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쓰는 육아일기
어제 하원길에 아기는 갑자기 어린이집 노란 가방을 자기가 메겠다고 했어요. 평소처럼 '엄마가 들어줄게.' 했는데, 웬일로 자기가 들고 가겠다네요. 자기 키의 반만 한 가방을 땅바닥에 끌리듯 버겁게 손으로 들고 가길래,
'이리 와. 어깨에 메어 줄게.' 하고 내 몸에 맞추었던 길이를 짧게 아기 몸에 맞추어주었어요. 그랬더니 꽤 오랫동안 가방을 메고 종종 종종 병아리같이 걸어 다니네요.
아파트 앞의 감나무에는 감이 몇 개 남아 딱딱하게 매달려 있는데, 그 나무에 짹짹이들이 자주 모이는터라 하원길에 매일 그 감나무를 지나가요.
'짹짹이 어이써 (어딨어)?'를 하루에도 한 사십 번쯤 묻는 아기.
여기 있잖아. 짹짹이. 하고 나무 위를 휘휘 날아다니는 새들을 아기와 나란히 고개를 들어 한참을 바라봅니다.
'짹짹이 다 날아갔다. 이제 다른 데로 찾으러 가자.' 하고 발걸음을 옮겨 놀이터로 향해 봅니다. 안아 달라는 아이가 버거워 요즘은 '이리 와, 칙칙폭폭 하면서 가자' 하면 곧잘 뛰어와 제 허벅지를 쾅하고 잡아요.
그럼 또다시, 저 멀리 일 미터쯤 종종걸음으로 '칙칙폭폭'하면서 제가 가고, 아이는 따라오고. 이렇게 한 4-5미터를 버티다가 다시 '안아줘' 하는 애교에 아기를 폭 안아 걸어갑니다.
아기를 안았을 때 닿는 볼에서 나는 이 향긋한 아기의 냄새.
간식으로 과자를 먹었는지, 입 안에서 나는 달달한 냄새.
아이 냄새를 맡으며 놀이터까지 종종종.
내려 달라는 아기를 놀이터에 내려놓습니다.
'이리 와, 앉아' 하며 엄마를 불러 세워 자기 옆에 앉으라는 아기와 한참을 놀아주다 보면 학원에 오고 가는 길에 초등학생들이 꼬맹이 아기에게 관심을 보여요.
일곱 살 여덟 살 누나 엉아들 쫓아서 한참을 뛰거나 구경하며 또 시간이 흐릅니다.
해가 지고, 바람이 차고, 온도가 내려앉는 오후 5시.
'이제 들어가자. 간식 먹으러 가자. 뭐 먹을까.' 하면 늘 같은 대답 '까까'.
'그래, 까까 먹자.' 하고 들어온 집안.
신발과 양말, 외투를 벗기고, 손을 씻기고 요거트나 과일을 먹이고, 잠시 놀다가 저녁 준비를 합니다.
'깜깜'
어느덧 짙은 파랑으로 변한 창 밖을 가리키며 아기가 내는 소리.
'그렇네, 벌써 하늘이 깜깜해졌네.'
오늘도 이렇게 저녁이 되었네요.
매일 같은 하루 속에서도 아이가 조금씩, 어느 날에는 쑥 자라며
가방을 직접 매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도 있네요.
어느 날에는 혼자 자전거를 쌩쌩 타고 학원에 가겠지요.
어느 날에는 자기 방에서 오래도록 나오지 않으며, 게임을 하고 있겠지요.
어느 날에는 독서실에 새벽까지 있다가 축 처진 어깨로 방에 들어가겠지요.
안아 달라는 아기의 요청이,
코에 깊숙이 닿는 아기의 냄새가,
그래서 참 너무나 좋은가 봐요.
안으면서, 맡으면서
벌써 이 순간이 그리울 때가 있어요.
23개월 아기와 함께 책을 읽는 일상.
읽다 보면, 쓰다 보면, 점점 좋아질 것이라 믿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