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두 번째 리드①
영원한 1등은 없다. 그러니 삼성의 위기는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르겠다. 그 위기가 꽤 길어진다. 지난해 하반기 ‘삼성 위기론’이 불거졌고 여전히 삼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삼성이 경쟁력을 회복했다는 신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 정도면 내부의 위기 진단이 잘못됐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다.
위기론 배경에는 반도체 사업의 부진이 깔려 있지만 이건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모바일은 출입하지 않기 때문에 자세한 상황은 모르지만, 스마트폰 사업도 녹록지 않다는 분석이 다수다. 삼성 전체의 문제라고 볼 여지가 상당하다.
삼성 출입기자임에도 파악할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다. 삼성을 다니는 친구도 없다. 뒤늦게 삼성 위기론을 분석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간 출입기자로서 겪은 일화와 안팎에서 들은 얘기를 종합하면 왜곡된 성과주의의 영향이 크다.
성과주의는 삼성의 인사 원칙을 보여주는 핵심 키워드다. 모든 대기업들이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삼성의 경우 성과주의가 심하다는 게 많은 이들의 평이다. 성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면 근로 의욕을 고취시키는 효율적인 수단이다. 삼성에서 최연소 임원이 거듭 나온 게 이런 까닭이다. 임원 승진뿐 아니라 평직원 진급과도 연관이 깊다.
하지만 무엇이건 과유불급이다. 왜곡된 성과주의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덮도록 부추긴다. 자세히 적을 수는 없지만, 삼성의 경쟁사가 차세대 AI 메모리라고 불리는 어떤 제품을 먼저 양산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취지의 기사를 작성했다. 물론 삼성 역시 양산 채비는 다 마친 상태라고 했다.
양산 시작과 양산 준비 완료는 전혀 다른 의미다. 그래서 경쟁사의 경우 양산한다고, 삼성전자는 양산이 가능한 상태라고 썼다. 기사가 나가기 전까지는 삼성에서 적잖은 반발이 있었다. 기술력에 큰 차이가 없다고, 경쟁사가 앞서가는 것처럼 보이면 안 된다는 하소연이었다.
납득이 되지 않았다. 사실을 적는데 그 사실로 1등 이미지가 흔들린다면, 사실을 사실대로 쓰지 말라는 의미였다. 기사 방향을 원하는 대로 바꿀 게 아니라, 삼성이 더 앞서갈 기술을 만들고 고객사를 확보하면 될 일이었다. 이런 대응에서는 삼성에 불리한 기사는 최대한 막아야 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찾아볼 수 없었다.
문제를 직면하고 인정하기보다 외면하고 부정하는 태도는 지난해부터 이미 수차례 겪은 터였다. 오히려 삼성이 지금 잠깐 흔들리지만 곧 살아날 것이란 기사를 나도 썼고 선후배도 썼고 수많은 언론사가 썼다. 있는 그대로 쓰고 싶어도 내게 부탁을 가장한 압박이 들어왔고 선배에게도 전화가 갔다. ‘위에서 불러서 깨졌다’는, 기자를 상대하는 삼성 홍보팀의 내막을 보면 과한 성과주의가 어렴풋이 느껴진다.
왜곡된 성과주의를 거듭 지적하는 건 삼성 반도체 출신의 한 인물에게 얘기를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서로 자기 성과를 올리려고 연관 부서와 협업을 잘 안 한다”며 “그러다가 잘못되면 내 탓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왜곡된 성과주의는 그 자체만의 문제를 넘어 부서 간 칸막이를 만들고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
하지만 언론사가 이런 점을 짚을 수는 없다. 현실적 문제다. 언론사는 정의의 사도가 아닌 민간기업이다. 삼성이 주는 돈을 받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 내가 쓴 기사도 그래서 많이 내려갔고 다른 내용으로 둔갑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거다. 삼성 출입기자로서 바라는 점이 있다면, 삼성이 다시 제대로 부활하는 것이다. 부활의 의미는 단순한 1위 탈환이나 기술 한계 돌파만이 아닌, 정도를 걷는 내부 문화까지 포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