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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별곡 Jun 28. 2023

<소설> 운명과 우연

3탄. 전생을 믿는 여자

아린이는 수영이의 말을 듣고 남자의 외모를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역삼각형 얼굴형에 자라다 만 것 같은 흐릿한 눈썹, 축 처진 눈꼬리가 엄마를 닮았다. 마마걸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친구보다 엄마를 좋아했던 여자. 그녀가 세상에 전부였던 아린이는 눈앞에 남자를  엄마와 동일시하며 천생연분이라는 단어까지 떠올렸다. 소개팅녀 엄마와 닮았다는 황당한 말에도 우영이는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종수가 형의 눈치를 살피며 칭찬을 늘어놨다.


"누나~ 이 형 부모님이 사직동에 5층짜리 건물이 있다. 건물주야 건물주~. 그리고 지금은 형이 어색해서 그렇지 좀 있으면 웃겨서 빵빵 터질 거야. 차는 아직 없는데 좀 있으면 광고에 나오는 투싼으로 계약 한대. 좋겠쟤? 누나야?"

결혼정보회사 직원인가? 과잉 칭찬에 분위기는 더욱 어색해지고 머쓱한 우영이는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재미있는 사람 맞나? 너무 조용한데? 오빠 술 잘 마시나? 술 먹으면 개 되는 사람 딱 질색인데~ 우리 짠하자!" 아린이는 남자의 주량을 테스트해보고 싶었다. 잔이 비워지면 즉각 즉각 술을 따라서 건배를 종용했다. 에게 더 빠지기 전에 술주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마음을 접어야겠다.


대학교 OT때 처음으로 소주를 마셨던 아린이는 웬만한 남자 동기들보다 잘 마셨고 마지막까지 남아서 뒷정리를 하는 유형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소주 2병인 아린이의 주량을 따라갈 수 없는 알쓰(알코올쓰레기)였다. 2병이 아닌 2잔을 마시더니 곧 눈이 풀리며 촉새처럼 자신의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말을 할수록 이 남자를 갖고 싶다는 욕망이 들었다. 영화관 가는 것과 만화책을 즐겨 보는 취미가 그녀와 똑같았다. 게다가 좋아하는 노래도 아린이가 우울할 때마다 듣는 성시경의 '희재'였다.

"어머! 오빠 그 노래 좋아하나? 영화 국화꽃 향기 OST잖아? 그 영화도 봤나? 너무 슬퍼서 보는 내내 울었는데. 남자들은 성시경 밥맛이라고 별로 안 좋아하던데~ 진짜 신기하다."

"영화는 안 봤는데 성시경 노래 좋아해서 즐겨 듣는다. 거리에서 랑 두 사람도 좋잖아. 담에 국화꽃 향기 같이 보자. 너랑 보고 싶네."

"정말? 오빠 그 영화 보면 아마 눈물 콧물 다 쏟을걸? 나는 남자가 울면 꼭 안아주고 싶더라."

그는 술에 취한 남자들이 자주 하는 허세도 부리지 않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진상짓도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취미와 음악 듣는 취향까지 딱 맞으니 아린이의 방어막은 완전히 뚫려버렸다. 우영이의 은근한 데이트 제안에 밀당 따위는 없었다. 흔쾌히 승낙을 했다.


"와 두 사람 먼데~오늘부터 1일 이가? 딱 천생연분이네!" 아까부터 운명과 천생연분이라는 단어들로 머릿속이 복잡하던 아린이에게 종수가 확신을 줬다. '우리는 전생에도 연인이었나? 어쩜 이렇게 걸리는 것 없이 전부 마음에 들지?' 윤회사상 믿고 매년 철학관을 찾아가 올해의 운세를 보는 아린이는 전생까지 들먹이며 남자를 운명의 상대로 점찍었다.


두 남녀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수영과 종수커플은 2차로 간 주점에서 먼저 일어났여자와 남자는 술을 깨기 위해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했다. 여자는 체리쥬빌레, 남자는 베리베리스트로베리를 각자의 손에 든 채 새벽 2시가 넘어 인적이 뜸해진 서면의 밤거리를 걸었다.

아린이는 우영의 눈코입 중에서 특히 입술이 마음에 들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으며 입술산이 또렷했다. 양쪽 입꼬리가 올라가서 말할 때마다 섹시해 보였다. 저 입술에 키스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 무심코 체리쥬빌레를 남자의 입술에 갖다 댔다. 우영은 흠칫 놀란 표정이었다.


"오빠, 체리쥬빌레 한 번도 안 먹어봤댔지? 한 번 먹어봐 봐."  남자가 대답이 없이 그녀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봤다. 정적이 흐르는 거리에서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베리베리스트로베리는 맛있나? 나도 먹어볼래~한입만~"  당황한 그녀가 입을 벌리며 남자의 아이스크림을 베어 먹는 순간 말캉하고 촉촉한 혀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딸기맛과 체리맛이 뒤섞인 두 사람의 첫 키스였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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