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외로움이란 감정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아

그 감정이 내 행동을 결정하게 두지 않겠다

by 최지현

누군가에게 연락하려다 멈춘 적이 있다.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오늘 밤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하려던 연락이었다. 관계를 끊지 못한 적이 있다. 아직 좋아서가 아니라, 끊고 나면 아무도 없을 것 같아서였다. 일을 더 늘린 적이 있다. 성취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고 싶어서였다.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음식을 시켜 꾸역꾸역 먹은 적이 있다. 배는 불렀지만, 내가 채워지진 않았다. 먼저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돌려받았는데도, 무언가를 기다리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외로움이란 감정이 늘 두려웠다. 그래서 늘 바빴고, 늘 누군가와 함께였고, 늘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늘, 조금씩 허기졌다. 어쩌다 쉬게 되었다. 회사 일도, 대학원 공부도 잠시 멈춰진 시간이었다. 늘 무언가로 채워져 있던 하루에 갑자기 커다란 공백이 생겼다. 그 공백이 낯설었다. 평소엔 바쁨에 밀려 줄도 서지 못하던 것들이 그 자리로 하나씩 찾아왔다. 오래된 고민들, 미뤄두었던 감정들, 외면해왔던 질문들. 그 중에 제일 내가 두려워하던 것이 가장 먼저 왔다. 나는 왜 자꾸 뭔가를 기다리는 사람인 것 같지.


외로웠던 거다, 나는. 그리고 그 외로움이 두려웠던 거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외로움이 두려웠던 건 외로움 자체가 아니었던 것 같다. 외로움은 고요한 상태다. 그리고 고요한 상태에선, 평소엔 들리지 않던 것들이 선명하게 들려온다. 외면해왔던 마음의 소리들, 미뤄두었던 질문들이.


지금 이것이 진짜 원해서 하는 것인가.

배가 고파서 먹는 것인가.

그 사람이 보고 싶어서 찾는 것인가.


사실 나는 어렴풋이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답하고 싶지 않아서 피해왔던 거다. 내가 나 자신에게 확실하게 답해버리면, 그다음엔 무언가가 바뀌어야 하니까. 그 관성을 거스르는 데 드는 에너지가, 외로움을 견디는 것보다 훨씬 많이 드니까. 그래서 채웠다. 질문이 들어올 틈이 없도록.


채울수록 더 굶주렸다. 나중에야 알았다. 채우는 행위가 곧 비어있음을 확인하는 행위였다는 걸. 무언가를 밀어넣을 때마다 나는 사실 이걸 되새기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혼자서는 부족하다는 것. 채워져야만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 최근까지의 나는, 혼자인 듯 혼자이지 않았다. 타자로 채워지기를 기대하면서, 고독과 외로움을 정면으로 마주보다가도 이내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나에게 묻는다. 나는 혼자서 온전할 수 없는 사람인지를. 혼자서 채워질 수 없는 사람인지를. 아니, 그렇지 않아. 나는 혼자서도 충분히 나답게, 나로 살아갈 수 있어. 그렇다면 다시 나에게 말하고 싶다. 그럼 보여달라고.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올해의 목표를 하나 정했다. 더 이상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래서 그 감정이, 나의 말과 행동을 결정하게 두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상태의 나. 연락도 약속도 없는 밤의 나. 역할도 바쁨도 벗어던졌을 때 남는 나. 그 사람이 낯설더라도, 너무 선명해서 불편하더라도, 이번엔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니체는 말했다.

"내게 주어진 운명을 한다. 이제 나의 마지막 고독이 시작되었다. 아, 내 발 밑의 이 검고 슬픈 바다여. 아, 이 둔중하고 음울한 불쾌감이여. 아, 운명과 바다여. 그대들에게로 이제 내려가야 한다. 나의 운명이, 그러기를 원한다. 좋다. 각오가 되어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두렵더라도, 내려가야 할 때가 있다. 고독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오래 멈춰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선언한다.


"더 이상 나의 행복을, 타인에게 맡기지 않겠다."


나는 내가 책임진다. 책임진다는 것은 거창한 게 아니다. 스스로에게 계속 묻고 답해주는 것이다.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은 척 하지 않으련다. 사실 나는 안다.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마침내, 라는 표현도 필요 없다. 마침내는 너무 먼 미래를 상정하는 말이다. 지금 당장, 나는 행복해질 수 있다. 그 행복이 누군가로부터 오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러니 더 이상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으련다. 오랫동안 나는 외로움을 없애야 할 것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없애려 할수록 더 선명해졌다. 이제는 없애려 하지 않겠다. 그냥, 나와 함께 있는 감정으로 두겠다. 그 감정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 것. 오래 외면해온 나에게, 이제야 건네는 올해의 첫 번째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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