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쓰는 육아일기
아기가 동굴같이 깜깜한 내 뱃속에서 꼬박 열 달을 지내다가 세상 밖으로 나온 지 벌써 만 2년이 지났다.
3.3킬로의 깃털처럼 가벼웠던 아가는 6개월간 아무런 음식 없이 내 몸에서 나온 우유만 먹고도 볼이 빵빵해지도록 살이 찌더니, 6개월부터 쌀로 만든 미음에 채소를 조금씩 소고기를 조금씩 더해가며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젖을 떼고, 이제는 어른 밥은 물론 짜장면에 돈가스에 아이스크림까지 먹는 두 돌 아가.
옹알옹알, 입에서 소리만 내도 신기했던 아기는 어느 날부터인가 엄마, 맘마, 아빠 소리를 하더니 이제 할미, 할비, 짹짹, 삼촌, 엉아, 누나, 선생님, 이게 뭐야, 이게 뭐지요, 아빠랑 칙칙폭폭 했어, 같은 문장도 말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열성과 무관하게 아기가 콩나물같이 쑥쑥 자랐다. 야생의 나무가 사람 손에 타지 않고도 햇살과 빗물만으로 쑥쑥 자라는 것 같이 아기는 매일매일 눈에 띄게 자라고 있다.
오늘은 어린이집에서 아이의 생일파티를 해주었다. 선생님의 메시지 속 사진의 아기가 활짝 웃고 있다. 선생님이 "너무너무 축하해. 태어나줘서 너무 고마워." 하고 말했더니, 아기가 웃으며 와락 다가왔다고 한다. 말을 정확히 하지는 못해도 무슨 이야기인지, 어떤 분위기인지 이제 잘 이해하는 아가.
아이가 자라는 모습은 매번 신기하다.
여전히 내 허벅지에 좀 못 미치는 작은 키, 품에 안으면 꼬옥 하고 함박에 들어오는 작고 말랑한 몸똥이. 이 작은 것을 안고 잠을 잔다.
이게 뭐지요, 하는 물음에 이건 개미. 같은 대답을 수십 번씩 해주어도 그렇게 지치지는 않는다. 시옷 발음이 아직 되지 않아 디귿이나 쌍디귿으로 발음하는 모습. 개미와 매미의 발음을 헷갈리는 모습. 포클레인의 발음이 어려워, 꼬북이라고 전혀 다른 발음을 하는 모습. 아기가 언어를 배워가는 과정을 보면서도 이런저런 배우는 것이 많다.
사는 게 바쁘고 정신없다는 핑계로 아기의 두 돌 생일도 스르륵 지나갈 것 같아, 생일 당일에 동네의 사진관을 예약해 두었다. 가족사진이라도 하나 남겨두자. 아가 너의 두 돌 생일에 젊은 엄마아빠는 이런 모습이었단다. 엄마 아빠도 이렇게 젊은 시절이 있었다. 젊지. 예쁘지. 멋지지. 사진을 찍는 것이 늘 싫었던 이십 대와 삼십 대의 나였지만, 이제는 잘 안다. 한해 더 젊은 모습이 더 아름답다.
아이와 함께 복작거리는 하루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나의 시간은 늘 부족하고, 자고 먹고 싸고 노는 것으로 시간을 메우는 아이는 성큼성큼 자란다.
혼자만 집중할 수 있는 짤막한 시간들을 붙들고 나를 볶는다. 무엇이든 해내야 해. 무언가를 해내야 해. 스스로에게 달달 볶아진 나는 어느 날에는 열성을 다해 무엇인가를, 어느 날에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침대로 들어가 버린다. 에라 모르겠다와 과한 열정이 반복되는 날들.
날이 좋으니, 오늘 저녁엔 파라솔에서 술이나 먹자, 하고 친구들을 불러 모으던 이 봄, 선선한 저녁 날씨. 이십 대에는 어쩜 그렇게 시간을 흥청망청 보내며 지내었을까. 그 시간들을 다시 돌려서 요즘의 나에게 가져다 쓰고 싶다. 아깝게 지나간 시간들.
부족한 시간들을 생계와 관련한 일을 처리하고, 또 남은 시간을 아껴가며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강의를 듣고, 글을 쓴다. 이토록 시간을 아껴 이삼십 대를 보냈다면, 지금 바라는 것들에 다가가는 시간을 좀 더 단축시킬 수 있었겠지.
그때는 몰랐다. 그러니 어쩔 수 없지. 이제는 안다. 그러니 더 나를 다독이며 나아갈 수밖에.
금요일 오후. 이제 다가오는 주말 이틀은 노트북을 열 시간도 빠듯하다. 아기와 남편과 함께 복닥거리며 아이와 함께 블록 놀이를, 자동차 놀이를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