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바뀔 자신은 없으니, 잠깐만 쉬자고
하루 이틀 무용하게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내가 별로인 인간이 아니라는 명제를 왜 이리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인가. 솔직히 나는 욕심이 많은 인간이다. 또한 그 욕심만큼 성실하게 일하고, 효율적으로 노력하는 내 삶의 태도를 긍정한다. 그런 내 삶의 양식 자체를 부정하거나 갑자기 180도 바꾸고 싶은 마음도, 그럴 자신도 없다. 그런데, 지금은 쉬어야 할 때라는 것을 안다.
근 1년 간 '생산성'에 미쳐있었다. 하루 24시간을 빈 틈 없이 '생산적인 것'들로만 꽉 채워서 살았다. 그래야만 내 하루가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그런 하루들이 쌓여야만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나를 몰아붙였다. 왜 그렇게까지 했느냐고 물으면, 그게 내가 이혼에, 대학원에, 바쁜 회사 일까지 해내며 나를 잃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정했다고 답할 수밖에 없겠다. 마치 커다란 수조 안에 힘이 하나도 없는 내가 있고, 아주 아주 큰 돌덩이들과 자잘한 모래들로 꽉 채워야 그것들에 의지하여, 아니 꽉 막혀서 간신히 두 발을 딛고 서 있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조금이라도 공간이 비면, 나는 자력으로 버틸 힘이 없어서 무너져 내렸기에, 하나를 비우면, 두 개를 채우는 식으로 살았다.
그러면서도 내가 일하는 곳에서 만큼은 현재 나의 취약한 상태와 힘듦을 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강박적으로 웃었고, 일에 미친 듯이 몰입했고, 누가 칼로 협박한 것도 아닌데 자진해서 무리를 했다. 다행히, 소수의 사람들 말고는 내가 이런 힘든 상황이라는 것, 위태로운 상태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게 1년을 버티다가, 그렇게 애써 감추다가, 아주 제대로 무너져 내렸다. 회사 사람들 앞에서, 사무실 라운지 한가운데에서 쓰러졌고 119 구급대원 4분이 나를 들어서 들것에 눕혀서, 그대로 실려나갔다. 쓰러지게 된 과정이 잘 기억나지 않는데, 정신이 오락가락하며 공황발작에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았던 그 와중에도 속으로 생각했다. 진짜 쪽팔린다. 회사 어떻게 다니지. 이제 사람들이 날 신뢰하지 않을 거야.
구급차에는 보호자로 우리 회사에서 가장 무섭고 내가 가장 많이 혼났던, 개발팀 이사님이 동석해 주셨다. 공황 발작으로 한껏 힘이 들어가 있는 내 손과 발을 계속 주물러주시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라고 말하셨다. 그 이사님은 정말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사람인데, 나를 보시곤 눈물을 보이셨다. 이렇게 힘든데 어쩜 그렇게 티를 하나도 안 냈냐고. 꼭 자기를 보는 것 같다며, 그러지 말라고, 너무 힘주고 살지 말라며 우셨다. 그분의 눈물이 나를 위로한 것도 아니고 해방시킨 것도 아니었지만, 분명한 변곡점이 되었다. 나는 대체 무엇을 지키고자 그렇게 스스로를 해치면서까지 극단으로 몰아세웠던 걸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국 내가 지키려 한 건 '사랑받을 자격'이었는지도 모른다. 잘해야만 사랑받는다. 무너지면 버림받는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신뢰를 잃는다. 그래서 구급차에 실려가면서도, 내 몸이 망가지는 것보다 사람들이 나를 '무능한 사람'으로 볼까 봐 더 무서웠다. 그런데 내 상사도, 내 동료들도 여전히 내 곁에 있어주었다. 내 옆에 앉아서 내 손을 잡고 괜찮다고, 이제 좀 쉬자고, 그래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아. 내가 쓸데없는 갑옷을 입고 있었구나. 필요 없는 갑옷이었구나. 벗으면 찔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 갑옷이 나를 더 아프게 하고 있었다.
이걸 깨달았다고 해서 이 갑옷을 완전히 벗을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나는 여전히 이 갑옷이 익숙하고, 여전히 이게 나를 지켜준다고 믿고 싶어 한다. 나는 여전히 욕심이 많고, 여전히 야심 차며, 여전히 "더 잘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가득하다. 그게 나를 병들게 하는 걸 알면서도, 그 욕망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도 나니까. 내가 이룬 것들, 내가 만들어낸 것들에 대한 자부심도 진짜고, 더 성장하고 싶다는 열망도 진짜다.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들 하지만, 나는 이미 나를 사랑한다. 다만 그 사랑의 방식이 좀 폭력적일 뿐이다. 마치 과잉보호 부모처럼, 나는 나를 너무 많이 밀어붙였다. "네가 잘되길 바라니까"라는 명목으로.
그래서 나는 이 에세이에 거창한 깨달음이나 "새로워진 나"를 쓸 수 없다. 나는 아마도 쉬고 나면 또다시 미친 듯이 일할 것이고, 또 스케줄을 빡빡하게 짤 것이고, 또 야심 찬 목표를 세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정말 잠깐만이라도, 도망치기로 했다.
'바뀔 자신은 없으니, 잠깐만 쉬자'
이건 나와 내가 한 협상이다. 영원한 변화를 약속할 순 없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잠시 멈춰 서기로 한 것. 생산적인 나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시 그 속도로 달릴 힘도 없으니, 그냥 잠깐 숨 좀 쉬기로 한 것이다. 이 "잠깐만"이라는 말이 주는 묘한 해방감이 나를 숨 쉬게 한다. "영원히 바뀌겠습니다"는 너무 무거워서 지킬 수 없는 약속이지만, "잠깐만요"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기기만일 수도 있다. 어차피 돌아가면 똑같이 살 거면서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때로는 정직한 자기기만이 거짓된 각오보다 낫다.
나는 여전히 생산적인 삶을 긍정한다. 내 욕심을, 내 야심을, 내 성실함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다만 지금은, 정말 지금만큼은 그 '생산적인 나'로부터 잠시 도망치기로 했다. 도망이라는 단어가 비겁하게 들린다면, 차라리 '전략적 후퇴'라고 부르겠다. 잠깐만 전략적으로 후퇴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