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아서

여태껏 내 삶에 영향을 미친다

by 최지현


가장 처음 받았던 상처의 기억을 떠올려본다. 9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는데, 사실 그건 내게 상처는 아니었다. 오히려 안도에 가까웠다.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향해 던지던 날카로운 말들, 엄마가 며칠씩 집을 비울 때 느꼈던 공기의 무게. 부모님의 이혼은 그것들의 종결이었다. 어른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괜찮니?"라고 물을 때마다 나는 "네,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괜찮았다.


내가 10살이 되던 해, 나는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갔다. 아파트에서 반지하 단칸방으로, 아빠와 단둘이 사는 새로운 삶도 나쁘지 않았다. 전학 간 학교에서 친구들을 사귀었고,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그것도 익숙해졌다. "나는 잘 적응하는 아이구나" 싶었다. 이혼 가정의 아이라는 꼬리표가 붙었지만, 그게 나를 정의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엄마 없이 자란 애' 티가 날까 봐 신경 써서 단정하게 외연을 유지했고, 억지로 더 씩씩하게 행동했다. 정말 나는 괜찮았다.


진심으로 가슴 깊게 받았던 상처의 말은 따로 있었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당시 나는 같은 동네에 사는 고모, 그러니까 아빠의 여동생 집에 맡겨질 때가 많았다. 아빠가 늦게까지 일하시는 날이면 고모네 집에서 저녁을 먹고, 때로는 거기서 자기도 했다. 나는 고모가 해주시는 밥을 먹고, 보이지 않는 곳에 웅크리고 앉아 조용히 책을 읽었고, 사촌 동생과 놀아주기도 했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던 어느 날이었다.


고모가 사촌 언니를 혼내고 있었다. 무슨 일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순간, 밥을 먹고 있던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고모가 내뱉은 말은 생생하다.

"네가 쟤처럼 막 컸어?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이래!"

나는 '막 자란 아이'였다. 제대로 보살핌 받지 못한, 부족한, 문제가 있는 아이. 고모는 자기 딸을 훈육하기 위해 나를 반면교사로 삼았고, 나는 그 말을 듣지 못한 척 계속 밥을 먹었다. 미역국이 눈물에 젖어 목구멍 뒤로 넘어가던 그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10살의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울면 안 돼. 더 짐이 되면 안 돼. 괜찮은 척해야 돼'라고 다짐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괜찮아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책 속으로 도망을 쳤다. 책을 하도 많이 읽어서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똑똑한 어린이가 되었다. 그리고 학창 시절 내내 미친 듯이 공부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고 인정받을수록, 내가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조금씩 나를 위로하게 되었다. 좋은 대학에 가면 더 괜찮은 사람이 될 것 같았고, 나는 정말 괜찮아졌다. 아니, 괜찮은 척하는 데 완벽해졌다.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어렵다. 물론 나에게도 아주 절친한 친구들이 있다. "힘들면 언제든 연락해"라는 말에 고맙다고 답하면서도, 실제로 연락하는 건 여전히 힘들다.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반드시 혼자 해결한다. 누군가의 호의가 부담스럽다기보다는, 내가 받을 자격이 있는지, 이것으로 빚을 지게 되는 건 아닌지 상대방에게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닐지 생각하게 된다.


연애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상대방에게 취약함을 보이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강한 사람이야. 혼자서도 잘해. 당신에게 짐이 되지 않을게" 이것이 내가 관계 속에서 유지하려 했던 정체성이었다. 결국 그 관계는 끝났고, 지금 나는 이혼 절차를 밟고 있다. 최근 들어 자주 생각한다. 내가 "치유되었다"라고 믿었던 건 착각이었을까?


니체는 "우리의 기억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기억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를 구성하는 재료다. 나는 그 미역국의 맛을, 고모의 말을, 못 들은 척 밥을 먹던 9살의 나를 '극복'한 게 아니었다. 그 순간이 내 안에서 하나의 방어기제로, 하나의 생존 전략으로, 하나의 정체성으로 굳어졌을 뿐이다.

짐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 혼자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취약함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

이것들은 10살의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만든 규칙이었다. 그리고 그 규칙은 너무나 효과적이어서, 나는 3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도 그것을 붙들고 있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또다시 강한 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처를 직면했다고 말하는 것, 그것조차 '나는 이만큼 성찰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증명일 수 있다. 30년간 작동해 온 방어기제는 이렇게 교묘하다. 취약함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아물게 만드는 방법을 모르겠다. 니체는 '영원회귀'를 말했다. 같은 순간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그 순간을 긍정할 수 있느냐고. 나는 지금 묻는다. 10살 때 그 미역국의 맛을, 타인들에게 받았던 상처의 말들을, 혼자 삼켜야 했던 눈물을, 그리고 그로부터 형성된 만 32년간의 내 삶의 패턴을, 이 모든 것이 다시 반복된다 해도 긍정할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르겠다. 그러나 긍정하고 싶다. 괜찮아지고 싶다. 말로만 괜찮다고 센 척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정말 괜찮은, 과거의 상처는 다 아물고 그 위에 새살이 돋아난 사람이 되고 싶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12화타인에게 받은 '질투'를 대하는 실용적인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