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이 주공을 만났다면~!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by 청목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아 입장권을 구입하고, 지정된 좌석에 편안하게 앉아 영화를 감상했다.

그러고 보니 언제 극장에 왔었나 기억이 새롭다.


영화의 제목은 <왕과 사는 남자>였다. 그저 <단종 애사(哀史)>이와 같이 할 수도 있을 것이나, 제작팀은

영화 제목만으로도 얼마나 심사숙고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왕과 사는 남자>~!

'무슨 이야기이지?' 할 수도 있고, 그래서 아주 새로운 이미지, 자연스럽게 제목만으로도 궁금증을 자아낼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

이러한 여세를 몰아 이번 <왕과 사는 남자>가 한국 영화로 크게 성공하기 바라고, 해외로까지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기를 은근히 기대도 해본다.


처음 기획에서부터, 시나리오, 각본 등, 영화 한 편을 제작하는 감독은 무엇보다 등장인물에 대한 배우

선정에 있어 가장 먼저, '엄흥도(유해진 분)', 그리고 '단종(박지훈분)'의 연기로 인해 끊임없이 흥분과 재미를 이어가고 때로 웃프기도 한, 그래서 결국에는 어찌 되었거나 하염없이 눈물을 자아내게 하였다.

또한 실제 역사적 기록에서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악역으로 등장하는 '한명회'의 역은 어쩌면 선량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배우, '유지태'가 맡았다. 그러한 선택과 결정에 있어 남다른 감독의

치밀한 작전이 있어 보인다.

결국 악역 한명회는 '상왕 노산군(단종)' 자신으로 인해 아무 죄도 없는 선량한 백성, 바로 엄흥도의

젊은 아들이 곤장을 맞아 피투성이가 되고 있을 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산군이 눈물을 머금고,

“제발, 그만 그치고 살려라!”

하고 말했을 때, 이제껏 방 안에서 가림막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던 '한명회(유지태분)'가 갑자기 가림막을 걷어 치며 그 모습을 드러내었고 관리와 백성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그렇게 말한 이가 지금은 '상왕'의 신분이며 바로 얼마 전까지 지엄하신 '임금'이었던 '단종'의 면전에,

“쳐라! 계속 쳐라! 죽을 때까지 쳐라!”

하고 '상왕 노산군'을 그대로 능멸하였다. 그때 노산군은 그저 분하고 원통함을 어쩌지 못하고 눈에 눈물이 고여오는 듯, 이 세상에서 가장 서글픈 얼굴로 돌아선다. '권력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하고

뼈가 저려왔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제까지 그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고자 연연하였다면, 이 일을 계기로 노산군은 비분강개하였고 그를 분연히 일어서게 한다.

그렇게 세조는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것에 그치지 않고, 결국 조카 단종을 죽이고, 심지어 그 시신을 거두는 자에게는 삼족을 멸하겠다는 영을 내린다.

여기서 '엄흥도'는 자신의 목숨은 물론, 온 가족의 목숨까지도 담보해야 하는 지엄한 어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강에서 단종의 시신을 거둔다.

"옳고 선한 일을 하다가 화를 당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달게 받겠다."

'위선피화 오소감심(爲善被禍 吾所甘心)!'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앞서 선친 '세종'은 예견하였다.

당시, 세자 '문종'은 병약하였고, 세손 단종은 아직 어린 까닭에 '자칫 둘째, 유(수양대군)'가 자신도 왕이

될 수 있다는 오해를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고 나름 대비하였다.

그러나 역사는 수양대군을 둘러싼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조카인 단종, 사육신, 거기다 그의 형제들과

결국 세조 자신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나라와 역사에 불행을 자초하였다.

여기서 가상의 경우를 상정해보고자 한다.

그것은 단종이 숙부 '수양대군', '세조'가 아닌 중국 주나라의 '주공(周公)'*을 모셔 와 보자.

아마도 당시 '성삼문'을 비롯 '사육신(死六臣)', 그리고 단종의 복위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모든

이들은 그와 같은 생각을 꿈꾸었을 것이다.

'주공'은 바로 형, 주(周) 나라를 세운 '무왕'으로부터 무왕의 아들이자, 어린 조카인 '성왕'의 보필을

부탁받는다.

실제로 '주공'은 막대한 실권을 온전히 가지고 있었고,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신이 임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린 조카 '성왕'에게 '무일(無逸)'등, 장차 왕으로서 갖추어야 덕을 잘 일깨우고, 보필하며

7년 동안이나 섭정을 하였다. 때에 이르러 '조카 성왕'이 스스로 온전히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다고 여겨,

형 '무왕'과 약속한 대로 조카인 '성왕'에게 모든 권한을 물려주고 본인은 멀리 변방으로 물러난다.

심지어 '공자(孔子)'님조차도 그러한 '주공(周公)'을 스승으로 여기고 평생토록 흠모하고 섬겼으며,

바로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는 고사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그저 왕권에 눈이 어두웠던 '수양대군, 세조'에게 어찌 '주공(周公)', 그와 같은 큰 덕(德)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1. '자칫 둘째 '유(수양대군)'가 자신도 왕이 될 수 있다는 오해를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도 다이어리> 김경묵, 새움, p419

2. 주공(周公)**(?~BC1094): 중국 주나라의 정치적 기틀을 마련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