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덕투덕한 배와 엉덩이, 언제 이 꼴이 되었나

맥주 4캔을 마시고, 마흔에 쓰는 '자영업자'의 육아일기

by 문인선



살찐 배와 엉덩이와 투덕투덕한 얼굴.

이 꼴.

나는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가.



내 사랑, 나의 등대, 박완서 할머니의 <그 남자네 집>





355ml 맥주 4캔의 뚜껑을 땄다. 두 캔을 다 마시고, 책장에서 박완서 할머니의 <그 남자네 집>을 찾아 펼쳤다.


"엄마 책, 방에 숨길 거야. 엄마, 책 보지 마."

"나랑 기차 책 같이 봐."

네 살 아이의 방해가 시작되었다.


"여보, 서후 데리고 들어가 기차를 보든 유튜브를 보든 책을 읽어주든, 데리고 들어가."



요즘 나는 먹고사는 일에 완전히 지쳐버렸다.

나의 엄마의 어깨를 든든하게 했던 누구나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간판 같은 회사'를 육아휴직이 끝남과 동시에 퇴사했다. 동시에 자영업자, '사장님'이 되었다.


사장님이 된다는 것은 아무런 으쓱함이 없는 일이다. 알바님을 구하고, 알바님의 비위를 맞추고, 알바님을 모시며, 종종 마음을 못되게 먹은 강한 손님의 요구를 상대하고, 더 종종 막힌 화장실 변기를 40분여의 씨름 끝에 뚫고 쾌감을 맛보는 그런 일이다.


지금 하는 장사의 지속 가능성(이걸로 계속 돈을 벌 수 있는 걸까, 당장 다음 달은 어떡하지? 같은 질문)을 꾸준히 검토하고,

확장 여부(판을 좀 더 키워볼까, 통장에 돈도 없는데 욕심이겠지 같은 마음의 결투)를 고민하고,

여러 명의 다양한 분야의 사람과 (돈이 되지 않지만) 끊임없이 통화를 하고,

(재정과 내 전문 지식의 부족에 대해) 상담을 받거나 (화난 고객님의 마음을) 상담해주는 일.


그 모든 일에 시간은 들어가나 돈으로 바로 환산되지 않는 일.

자영업은 그런 일이다.



그럼에도 '그토록 엄마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어주던' 대기업을 퇴사하고,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아이를 키울 수 있다.


오전에 아이를 깨워 어린이집을 보내고, 아이의 하원을 손을 잡고 함께할 수 있다.

아침 10시 아이를 등원시키고,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점심을 10분 만에 코로 먹고, 1분 만에 카누 커피를 마시며 모든 정신과 뇌의 기능을 초고속으로 집중하여 코어타임 5시간 동안 나를 소진하고 나면.

나의 엄마와 남편의 엄마의 시간이 아니라, 내 남은 기운으로 아이를 볼 수 있다. 아이는 엄마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다만, 나에게 단 10분의 휴식 시간이 없을 뿐.

그렇게 3주를 나를 다그치고 있었다.



40분의 씨름 끝에 화장실의 변기를 뚫고 나서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은 좀 힘들 것 같군. 스트레스가 꽉 찼어. 밥을 먹을 시간조차 없어, 요즘."

남편은 서둘러 퇴근하겠다고 했고, 저녁 7시에 도착했다. 남편의 도착과 동시에 나는 노트북을 열어 꼭 필요한 사무 업무를 처리했고, 뜨거운 물에 목욕을 했고.

저녁 9시.

맥주를 한 캔 땄다.


그리고 남편이 목욕을 하러 들어갔고. 식탁 위에서 아이에게 기차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맥주 두 캔을 땄을 때,

<그 남자네 집>을 오늘 단 5페이지라도 읽지 않으면, 내일 내가 미친년이 되어 남편을 잡을 수 있으리라는 예감에 사로 잡혔다. 나는 오늘 수없이 머릿속으로 이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 꼴로 사는 것인가."



"여보, 잠시 서후 좀 봐. 애를 재울 수 있다면 더 좋고."


남편은 아이를 재우지 못한다. 지난 생후 34개월간, 단 한 번도 아이를 재우지 못했다. 아이는 엄마의 품과 젖가슴, 쭈쭈가 필요하다.



매일 검정 조거팬츠와 회색 맨투맨을 입고 일을 한다. 여러 벌을 사놓고 고민 없이 집어 입는다.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를 생각하다가 문득 이십 대와 삼십 대에 스쳐 지나간 인연들을 떠올린다.


아, 내 이 꼴로 그 사람들을 마주치면 어쩐담.

나는 문득 그 상상을 하다가 참담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이 꼴. 이 운동화, 이 맨투맨, 이 숏패딩 점퍼.

이 맨얼굴, 이 짧고 보글보글한 파마머리, 살찐 배와 엉덩이와 투덕투덕한 얼굴.

이 꼴.

나는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가.


먹고 사느라, 일 하느라, 돈을 버느라, 아이를 낳느라.

나는 각질로 뒤덮인 내 발 뒤꿈치를 돌 볼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건조해서 주름이 잡힌 내 발등을 살 필 여유도. 건선의 흔적으로 간지러운 내 등과 팔뚝에 꼼꼼하게 보습 크림을 바를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회사를 다녔을 때는 시간을 교환하면 되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채우든 회사는 돈을 주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을 죽이는 것이, 시간을 무용하게 쓰는 것이 어쩌면 잘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5분, 10분을 쓰는 것이 버겁다. 할 일은 자꾸 차오르는데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오로지 다섯 시간뿐. 나는 그 다섯 시간 동안 손, 머리, 몸을 집중하여 쓰느라 온통 소진된다.


3주가 지나고 완전히 지쳐버렸다.

나는 이런 인생을 원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술, 책, 그림, 요가면 충분하다. 나는 그것만 있으면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는데, 남편과 아이와 늙어가는 부모님 때문에 원하는 것을 모르는 척하고, 내 시간을 돈으로 교환하며 산다. 그러니 회사를 다닐 때보다 훨씬 치열한 마음, 매 1분을 치열하게 에너지를 쓰며 지낸다.


그리고 오늘. 내 에너지를 다시 채우는 것이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그러지 못하면 '취향에 완전히 적합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 남자네 집.

박완서 할머니가 칠십에 쓴 첫사랑의 이야기.

이것이 내 등대임을 나는 오래전부터 안다.


아이를 키우느라, 먹고 사느라 빠듯해도 글을 쓸 수 있다고, 그 글이 사람들에게 어떤 사랑을 받는지 보여준 박완서 할머니의 글을 읽으면 다시 나는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마흔에도 할 수 있다고, 일흔에도 첫사랑이야기를 적을 수 있다고.

마흔 하나에 '나목'으로 작가로 등단한 박완서 할머니의 나이가 되었다.


마흔한 살, 나는 마흔한 살에 먹고 사느라 빠듯한 시간을 쪼개어 밤 10시.

맥주 네 캔을 따고 이 글을 적는다.






나는

작가로

살 것이다.

나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살 것이다.

그리고 나는 요기(꾸준히 요가를 하는 사람)로 살 것이다.




취중진담. 다짐. 다짐. 다짐.

2025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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