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사적인 장면②
뒤늦게 후회감이 들었다. 말을 아끼고 좀 더 들을 걸 하는. 너무 과하게 내 생각을 밀어붙인 건 아닌지 하는 반성이다. 일이 발생한 지 불과 1~2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경솔했던 게 맞겠다.
발단은 정치 얘기였다. ‘불목’ 감성에 취한 직장인들로 북적이는 맥주집에서, 친구와 12·3 계엄 사태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 그는 민주당 A 의원과 국민의힘 B 의원을 후원하고 있다고 했다. A는 계엄 해제에 앞장섰고 B는 국민의힘에서는 드물게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에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그나마 제대로 된 정치인이 아닐까 싶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후원은 개인의 자유다. 다만 바른 정치를 하려는 정치인이 있다는 생각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계엄 사태 이후 두 달간의 국회 파견 영향이 컸다. 짧지만 ‘정치 혐오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곧장 친구 의견에 반박했다.
“내 경험상 정치인은 다 똑같더라고. 그 B 의원도 계엄 해제할 때는 기자들이 아무리 설득해도 안 나왔어.”
그 뒤로도 내가 듣고 보며 느낀 일화를 친구에게 일부 소개했다. 친구가 좋아하는 유력 정치인이 사실은 계산이 빠르고 그에 맞춰 주저 없이 행동하는 인물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요지는 바른 정치인이란 없으며 철저히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거였다.
친구는 미소를 유지하며 내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어떤 대답을 내놔야 할지 막막한 듯 짧은 침묵도 스쳐갔다. 이따금 시선이 방황하는 느낌도 들었다.
민감한 정치 얘기에도 술자리는 갈등 없이 끝났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선 찝찝한 뒷맛을 느꼈다. 정치인의 실상을 알려주겠다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친구 생각에 반대 의견을 낸 게 신경 쓰였다. 모든 정치인이 이해관계만 따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 주장의 타당성이 당시 상황을 불러온 원인은 아니었다.
본질은 선민의식이었다. 남들보다 세상을 더 많이, 그리고 잘 안다는 자만이었다. ‘넌 틀렸고 내가 맞’기 때문에 친구를 가르치려 했다. 기자를 준비할 때부터 조심하려 했다. 기자는 독자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의제를 던지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의제 설정 자체에 의견이 개입하기는 하지만, 판단보다는 관찰자에 머물러야 한다고 봤다.
그럼에도 어느새 선민의식이 뇌에 스며들었다. 선민은 철저한 판단자이자 남 위에 군림하려는 특권층이다. 기자는 자기 직업에 자부심을 가질 수는 있어도 우월감을 느껴선 안 된다고 믿어왔다. 늘 경계하고 주의하려 했지만 수준 높은 자기 검열을 요구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과제다.
뭔가를 안다는 건 바꿀 여지가 있다는 거다. 모르면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조차 할 수 없다. 주변에서 ‘아이고 기자님’이라고 추켜세워도 리스크 관리를 위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 주변 기자들과 경험을 나누고 스스로 곱씹으면서 자기 자신을 채찍질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