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마흔에 쓰는 육아일기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버이날 아침에는 친정엄마 아빠가 있는 카카오톡 단체방으로 이렇게 메시지를 보냈어요.
다가오는 주말에 찾아뵙기로 했거든요.
어버이날이면 으레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있었지, 내가 부모가 되었다는 생각은 미처 못하고 있었어요.
어린이집에서 카네이션을 들은 아기 사진, 카네이션 꽃 머리띠를 두른 아이 사진을 알림장으로 보내주어 보고 나서야, 아 나도 이제 부모구나 싶더라고요.
물론, 두 돌 아기는 아직 카네이션 꽃 머리띠를 왜 해야 하는지 몰랐겠지만 말이에요.
오후 4시 하원을 하고, 놀이터에서 시소 한 바퀴, 단지에 공터를 실컷 뛰어다니던 아기는 “버스 타자, 버스 타자” 버스를 타자고 조르더라고요.
“그래, 버스 타자.” 하고 집에 유모차를 두고 나오며 당부를 해두었죠.
“오늘 아트가 버스 타기로 했으니까, 걸어서 버스 타는 거야. 안아 달라고 하면 안 돼. 아트가 걸어 다니며 버스 타러 가는 거야.”
유모차가 없으면 세 살 아기와의 외출이 너무 힘들거든요.
조금만 위험하거나 무섭거나 낯선 것이 보이면, “안아, 안아, 안아줘.”를 외치는 탓에 제 튼튼한 허리가 부러질 것 같거든요.
오늘은 미리 당부와 약속을 받아놓고, 버스와 기차 여행을 시작합니다.
어김없이 걷다 말고 “안아” 하는 아이에게 “아니야. 오늘 아트가 버스 타자고 했고, 걸어서 다니기로 했어.”라고 말하니, 금세 체념하더라고요.
덕분에 오늘 허리는 부러지지 않았어요.
버스를 타기 전에 손에 카드를 쥐어주고, 버스카드 단말기에 카드를 대게 합니다.
띠딕- 소리가 재미가 있었는지, 지하철 앞 카드 출입구에서 “카드, 카드”를 외치네요.
카드를 쥐어준 채, 또 카드 단말기에 딱- 에스컬레이터 실컷, 무빙워크 실컷, 지하철을 탑니다.
기차, 기차에 신났다가도 흥미는 그새 떨어져 버려요.
기차를 타면 버스를 타자고 하고, 버스를 타면 기차를 타자고 하는 아기.
그래도 버스와 기차 덕분에 오늘 오후도 뽀로로 만화에서 탈출하여 잘 보냈어요.
남편의 퇴근 시간이 얼추 다가와 지하철 역에서 남편을 기다립니다.
퇴근길 지하철의 인파 속에서 아빠를 찾아낸 아기가 외칩니다. “아빠, 아빠, 아빠아”
아이를 발견한 남편의 얼굴. 눈도 코도 입도 금세 동글동글 함박웃음이 올라와요.
아빠에게 와다다닥 달려간 아기를 남편이 와락 안아요.
다 같이 퇴근길 만원 버스에 올라탑니다.
저는 다행히 의자에 앉아 아이를 안았고, 남편은 서서 가요.
버스 손잡이를 쥔 채 멍한 얼굴의 남편이 엄청 피곤해 보이네요.
그러고 보니 주변의 모든 퇴근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피로가 잔뜩이에요.
퇴근이란 이런 것이었죠.
하루 종일 여덟 시간 회사 사람들에 달달 볶인 내가 다시 만원 버스와 지하철 안, 콩나물시루같이 빡빡한 틈 안에서 더욱 피로해지며 오는 길.
회사 생활도 그렇지만, 참 출퇴근 시간도 쉽지 않은 일상이었죠.
그래도 연애 중에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출근길 중간에 만나 같이 바나나 우유를 먹거나 김밥을 건네는 소소한 이벤트도 있고, 퇴근길에 일찍 끝난 사람이 늦는 사람의 직장 근처에 기다리다가 저녁을 먹으며 지내기도 했었는데.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상에서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어요.
퇴근길 지친 얼굴의 남편 모습을 올려다보며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네요.
젊은 삼십 대의 두 연인이 꽁냥 거리던 버스가 아니라, 쫑알쫑알 세 살 아기가 호기심을 갖고 타고 싶어 하는 버스 안이에요.
13년 차 커플의 버스 풍경이 많이 달라졌어요.
아이가 자라며 이 익숙한 장소와 공간의 풍경이 계속 이렇게 달라지겠지요.
카네이션 꽃 머리띠를 한 아기의 사진을 친정엄마에게 보냅니다.
친정 엄마의 답장.
“아기가 태어난 것이 가장 큰 선물이야.”
선물 같은 아이로 저와 남편은 부모가 되었네요.
어버이날이 처음으로 다른 의미로 다가온 날입니다.
매일 여덟 시간의 고된 회사생활과 출퇴근길 속에서도
선물 같은 아이가 있어요.
기운 내 보기로 해요. : )
2024년 5월 8일, 어버이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