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취향에 대해 글을 쓰는가?
너는 뭘 좋아해? 취향이 뭐야?
21년 여름, 막 대학에 입학한 내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었다. 극 I형 인간에게 쏟아지는 질문세례 중 가장 대답하기 힘들었던 물음이기도 하다. 그러게, 내가 뭘 좋아하는 걸까? 나의 취향?
책을 좋아하지만, 입시 3년 동안 담쌓은 채 지냈기에 좋아한다 말하기엔 뻔뻔스럽게 느껴졌다. 그림도 입시미술만 주야장천 그렸을 뿐, 정말로 좋아해서 그린 그림은 드물었기에 입에서 내뱉을 수 없었다. 그 외에도 캐릭터 '무민'을 좋아하나 당당히 말하기엔 부끄러웠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나는 재빨리 "잘 안 떠오르네, 너는?"이라 말하며 상대에게 바통을 토스하기 일쑤였다.
그러자 다들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취향을 찬찬히 말해주기 시작했다. 본인이 좋아하는 패션 스타일, 가수,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잡지 그리고 디자이너와 디자인 스타일•••거침없이 말해내는 이도, 조금은 버벅거리며 말하는 이도 있었지만 모두 취향을 표현하는데 스스럼없었다. 폰 케이스, 배경화면, 가방에 달린 키링, 노트북 위에 붙이는 스티커 그리고 티셔츠에 새겨진 일러스트까지, 세밀한 부분 하나하나에 애정 어린 주관과 자부심이 느껴졌다.
열정적으로 최애를 말하는 이들 앞에서 느낀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나는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이다. 인간 행복을 추구하는 디자인을 공부하겠다는 녀석이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것 하나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다니, 응시 자격 미달이 아닌가. 배우 지망생이 좋아하는 영화, 하다못해 한 장면도 말하지 못하는 꼴과 같았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곧 취향의 필요성을 느낀 게 이때부터였다.
그 후부터 나는 취향을 쌓는 것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디자인 서적은 물론 잡지, 소설, 시집을 읽으며 인상적인 글귀를 수집하고 써먹을 방도를 궁리했으며, 핀터레스트로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스크랩하며 취향의 표본을 늘리기 시작했다. 자신 있게 어떤 책, 그림, 만화, 캐릭터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 더 나아가 내가 애정하며 하고 싶은 디자인을 남들에게 자신감 넘치게 얘기할 수 있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수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이제 나 자신의 취향에 대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군대에서 쌓아온 수많은 필기들을 '정의'하고, 나의 작업에 결합하며 체화를 이루는 과정을 적어보기 위해서다. 그 과정에 산재할 수많은 성찰, 고민 그리고 욕망에 대한 순수한 대면을 더욱 능동적으로 마주하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오아시스를 발견했으니 이제는 식수와 농업용수로 가공할 차례가 온 것이다.
나의 글들이 업계의 중견 디자이너 분들이 산재한 브런치에서 전문성을 갖긴 어렵다. 아니, 그래서 전문적일 필요가 없다. 나는 그저 '인형을 좋아하고 산업디자인 1학년을 마쳤지만 막상 군대에서는 시각 디자인 분야에 더 관심이 많은, 더 나아가 글 쓰는 일에 매력을 느껴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디자인 학도니깐. 그래서 나는 솔직한 자기표현을 강점으로 내세우려 한다. 새로운 것에 대해 어렵지 않게 시도하고, 주체적으로 사랑하는 분야에 대한 지식을 탐구하며 인사이트를 정리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게 글감으로 보인다. 취향이라는 익숙하지만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며 기록하는 모험가로서 너무나 행복한 상황이다. 어차차. 처음에는 어떤 섬을 가볼까? 일단 자기소개부터 해보고 시작하려 한다. 안전한 향해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무미류. ‘저’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게 꿈인 디자인 학도입니다.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적어보고 싶어 글쓰기를 최근에 시작하였습니다.
명색이 사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인 학도인데, 저라는 사람부터 먼저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글을 쓰며 저 자신을 돌아보고, 더욱 솔직해져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