오늘은 특별한 선물 같은 날이다. 오랜만에 시속 80킬로가 넘는 속도로 운전했다.     


말보다 글로 시작한 인연이라 그런지 서로가 낯설 듯 낯설지 않다. 말은 바람에 흩날려 사라지지만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쓴 글에는 그 사람의 진심이 담겨있다고 믿는다. 모두 나처럼 썼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했으리라.


오름을 오르기로 한 날이니만큼 우리 네 명은 운동화와 바지 차림이었지만 결국 오름을 오르지는 못했다. 서로의 글을 나누고 이야기를 듣기에도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흘렀다.



내가 쓴 나의 이야기를 각자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눈을 감으니 그녀의 집 현관에서 반딧불을 본 것만 같고 오랜만에 앨범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주 도착 첫날 돌아가 버린 발톱 이야기에 내 발가락이 얼얼하여 괜히 내 발도 한번 바라보고 되고 이곳의 음식값은 나만 비싸다고 느끼는 게 아녔구나... 슬며시 웃음이 나오면서 며칠 전 먹었던 망고 빙수의 달콤함이 느껴진다. 전혀 모르는 타인의 삶에 잠시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다.


내 차례이다. 나는 너무 떨려 염소 소리가 나올 것만 같았지만 인제 와서 내뺄 수도 없는 일. 눈으로 내가 쓴 글을 따라가 본다. 읽어 내려가다 보니 아주 먼 곳의 기억까지 어제 일처럼 손에 닿을 것만 같다. 내 이야기가 끝나고 하얀 여백의 공간이 신경 쓰이지 않는다. 무언가 안전하다는 느낌이다. 이 안전함을 방패 삼아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토해내게 될 것 같다. 함께 콧물을 뿜어 댈 만큼 질질 짜다가도 윗니가 10개는 드러날 정도로 웃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오늘도 네 명의 여자는 조금은 찌질하여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문자로 쏟아낸다. 각자의 나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내며......




<J, 완연한 엄마 생활 > 세 번째 모임 일지 끝. /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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