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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별곡 Jul 26. 2023

<소설> 운명과 우연

6탄. 삼자대면

아린의 눈에 우영은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보였다. 두 여자 중 그 누구 편도 들지 못한 채 자동차로 향했고 지금 세 명의 남녀는 식당에 앉아있다. 자리의 위치도 미묘했다. 아린이 먼저 테이블 안쪽에 앉았고 우영이 그녀를 마주 보고 앉았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예나가 우영의 옆자리에 앉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커플과 같이 밥을 먹으러 온 사람은 아린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 얄미운 가시나. 서우영이는 왜 내 옆에 안 앉은 거야? 아직도 화난 건가?.'

드라마 또 오해영


아린의 마음은 자리에 앉은 지 몇 분도 되지 않아 끓어오르는 된장찌개가 되었다. 조금만 더 가열하면 부글부글 넘칠 것이다. 자기들끼리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며 하하 호호였다. 우영이 이렇게 둔하고 눈치코치 밥 말아먹은 사람이었나? 아니면 지난번에 자기를 의심했다고 지금  나를 벌주는 건가? 버거운 상황 속에서 아린은 자신의 강한 소유욕에 덜컥 겁이 났다. 그는 나만의 남자라는 소유욕, 여사친이라는 존재는 있을 수도 없고 앞으로도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구시대적 사고가 그녀를 옭아맸다.


"오빠~난 전에 먹었던 짬뽕 먹을래. 해장해야겠다. 아린이 언니는 뭐 먹을래요? 여기는 짜장면보다 짬뽕이랑 탕수육이 맛있어요. 그치 오빠야?"

"저는 짬뽕 싫어해서 짜장면 먹을게요." 

자기가 우영과 여기 와봤다고 깝죽대는 꼬락서니가 꼴 보기 싫었다. 남자는 두 여자의 틈바구니에서 침묵을 지켰고 예나는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이 연신 히죽거렸다. 계속 그녀에게 수를 읽히는 것 같아서 아린은 지는 기분이 들었다.


'저 가시나한테 어퍼컷을 날려야 하는데.. 이대로 멍청하게 있을 거니 양아린?' 등 뒤에서 땀줄기가 흐르며 머리가 지끈거렸다. 일주일 만에 보는 우영이가 얼마나 그리웠는데 예나를 견제하느라 그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 엿같은 기분을 끝내고 싶었다.

"그런데 예나 씨는 눈치 없다는 말 많이 듣지 않아요? 어제 과음했으면 빨리 집에 가서 쉬는 게 좋을 텐데 체력이 남아도나 봐요."

"어머머~아린이 언니는 내가 있는 게 싫은가 보네요. 나 눈치 없다는 말 처음 들어보는데~~ 오빠야 내 지금 일어나야 하나? 안 그러면 짬뽕 먹다 한 대 맞겠는데." 

"벌써 주문 다했는데 뭘 일어나요~지금 일어나면 도 불편하죠~체하면 안 되니까 천천히 꼭꼭 씹어먹어요."

아린은 우영의 표정을 살폈고 흠칫 놀란 것 같았다. 자신에게 이런 면이 있을 줄 상상도 못 했다는 얼굴이었다.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아린이가 농담하는 거니 먹고 가라고 예나를 달랬다. 얼음장 같은 분위기에서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영이 아린에게 묻지도 않고 탕수육 소스를 고기 위로 부어버렸다.

"아 나는 찍먹 판데.. 탕수육 눅눅 해지잖아."

"앗 미안 몰랐다."

"어머~언니! 탕수육은 부먹이죠~찍먹 귀찮아서 어떻게 먹어요? 오빠랑 저는 부먹파예요. 그동안 둘이서 중국집 한 번도 안 왔나 보네."

아린은 예나의 얼굴을 탕수육 접시에 쑤셔 박는 상상을 했다. 우영은 다음부터는 소스를 붓지 않을 테니 오늘만 이렇게 먹으라며 별거 아니라는 듯이 반응했다. 인내심이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결국 아린은 짜장면을 다 먹지 못하고 속이 안 좋다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우영이 예나의 입에 묻은 소스를 휴지로 닦아주는 순간이 결정적이었다. 술주정은 없는데 누구에게나 다정함이 이렇게 힘든 거였다니...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그가 어쩌면 우연이 만들어낸 인연이었음을 인지한 순간이었다.


식당에서 나온 세 사람은 우영의 차를 탔다. 예나는 이번에도 보란 듯이 자신은 뒷자리에 앉으면 멀미가 난다며 조수석을 차지했다. 망연자실한 아린은 기운이 빠졌다. 행동이 굼뜨고 곰 같은 자신을 책망했다. 하루의 24시간 중 우영과 더 오랜 시간 함께 할 그녀가 부러웠다. 완패할 게 뻔하다는 패배감이 몰려왔다. 취업도 못한 백수가 무슨 정신으로 소개팅을 해서 연애를 시작한 건지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예나를 회사 기숙사에 내려주고 아린은 뒷자리에서 옮겨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십여분의 시간이 흘렀고 우영이 말을 꺼냈다. 


"아까 짜장면 잘 못 먹던데 맛이 없었나? 배 안 고프나?"

"내가 그 상황에서 면발이 넘어가겠나? 일주일 내내 전화 한 통 안 하더니 그럴만했네. 내 생각할 시간이나 있었겠나?"

"또 또 비꼰다. 처리할 프로젝트가 있어서 바빴다니까."

"예나랑 논다고 바빴던 건 아니고?"

해선 안 될 말을 또 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말을 삼킬 수가 없었다.

"내가 의심하지 말랬쟤? 예나는 알고 지낸 지 5년이 넘은 친한 동생이다. 걔 연애하는 거 내가 옆에서 상담해 주고 다 봤는데 이성으로 느껴지겠나?"

"남자와 여자 사이에 우정 따위는 없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다 큰 성인들이 오빠동생 사이가 말이가? 앞으로 회사밖에서 걔랑 사적으로는 안 만났으면 좋겠다."

"더 할 말이 없네. 네가 이렇게 꽉 막힌 앤 줄은 몰랐다. 그만하자. 들어가라."


더하면 아린은 눈물이 날 것 같았고 차에서 내렸다. 우영의 차는 인사도 없이 떠나버렸다. 그를 놓칠 수 없어. 예나만 떨궈내면 그만이야. 문제가 생겼을 때 아린은 항상 수영을 찾았다. 끊임없이 남자를 사귀었던 연애의 신인 그녀에게 전화를 해 이 상황을 해결하고 싶었다. 수영의 남자 친구인 종수도 예나를 알터이니 정보도 캐낼 겸 셋이서 만나자는 카톡을 보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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