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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미류 Jul 19. 2024

2. 레트로는 양산형 판타지가
아니다.

진심과 정성이 담긴 리바이벌



들어가며


지난 글은 본격적인 탐구 이전 머릿속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무의식 언저리에 잠들어있던 기억까지 정밀히 탐구하며, 내 머릿속 각인돼있는 ‘레트로’들과 각각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하여 향후 탐구 방향이 될 표제어와 시사점들을 추출할 수 있었는데 간략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시티팝을 좋아하는 마음은 순수한 애(愛)이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유대감의 레트로다.
레트로 퓨처리즘은 전용하고 싶어지는 양면성의 매력이 핵심이다. 
Y2K는 ‘한껏 튜닝한 미래형 외제차’ 혹은 ‘튜닝의 끝은 순정'이다.
Acubi는 정반합의 패션이다.


레트로의 매력은 선망, 향수 그리고 미적 가치이므로 
결론적으론 ‘낭만’으로 우리를 매혹시킨다 할 수 있다.

레트로와 뉴트로의 차이는 ‘능동성’이다. 레트로가 특성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뉴트로는 능동적인 재해석,  즉 정반합을 통해 유행을 선도한다. 그래픽과 패션 등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레트로 퓨처리즘은 특유의 양면성과 맥시멀리즘의 매력으로 뉴트로 열풍의 핵심 소재로 자리 잡았다.

Y2K는 ‘세기말 감성’ 답게 순정과 튜닝 양 쪽의 극단에 자리 잡고 있는데, 여기서도 핵심은 ‘정반합’이다. 



레트로의 매력은 선망, 향수
그리고 미적 가치이므로
결론적으론 '낭만'으로 우리를 매혹시킨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매력의 원천은 무엇인가?
레트로라는 문화는 어떻게 성립되었는가?

이번 글은 첫 번째 시사점에 대한 탐구이다. 이 명제가 탐구를 시작할 때 하였던 질문, '내가 레트로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한 답이자 아울러 추가적으로 도출해 낸 명제들의 밑바탕이 되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뉴트로든, 레트로 퓨처리즘이든, Y2K든 모두 레트로에서 파생되었기에, 그에 대해 집중 공략을 한 후 넘어가는 게 큰 그림을 보았을 때 적절한 방향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레트로는 단순한 과거부터 과거에 집착하는 보수적 태도, 대중문화의 소비를 위해 탄생한 새로운 유행에 까지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분명한 건 향수와 매혹감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걸까? 레트로 안의 '낭만'의 원천은 무엇이길래? 그에 대한 대답의 근거를 쌓기 위해 레트로의 기원, 특성, 예시 그리고 비판점 등을 탐구하고자 한다. 그토록 좋아하는 문화임에도 이제까지 레트로에 대해 깊이 공부해 보았던 적은 없었기에, 이번 기회룰  통해 진정한 '레트로 전문가'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한 작업이 다른 명제들과도 이어지며 새로운 탐구의 갈피를 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2. 레트로는 양산형 판타지가 아니다.




레트로의 기원


우선 레트로란 단어의 시작에 대해서 알아보자. 레트로란 단어는 1970년대 프랑스 파리, 특히 가까운 과거의 아방가르드 영화 속 파리지엔의 패션 하우스와 노점들에 대한 이미지가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사용되었다. 1) 그렇다면 파리지엔의 패션하우스와 노점들은 어떤 이미지길래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은 걸까? 

(1) : 1947년경, 몽테뉴가 30번지의 외관 / (2) : 1969년, Betty Catroux, Yves Saint Laurent 및 Loulou de la Falaise
(3) Jane Burkin : 1960년대 프렌치 시크의 아이콘인 그녀의 패션은 지금 보아도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엄청 시크한 걸


본 연구에서는 패션 하우스를 쿠튀르 하우스에서 시작하여 이를 유지하거나, 오트 쿠튀르는 없어졌지만 그 전통을 이 어받아 독창적인 디자인, 최상의 품질, 엄격한 장인 정신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는 럭셔리 패션 브랜드로 정의하였다. 2)
이브 생 로랑은 1961년 피에르 베르제(Pierre Bergé)와 함께 파리에서 자신의 하우스를 창립하였다. (...) 생 로랑 하우스의 디자인 정체성은 하우스 창시자 이브 생 로랑의 디자인 특성을 기반으로 한다. 그것은 시대를 반영한 혁신성, 다문화적 사고, 예술적 감성, 오트 쿠튀르 전통을 계승한 우아하고 시크한 이미지이며 현대의 당당한 여성상을 그려냈다. 그의 컬렉션 테마나 시그니처 룩, 스타일은 하우스의 상징이자 아카이브로 남았다. 이러한 하우스 아카이브를 후대 수석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디자인 감성을 더하여 동시대적인 디자인으로 재해석하였다. 3)
French Chic Style: Stylish Simplicity 

Most of what we consider Parisian design falls under the umbrella of chic style. This should come as no surprise, considering the term means smart elegance and sophistication. This sartorial genre sticks to the French style rules and dabbles little in the world of fads. Say au revoir to loud patterns and fussy details and bonjour to solid hues and minimalist construction. 

우리가 생각하는 파리지엥의 대부분은 '시크'에 속합니다. 시크의 명석한 우아함과 세련미를 고려하면 이는 놀랍지 않습니다. 이 복식은 프랑스 스타일을 고수하며 유행의 세계에 거의 손을 대지 않습니다. Fussy 한 세부 요소와 산만한 패턴에 대해서는 au revoir (헤어지자)라고, 미니멀한 구성과 단색에 대해선 bonjour (안녕!)라 말합니다. 4)


  파리지엔의 패션하우스는 오토 쿠튀르-주문 제작을 통해 만들어지는 일류 디자이너의 고급 여성복을 제작하는 의상점에서 시작하였다고 한다. 샤넬, 디올, YSL 등 현재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브랜드들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그들이 전후 새로운 시대의 핵심으로 내세운 단어는 '시크'였다. 무던하면서도 품위가 넘치며, 과하지 않은 '꾸안꾸'의 자연스러운 매력의 시크야말로  현대적 차원의 혁신적인 패션에 걸맞은 무드이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들은 시크에  프랑스 고유의 무드를 불여 넣어  '프렌치 시크'를 탄생시켰으며 이는 프랑스를 넘어 전 세계의 패션 르네상스를 이끌며 현대 패션의 정수로 자리 잡았다. 간단히 걸치기만 해도 정직한 태가 나는 스트레이트 데님과 흰 셔츠, 무심한 듯 깔끔한 레이어드 룩, 과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메이크업과 헤어의 조화. 마치 옷들이 '이게 난데, 뭐 어쩔 거야? 별 거 없는데도 이쁘지?'라 말하는 듯하다. 프렌치 시크는 현대인에게 영원한 클래식이자 로망의 대상이다. 



(1) / (2) : Les bouquinistes de Paris


  12일 오후 2시, 가게 문을 여는 제롬 칼레 씨의 손이 분주했다.

  그의 매대는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로 유명한 파리 센강 퐁뇌프다리 바로 옆 강둑에 있다. 그는 강둑에 세워진 초록색 철제 매대의 지붕을 열고 책 한 권을 비닐로 소중하게 감쌌다. 그가 싼 책은 1482년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의 원본 표시가 있는 귀중한 책이다.

 25년 넘게 센강 변으로 출근하고 있는 그의 직업은 ‘부키니스트’다. 부키니스트는 파리지앵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직업이다. 헌책이라는 뜻의 ‘부캥(bouquin)’에서 비롯된 용어로 헌책 노점상이라고 보면 된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시작한 16세기에 등장한 부키니스트는 처음에는 책을 메고 다니면서 팔았다. 이후 퐁뇌프다리에 노점 형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5)


  파리지엔의 노점에 대해서는 '부키니스트'를 통해 알 수 있다. 헌책 노점상인 부키니스트들은 희귀하고 가치 있는 책들을 찾기 위해 진심을 다하며, 과거의 유산을 찾아 소장하고 판매하는 일을 즐기는 이들이다. 대중들은 그들이 판매하는 중고 도서들을  하층민의 전유물이 아닌, 의미가 담긴 ''한 소유물로 생각한다. 그 책에 숨겨져 있는 진정한 의미를 알고 구매하는 것이든, 그저 구별과 개성의 수단으로써 관심을 기울이든 중요한 사실은 대중이 부키니스트들에게 기꺼이 지갑을 연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방가르드 영화 속 파리지앵의 패션하우스와 노점은 시크와 힙이란 고유의 매력들로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볼 수 있다. 과거의 상품이 그저 중고 상품이 아니라, '가치'를 가진 독특한 대상으로 인식되기 시작되며 레트로 열풍이 일어난 것이다. 즉,  레트로는 '가치변화'의 문화이다. 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다양한데, 흥미로운 두 가지 시선을 꼽아보았다. 

   첫 번째는 레트로를 일종의 대안적인 문화 스타일이라 보는 관점이다.  패션 하우스는 대놓고 명품 이야기이며, 부키니스트도 엄밀히 따지면 어마어마한 고가의 장서를 파니 대중이 쉽게 소비하기는 힘든 문화들이다. 하지만 꼭 그 '비싼' 원본을 고집해야 할까? 고가 상품만 편협적으로 바라는 게 아닌 타협할 줄 안다는 게  엔틱과 레트로의 차별점이다. 대중들은 본인들의 여건에 맞는 대안을 찾아 적당한 가격을 지불하며 원본과 동일한 감성을 즐긴다. 이러한 모습에 대해 영리한 소비라 볼지, 조잡한 복제라 생각할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두 번째는  계급론적 관점에서 레트로를 '오래전부터 나뉘어있던 위계를 찢어버린 존재'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사회 연구자 Sarah Baker 교수는 레트로란 '역사적 시간을 가로지르면서 문화자본과 사회계급 질서에 변화를 만드는 문화실천'이라 본다. 혁명 이전 계급 사회에  그저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구분하는 수단일 뿐이었던 유행이 변모한 사례로 레트로를 지목한 것이다. '계급'을 위해서가 아닌 '개성'의 수단으로써, 그것도 '중고'를 취급한다는 특성은 분명 역사를 뒤돌아보았을 때 혁명적인 요소다. 


 두 관점에서 찾을 수 있는 레트로의 필요조건은 무엇보다 '근대성'이다. 대안적인 문화로 보든, 위계전복의 문화로 보든 레트로는 자유선택-자유책임, 사회 계급의 혁명, 시민 권리의 신장과 산업화를 전제로 둔 문화이다. 또한 변용을 위해 문화의 풍요를 요구하는 문화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20세기 중반에야 모든 전제가 충족되며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어렵게 쌓아 올린 만큼, 레트로의 문화적 힘은 무척 강력하다. 최근에 들어서는 매체의 발달로  단순한 중고 소비를 넘어 디지털을 매개한  콘텐츠 소비까지 가능해지며 대상의 폭이 더욱 넓어져 그 힘은 더욱 강대해졌다. 게다가 신시대의 미디어는 과거의 무수한 자료, 아카이브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니 응용의 폭도 넓어졌음은 물론이다. 레트로는 신시대 문화의 랜드마크이며 나날이 그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레트로 상인


   레트로를 '적당한 가격', 그리고 '개성' 수단으로 살 수 있게끔 가능케 하는 이들은 그렇다면 누구일까.
바로 
 '레트로 상인', 문화 매개자들이다. 이들은 상단에서 언급한 것처럼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간편하게 감성을 즐길 수 있게 해 준다. 아방가르드 영화의 경우, 
명품, 고서의 복제본이나 유사 상품을 제시하는 상인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는 현재에도 동일한데, 응답하라 시리즈, 써니 등 복고 열풍을 일으켰던 영화나 드라마를 생각하면 명쾌하다. 소비의 흐름을 타고 올라가면 결국 선두에는 PD라던지 작가들이 있다. 그들이 과거의 문화들을 선별하고 재치 있게  조합하여 기획한 매체물이 대형 방송사를 통해 제작, 유통되며 우리는 '복고' 문화를 소비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곧 레트로 상인들 없이는 레트로가 세상의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을 거란 이야기와 같은데,  대중은 보고 싶지 않은 부분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먹기 좋은 부위만 골라 내놓은 드라마를 원하기 때문이다. 영화, 드라마를 봐도 유튜브에서 일단 편집본을 찾는 게 요즘 대중의 니즈이다. 

레트로 상인들은 어떠한 요소가 대중에게 먹힐지 수만 번 고민하였을 것이다. 대중이 사랑하는 고유의 시크한 매력과 가치, 그 모호한 개념이 대체 무엇일까? 대중이 사랑하는 먹기 좋은 부위의 특징은 뭘까? 그들은 이를  '노스탤지어'로 정립하였다. 노스탤지어는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뜻하는데, 단지 그뿐만 아니라  과거 열정적이었던 자신, 타인으로부터 사랑받은 기억 그리고 열정에 넘쳤던 사회상 등 모두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즉, 선망과 찬사를 내포한 그리움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친 사회적으로 작용하였을 때 매우 큰 힘을 발휘하는데. 예컨대 긍정적인 회상과 작용을 통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사회적 유대감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노스탤지어를 느끼는 것은 긍정적인 태도로 자신의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자존감을 향상할 수 있다(Davis 1979). Sedikides et al.(2008)은 자아 연속성을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아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고 정의하면서, 과거의 좋았던 순간을 회상하는 것은 그때의 긍정적인 자신의 모습을 떠올림으로써 긍정적 자아 연속성을 활성화함을 확인했다 6)


상인들은  노스탤지어를 잘만 이용하면 대중의 선택지에서 우선순위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점을 읽어냈다. '노스탤지어'의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그들은 철저한 연구와 계산 끝에 과거를 회고하며 향수를 느끼고 음미할 수 있는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그러한 점에서 레트로 상인들은 문화의 약제사라 불리기에 충분하다. 




노스탤지어


과거에 대한 그리움, 동경, 찬사 모두를 포함한 개념인 노스탤지어. 이 친구의 재밌는 특징은 바로 세대에 따라, 향유 집단의 특성에 따라, 그리고 개인의 취향과 접하는 시점 등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인식된다는 점이다. 사람들마다 제각각인 니즈를 마치 맞춤형 수제화 장인처럼 찰떡같이 알아듣고는 턱 하니 충족 안을 가져오며,  그리고는 '너 이런 거 좋아하는구나?'라는 질문을 던지며 취향이란 카테고리로 쏙 들어가 버린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걸까?  바로 노스탤지어의 적용이 심적요소뿐만 아니라 외적요소, 그러니까 미적 가치들, 당대의 거리 모습이나 패션, 음악 등으로도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는 수용상을 다양하게 만들며 심적인 노스탤지어로의 전이를 이끌며 레트로를 맞춤형 프로토콜로써 기능케 한다. 저명한 레트로 상인들이 만들어낸 작품들을 보며 그 과정을 이해해 보자. 

<Sing Street> (2016)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인 <싱 스트리트>를 예시로 들고 싶다. 영화는 1985년 아일랜드의 더블린, 경제불황으로 어렵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코너는 집안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며 꼴통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고, 나사 빠진 수업, 구시대적인 규칙을 강요하는 교사, 시비나 걸어대는 학생들에게 고통받게 된다. 하지만 불현듯 마주친 모델 라피나에게 첫눈에 반한 후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밴드를 하게 되며 삶의 구원점을 찾게 된다. 영화는 온갖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꿈을 향해 떠나는 두 주인공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하이라이트의 'Dirve it like you stole it'
마지막 장면의 'Go Now'

  내가 그 당시 아일랜드에 살았던 것도 아니고, 사회상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는 이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우울한 상황 속에서도 힘내는 주인공들, 역동적이고 도발적인 밴드 연주, 그들의 패션과 스타일이 마음에 든다. 특히 코너가 학교 축제에서  "Drive it like you stole it"을 경쾌하게 연주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장면을 보면 미소가 지어지며 '나도 한 번쯤은 저런 파티에서 기타 연주를 해보고 싶다'란 생각도 해본다. 더 나아가 코너처럼 멋지게 차려입고 넥타이를 맨 채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마주치며 노래 부르는 나를 상상해보기도 한다. 저렇게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오만하게, 그리고 발랄하게 온 열정을 다 할 수 있을까? 꿈과 사랑을 향해 실행하고 도전하는 그의 모습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목표를 정했으면 끝을 보는' 그를 진정으로 닮고 싶다. 외적 요소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심적 노스탤지어로 이어지며, 결국에는 '긍정적인 태도로 자신의 정체성을 재구성'하게 되는 순간이다. 물론 이는 나에게만 국한될 뿐, 다른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방향으로 노스탤지어로의 전이가 이뤄질 것이다. 

<In the Mood for Love> (2000)

 20세기 중반을 배경으로 하는 홍콩영화에서도 '맞춤형 프로토콜'을 이해할 수 있다. 부모님 세대에게는 심적인 노스탤지어를 일으키는, 사소한 것에 열광하고 눈물 흘렸던 풋풋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소중한 안식처이다. 그러나 현세대에게는 외적 노스탤지어가 크게 작용하며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받아들여진다. 영화 속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 파격적이고 낭만 넘치는 전개에 새로움을 느끼며, 소박하지만 강렬한 빈티지 미장센의 매력에 마음을 사로잡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 스토리와 메시지에  크게 감동을 느낀다면, 그들은 노스탤지어를  기꺼이 본인의 긍정적인 정체성을 구성하는 데 사용한다. 집 안 가구와 소품들의 스타일을 참고한다거나,  신혼 사진이나 커플 사진을 홍콩 영화 콘셉트, 특히 <화양연화> 콘셉트로 촬영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 같은 경우는 사진 보정할 때 홍콩 영화의 미장센 느낌을 적극적으로 이용해보고 싶다.

<Clueless> (1995)

  하이틴 감성-Y2K-또한 같은 맥락이다. 하이틴 감성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방법으로
'키치'를 실천한다. 키치함이 그들에게는 '힙'이다. 평소 노트 꾸미기에 관심이 많았다면 세기말 다꾸 감성을 실천해 볼 것이며, 체크무늬나 베레모, 니트 조끼에 매혹당했다면 기꺼이 그들을 구매할 것이다. 또한  90년대 패션을 경험했던 이들은 향수감을 느끼며 오랜만에 과거의 스타일을 시도할지도 모른다. 혹자는 영화 속 인물들의 삶에 대한 태도, 성장하는 모습에 매력을 느끼며 노스탤지어를 느낄 수도.

 

이러한 노스탤지어의 '맞춤형 프로토콜'이 큰 호응을 얻으며 레트로는 현대 문화의 큰 축으로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노스탤지어 덕분에 레트로는 사람들에게 깊고 내밀한 취향으로 인식될 수 있었으며 이는 '개성'을 중시하는 현재 사회에서 강력한 무기이다. 인풋은 같지만 받아들이는 모습과 아웃풋은 제각각인 모습은 현대인에게 있어 가장 이상적인 문화 소비 방향이다. 




비판 : 레트로토피아


 그러나 레트로에 대한 비판은 분명 존재한다. 이는 레트로가 지나치게 '유토피아적'이며, 과거의 장르를 판타지로 바꿔 비리기 때문이다. 응답하라 1988을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지난 글에서 응팔의 핵심 메시지를 가족애라 서술한 바 있다. 드라마가 보여주는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가족들, 소중한 친구들, 한 동네 한 식구의 이상적인 이미지. 드라마를 보면 행복하고 아련한 감성에 빠져든다. ‘만약 90년대로 돌아가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낭만 넘칠까’와 같은 생각들에 빠지며 노스탤지어의 타성에 젖게 된다. 

   하지만 '실제 과거가 과연 그랬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응팔의 보여주는 과거는 지나치게 미화되었으며 이는 레트로 상인들의 노림수이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2022) / <응답하라 1997> (2012)


어차피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를 통해 가장 격렬하게 소비한 것은 ‘그 시절의 공통 기억’이 아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응팔’은 흔한 비판처럼 ‘복고 취향’의 ‘추억팔이’가 결코 아니다. 현실에는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한 적도 없는 ‘갈등 없는 세상’을 향한 ‘판타지’다. 이 점은 주인공들의 성장기에 초점을 두면서도, 정작 ‘사회적 성장’의 기억은 통째로 삭제했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
그러나 ‘응팔’에서 6년 뒤에 만난 주인공들은 열여덟 살 고등학생에서 조금도 성장하지 않았다는 듯 ‘골목 안’에 머물러 있다. 하다못해 골목 밖 세상을 떠돌다 결국 그 골목으로 되돌아왔다는 식의 흔해빠진 ‘복고적’ 서사조차도 과감히 생략한다. 그리고 그렇게 ‘사회적 성장의 서사’를 삭제해 놓고도 마치 자신들이 성장기를 보낸 그 골목이 자신들을 성장시켜주기라도 한 양 회고한다. 7)


응팔은 오랜만에 들어 반가운 노래들과 단편적인 복고적 미장센을 배경으로 만들어낸 그저 과거를 소재로 한 '판타지' 드라마이다. '아날로그의 따뜻함이란 이런 겁니다'라며 존재하지도 않았던 과거를 소비하라 드라마는 대중에게 종용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에 감동하며 눈물을 흘려댈 뿐이다. 실제로 과거를 겪었던 사람들은 흐릿한 과거를 생생히 본다는 것만으로도 기뻐서 그 내용은 중요치 않아 한다. 실로 '수동적'인 모습이다. 이러니 '레트로는 노스탤지어를 이용해 전략적으로 만들어낸 상품에 불과하지 않은가?'란 시선이나, '일방적으로 수용당하는 걸 건전한 문화로 볼 수 있을까?'란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복고' 패션의 일방적 유행이 레트로의 치부를 보여주었다 생각한다. 복고 패션을 기반으로 정반합을 통해 매력적이고 트렌디한 의상들을 만들어낸 디자이너들을 폄하하는 게 아니다. 패션 감각마저 과거로 돌아갔다는 듯 그저 과거의 옷을 그대로 가져와 입어놓고는 '복고' 감성이라 주장하는 이들을 지목한 것이다. 그러한 행태를 보면 '예쁘지도 않은 걸 자꾸 유행이라면서 들이민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반문 : 진심


하지만 설령 레트로란 문화가 제작자들이 만들어낸 마약성 마케팅 수단이라고 해도, 나는 레트로가 좋다. 그 의도가 결코 전부 순수하진 않아도, 그 속엔 진심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제작자들이 노스탤지어를 저격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까? 생각보다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상단에서 말했던 것처럼, 대중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예능과 드라마를 원하며 그러기 위해선 '유토피아적'인 흐름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제작자는 제작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20세기 소녀> (2022)
영화는 과거의 아련함과 학창 시절 청량감을 표현하기 위한 색감 보정 등 영상미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가장 예쁜 색으로 보정된 과거는 유토피아 같다. 탄탄한 스토리나 치밀한 연출보다 예쁘게 보이는 것에 치중했다는 비판이 일부에서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대중이 레트로 영화에 원하는 건 과거를 날것 그대로 살려내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현재는 고통스럽고 미래는 두려운 만큼 과거라도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모습으로 보정하고, 그곳에 의지해야 살아갈 힘이 생긴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이 영화가 곳곳의 빈틈에도 세계 5위를 기록한 건 대중의 이 같은 ‘레트로토피아’에 대한 열망을 잘 읽어내서가 아닐까. 8)


   레트로 판타지란 과거를 무시하는 게 아닌, 오히려 경외와 찬사를 보내는 2차 창작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소재로 창작물을 만드는 건 그에 대한 깊은 사랑 없이는 불가한 일이다. 그리고 재해석은 원 문화에 대한 통찰력과 이해도, 그리고 감각적인 실력이 없이는 불가한 행위이다. 단지 잘 팔리게 힘 좀 썼다는 이유만으로 제작자들을 지탄하기엔 합리적이지 않다. 오히려 과거의 미를 극대화하여 대중들에게 즐거움과 긍정적인 정체성 구성의 기회를 제공한 그들에게 감사를 보내야 마땅하지 않을까. 물을 흐리는 몇몇 종자들에 의해 레트로의 본질이 폄하당하는 걸 보고 싶지 않다. 




결론


레트로의 매력의 원천은 ‘노스탤지어’의 변화무쌍한 수용성이다.
심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매료되게 만들며 마음속 가장 깊은 취향으로 각인시킨다.
레트로의 성립은 근대성 그리고 문화의 풍족을 기반으로 한다.
또한 무엇보다 ‘레트로 상인-제작자’들의 존재가 대중의 소비를 가능케 한다.

  이번 탐구를 통해 서론에서 언급했었던 두 질문, 레트로의 매력의 원천과 성립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답은 바로 '노스탤지어'에 기반한 근대성-문화성-제작자의 삼위일체이다. 우리는 레트로 상인의 멋들어진 창작물에게서 노스탤지어를 느끼며 이를 통해 긍정적인 자아 충만감을 갖는다. 과거의 것을 통해 미래로 나아갈 힘을 준다니, 이같이 낭만적인 문화가 어딨을까. 레트로는 문학과 마찬가지로 유용한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유용하지 않아서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쓸모없어서 의미가 있는, 우리를 충만케 하는 단비 같은 존재이다. 앞으로도 레트로가 계속하여 문화의 큰 축으로 남기를 기원한다. 레트로는 양산형 판타지가 아닌, 진심과 정성이 담긴 리바이벌이니까.


레트로는 지나치게 과거를 미화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이는 양산형 판타지가 아닌 찬사와 진심을 담은 리바이벌이다.

 하지만 레트로는 분명 수동적인 문화이다. 이번 글에서 노스탤지어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드라마, 영화 등의 창작물을 통해서 설명하여 그러한 면이 유독 부각되었다고 느낀다. 그래. 제작자가 뛰어나고 진심이고 다 알겠는데, 그렇면 대중은 그걸 받아먹기만 하는 건가?


레트로의 약점은 ‘수동성’이다. 일방향적인 소비 방향은 대중을 그저 감상자로 만들 뿐이다.

   그러한 레트로의 약점을 극복해 낸 문화가 바로 '능동성'으로 주목받고 있는 뉴트로이다. 공교롭게도 다음 글의 주제이기도 하다. 다음 글에서는 뉴트로가 어떻게 레트로를 향한 비판들을 이겨내고 최근 문화의 핫 토픽으로 떠올랐는지, 그 연유와 의의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또한 뉴트로의 특징과 흥행 비결에 대해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디자인 분야에서도 탐구해 보며 더욱 공부해보려 한다. 어째 디자인 전공인데 드라마나 영화 얘기만 하는 것 같아서, 본질을 유지하려 한다. 





참고자료


1) : 주형일, 김예란, 김수아.(2020). 미디어를 통한 역사의 문화화: 뉴트로 현상의 수용 경험. 미디어,
젠더 & 문화,35(4),5-46.

2) : 황혜림, 박은경.(2015).패션 하우스의 디자인 정체성 연구.복식,65(2),107.)

3) : 황혜림, 박은경.(2015).패션 하우스의 디자인 정체성 연구.복식,65(2),107-122.

4) : Chic Style for Women: The Elements of Elegance.

5) : 500년 넘게… 古書 사러 센강변 찾는 파리지앵. 동아일보.

6) : 전성률, 김태민.(2019).노스탤지어의 유형과 브랜드 의인화의 관계에 관한 연구.
마케팅연구,34(2),111

7) : 그 골목에는 ‘판타지’가 산다. 시사인.

https://www.stitchfix.com/women/blog/fashion-tips/french-style/ (프렌치 시크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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