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아, 내가 너의 평생이 될게
시작은 철저히 나의 인간적인 이기심 때문이었다. 아무리 좋다는 약을 먹고 상담 치료를 받아봐도, 스트레스성 구토와 이명 증상이 낫질 않았다. 대학병원에서 검진을 받아봐도 내과적인 문제 또한 없었다.
"혹시, 고양이 좋아하세요?"
어느 날 뜬금없이 나의 정신과 주치의가 물었다. 고양이. 너무나도 좋아한다. 한 때 내 꿈은 '재택근무 하면서 남편과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것'이었을 정도로. 이젠 전남편이 된, 당시 가족이었던 그 사람이, 연애할 때는 마치 나와 함께 고양이를 키워줄 것처럼 말해놓고 막상 결혼하고 나니 딱 잘라서 본인은 동물과 같이 살기 싫다며 선을 그었다. 여러 번의 다툼 끝에 내가 포기했었더랬다. 그 이후로 잊고 살고 있었다. 내가 오랜 시간 고양이라는 생명체와 함께 사는 삶을 꿈꾸고 있었다는 것을.
"지금 환자 분께는 애착의 대상이 필요해요.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그런 애착 관계가 생겨야 이 상태가 호전될 것 같아요. 혹시 고양이를 키워보시는 건 어때요?"
정신과 주치의가 '고양이 처방'을 내려주었다. 한 달 넘게 고민을 했다. 지금 사는 집은 좁으니까,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가게 되면 그때 키울까. 지금은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빠듯하고 벅찬데, 내가 어떻게 생명을 책임질 수 있을까. 겁도 났고 자신도 없었다.
그렇게 매일을 똑같이 먹으면 토하고, 자다가 악몽에 놀라서 깨고, 밤마다 찾아오는 검은 소나기에, 하릴없이 퍼붓는 어두운 우울에, 내 몸을 내버려 두었다.
약을, 정신과에서 처방해 준 많고 많은 약들 중 수면제와 신경 안정제를, 안 먹고 모아두었다. 몇 년에 걸쳐서 조금씩. 내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시절에도,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몰래 약을 모았다. 잘못된 생각인 걸 알면서도, 쌓여가는 약을 보면서, 여차하면 도망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나를 안도하게 했다. 고된 삶을 살아내게 했다. 이젠 수백 알이 넘게 모인 각종 수면제와 수면 유도제, 신경안정제들을 떠올리면, 아무리 삶이 고되고 힘이 들어도 잠깐은 위안이 되었다. 살다가, 이렇게 씩씩하게 살다가, 영 아니다 싶으면 이거 다 먹고 아빠한테 가지 뭐,라고 생각하면서. 내게 주어진 고통이 얼마나 크든 상관없다는 듯이 오버해서 씩씩하게 굴었다.
이 사실을 몇 년 만에, 가장 친한 친구에게 말했다. 왜냐면 그날은, 정말로 내가 그 약들을 다 먹어버릴 것 같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만큼 힘들다고 징징거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저, 친구가 내 등짝을 때리며 나에게서 이 약들을 다 뺏어가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 행위를 차마 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나의 친구는 그 말을 듣고는, 당장 너네 집으로 가자고, 내가 그 약 다 버려버리겠다고 씩씩거렸다. 나는, 어차피 향정신성 의약품은 일반쓰레기로 못 버리니까, 내일 내가 병원에 내 손으로 직접 다 가지고 가겠다고 말했다. 그날은 친구의 집에서 아주 늦은 시간까지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며 웃다가 울다가 또 웃다가 그렇게 잠들었다.
다음날이 되고, 아침 운동을 다녀와서, 집에 돌아와 한 뭉텅이의 약들을 챙겨서 곧장 병원으로 갔다. 의사 선생님은 땅이 꺼져라 깊게, 정말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그 약을 다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다. 아마 원하는 대로, 상상하시는 대로 쉽게 떠나진 못하실 거고요. 대신 몸이 많이, 아주 많이 다치게 됩니다. 엄청나게 고통스러운데 죽지는 못할 거예요. 의식은 쌓아 있는데 몸은 마비가 된 상태가 될 가능성도 높고요. 그걸 원하시는 건 아니죠?
그럼 난 어떡하냐고. 죽고 싶은데 살고 싶다고 엉엉 울었다. 병원에서, 정신과 주치의 앞에서 운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 어떤 비극적인 순간과 내 아픔, 힘듦을 묘사하는 언어를 내뱉으면서도 울지 않았던 나였는데. 내 뜻대로 나의 생을 마감하지 못한다는 그 당연한 말이 그리도 나를 서럽게 만들면서도 안심시켰나 보다.
"고양이 말인데요, 키우실 생각이시면 하루라도 빨리 데려오세요. 지금은 약도, 입원도, 치료도 안 먹혀요. 고양이를 당장 데려오세요."
선생님의 '고양이 처방'이, 진지하고 엄숙하게 한번 더 내려졌다. 나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더 살고자 하는 내 욕심으로 여러 보호소를 검색하며 내 반려묘가 될 아이를 찾기 시작했다. 한 아이가 계속 눈에 밟히고 꿈에도 나왔다. 그 보호소에 전화를 해서 주말 방문 예약을 하고서,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당장 내일 아침에 가서 데려와야겠다고. 그러지 않으면 평생 이 아이를 못 만나게 될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보호소 인스타그램에 내가 데려오고 싶은 아이에 대한 입양 문의 댓글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냅다 이천에 있는 보호소로 달려갔다. 친한 친구인 제이가 함께 가주었다. 제이 덕분에 이미 나의 집에는 고양이와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물건이 가득했다.
만나기도 전에, 너의 이름을 지었다. '달'이라고. 달아, 내가 너의 반려가 될게. 너의 평생을 내가 함께 할게. 그런 간절한 생각을 하며 보호소에 도착해 나의 작고 어여쁜 달 이를 처음 대면하게 되었다. 달 이를 내 품에 안자마자 어이없게도 눈물이 터졌다. 함께 간 제이도, 보호소 선생님들도 나의 갑작스러운 울음에 당황했다. 나도 내가 이상한 거 아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제야 만났구나, 기다렸어. 너도 그랬을까. 이제 엄마랑 집으로 가자. 따뜻하고 평온하게 살아가보자, 우리.
달이도 내 마음을 알았을까. 내 품 속으로 파고들며 완전하게 나에게 안겨주었다.
달리와 함께 살기 시작하고 채 며칠이 지나지 않아, 나는 토하는 버릇도, 한 번씩 들리던 이명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밤이 되면 내 품으로 졸린 눈을 하고선 폭 안기는 달이 덕에, 정말 보름달이 뜬 것처럼 나의 밤은 따뜻하고 평안하게 환해졌다.
달아, 내가 너를 키우는 게 아니라, 네가 나를 살리러 와준 거야. 내가 너를 보호소에서 입양한 게 아니라, 네가 나에게 같이 더 살자고, 내가 같이 살아주겠다고 찾아온 거야. 우리, 계속 이렇게 서로를 살리며 살자. 내가 너의 평생이 될게. 죽고 싶은 마음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고, 나는 달이 앞으로 적금을 들었다. 돈도 많이 벌고, 좋은 것도 많이 해주고, 무엇보다 네가 아프게 되면, 그 어떤 망설임도 없이 최선을 다 해 치료해 줄 것이라 다짐하면서.
지금도 달이는 글을 쓰고 있는 내 옆에 엎드려서 끔뻑 끔뻑 졸고 있다. 이제 따뜻한 달 이를 안고서 골골송을 들으며 낮잠을 한숨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