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 11년 차가 말하는 '연봉협상'

회사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건 단연코 연봉이다.

by 최지현


회사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내가 받는 연봉이라고 생각한다. 혹여나 고용주가 "돈보다 값진 것을 얻어갈 수 있다"는 식의 가스라이팅을 한다면 당장 도망쳐라. 그것은 기만이다. 사용자와 노동자는 신성한 계약을 한다. 연봉계약. 나의 직업인으로서의 노동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서 교환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노동자들은 자신의 권리와 정당한 노동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받기 위해 투쟁해 왔다. 왜 '투쟁'이 필요했을까? 가만히 있으면 사용자는 절대 먼저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요구하고, 협상하고, 때로는 싸워야만 얻을 수 있었다. 지금의 주 52시간, 최저임금, 4대 보험 모두 그렇게 쟁취한 권리들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최저임금 1만 원 올리는 건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면서, 정작 자기 연봉 500만 원 올리는 건 '욕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태반이라는 거다. 집단으로는 '우리'의 권리를 외치지만, 개인으로는 '내' 가치를 말하지 못한다. 왜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봉 협상을 한 번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안 가르쳐준다. 협상 기술 없이 전장에 던져진 셈이다.


'내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협상할 것인가'

11년간 여러 번의 이직과 연봉협상을 거치면서 깨달았다. 연봉 협상을 못하는 이유는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방법을 몰라서다. 그리고 방법은 배울 수 있다. 이 글은 충분히 더 많은 돈과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일할 수 있는데, 연봉 협상 스킬이 부족해서 평가절하된 상태로 조금이라도 억울한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쓴다.


협상의 기술 이전에, 먼저 버려야 할 환상이 있다.


1. 실력만 좋으면 연봉은 따라온다.

2. 연봉 얘기하면 돈만 밝히는 사람으로 보일 것 같다.

3. 이직 기회를 얻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


이 세 가지 믿음이 당신의 통장을 가볍게 만들고 있다. 하나씩 뜯어보자.


실력만 좋으면 연봉은 따라온다고?
아니, 안 따라온다. 회사는 당신이 요구하지 않는 돈을 먼저 줄 이유가 없다.

이건 냉정한 사실이다. 회사의 인사팀은 당신의 '적정 가치'를 찾는 게 아니라, '당신이 수용할 최소 금액'을 찾는다. 당신이 5천만 원을 받아야 할 사람인데 4천만 원에 만족한다면? 회사는 기꺼이 1천만 원을 절약한다.

실제로 같은 팀, 같은 직급, 비슷한 연차인데 연봉이 20-30% 차이나는 경우를 수없이 봤다. 실력 차이? 아니다. 입사 시점의 협상력 차이다. 한 명은 오퍼를 받고 바로 수락했고, 다른 한 명은 며칠 고민하며 카운터 오퍼를 냈다. 그게 3년, 5년 누적되면 연봉 격차는 더 벌어진다.


더 씁쓸한 건, 조용히 묵묵히 일만 잘하는 사람보다 적당히 일하면서 협상은 공격적으로 하는 사람의 연봉이 더 높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불공평하다고? 그렇다. 그런데 시스템은 애초에 공평을 목표로 설계되지 않았다.

회사의 인사 시스템은 당신의 '적정 가치'를 찾는 게 아니라 '수용 가능한 최저선'을 찾도록 설계되어 있다. 당신이 만족한다고 '표현'할 때까지만 올려준다. 침묵은 동의로 해석된다. 그러니 실력만 키울 게 아니라, 그 실력의 값어치를 말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협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연봉 얘기하면 돈만 밝히는 사람으로 보일 것 같다고?
오히려 반대다. 자신의 가치를 명확히 아는 사람이 프로페셔널하게 보인다.


연봉 협상을 망설이게 만드는 건 '품위'라는 환상이다. 개인이 돈 얘기를 하면 격이 떨어진다는, 우리가 학습당한 믿음. 하지만 채용 시장의 논리는 정반대다. 자신의 가치를 명확히 말하는 사람이 신뢰받는다. 채용 담당자는 그런 사람을 프로로 본다. 협상으로 오퍼가 날아갈까? 회사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이미 당신을 선택했고, 다시 채용 공고 내고 서류 보고 면접 보는 건 시간과 비용 낭비다. 오히려 근거 있는 협상은 '자기 관리가 되는 사람'이라는 신호를 준다.

단, 어떻게 말하느냐가 승패를 가른다.

"이 정도밖에 안 되나요?"는 감정이고,

"시장 평균과 제 경력을 고려할 때, 이 부분에 대해 논의하고 싶습니다"는 논리다.


이직 기회를 얻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
아니, 회사도 당신이 필요해서 뽑는 거다. 거래는 쌍방향이다.


경력이 쌓일수록 기묘한 자기 검열이 시작된다. '요즘 같은 때 이직처 나온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30대 중후반을 넘어가면 이 생각은 자동으로 재생된다. "나이 값 하는데 뽑아주는 데가 어디야."

틀렸다. 회사는 당신의 경력을 사는 거다. 온보딩 비용 없이, 실수 없이, 즉시 성과를 낼 수 있는 인력. 신입 3명을 1년 교육시키는 것보다 당신 1명을 데려오는 게 효율적이기 때문에 오퍼를 낸 거다. 경력은 리스크가 아니라 프리미엄이다.

최종 면접까지 왔다는 건 당신이 그 자리에 적합하다는 뜻이다. 여러 후보 중에서 당신을 선택했다는 건 당신이 줄 수 있는 가치를 인정했다는 뜻이다. 이 시점에서 당신과 회사는 대등하다.

이직이 '기회'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걸 잊지 마라. 감사는 하되, 비굴할 필요는 없다.


11년 차가 된 지금도 연봉 협상은 여전히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감수할 때마다 내 커리어는 한 단계씩 올라갔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확신한다. 내가 받는 연봉은 내가 지키는 것이라고.

당신의 커리어는 당신이 지키는 것이다. 회사가 알아서 지켜주길 기대하지 마라. 신성한 계약은 대등한 자세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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