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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술치료사 문 주 Oct 21. 2024

작가의 말

색채, 마음을 말하다

  

      문화와 인종을 뛰어넘어 인류가 선호하는 색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나는 일찌감치 미대를 목표로 입시 미술학원에 다니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나무로 만든 무거운 화구박스 안에 가지런히 들어있던 물감의 이름들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모브(mauve)’라 불리던 예쁜 보라색이 왜 모브가 되었는지, 빨강과 비슷한데도 red가 아닌 ‘카민(carmine)’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불리는지 아무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고, 나 역시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후 삼십여 년의 세월이 흘러 색채 심리학 공부를 하게 되면서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존재하는 색에는 각각 의미 있는 이름이 붙여졌고, 그들이 가진 역사와 상징이 존재하며, 우리가 좋아하는 색과 좋아하지 않는 색의 선호도를 결정하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박사과정 시절 색채심리에 관한 온라인 강의를 의뢰받았던것이 내게 색채 탐구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수집하기 시작한 색채 관련 자료들은 책상에 수북하게 쌓여갔고, 교안을 만들면서 수정하고 또 수정하며 하루 7시간 이상 스터디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힘들다기보다 희열과 재미를 느꼈다. 이것을 시작으로  미술치료사로서 일하면서 한편으로는 기업의 워크숍, 학교, 공공기관, 교직원 연수 등 다양한 곳에서 색채심리 강의를 하게 되었다. 수년간 수강생들을 통해 색채심리에 관한 관심을 현장에서 몸소 체험하면서 설득력 있는 내러티브와 우리 인간의 몸과 마음에 대한 경로를 제공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껴왔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개봉한 픽사의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에서는 이제 십 대가 된 라일리의 마음에 불안, 질투, 당혹감, 권태라는 새로운 감정이 등장한다. 생생한 캐릭터와 색채심리와 감정을 결합하여 생각을 자극하는 작품으로, 해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데 색과 함께 감정지능도 다차원적이고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시각화는 우리의 감정 스펙트럼의 복잡성을 잘 보여주고 이에 대한 이해를 넓혀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담자들이 그려내는 그림은 치료사들에게는 마치 이집트 벽화에 부조된 상형문자를 보는 듯한 막막함과 의구심을 던져 주거나, 때로는 치료의 실마리를 섬광처럼 보여주기도 한다. 미술치료는 일반 상담과는 달리 치료사와 내담자 사이에 ‘미술’이라는 징검다리가 존재하는데, 이러한 메커니즘이 만들어내는 작용은 설명하기 어려운 공명(共鳴) 성을 지닌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창조해 낸 이미지는 언어와는 다른 의미를 전달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다는 점이다. 내담자가 토로한 내용과 전혀 다른 이미지와 색채는 치료사에게 아우성을 치기도 하고, 거의 말을 하지 않는 내담자가 그린 그림에서 뿜어내는 색채는 더 많은 말을 하고 있을 때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미술치료에서 꼭 배워야 할 부분 중에는 칼 융의 분석심리학이 있는데, 이는 ‘적극적 상상’으로 인해 표현된 내담자의 무의식적 산물인 그림을 치료사가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뿌리라고 볼 수 있다. 내담자가 아닌 일반인, 어린아이들이 그린 그림에서도 우리 인간의 무의식은 드러나기 마련이며, 그것은 형상이나 색채로 완성이 되고는 하는데, 이러한 심상적 단서는 미술을 가까이 접하는 사람이라면, 또는 미술치료사라면 분명 궁금한 부분일 것이라 믿는다.     




     이 책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언급하고 있는 색이름 들은 2019년 3월 1일에 시행된 ‘문구류 산업표준(KS) 개정’에 따른 것이다. 개정 후 기존의 색이름 456종 가운데 172종이 변경되었는데 특히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흰색’과‘녹색’은 이미 더 앞선 2004년부터 한국표준 규격(KS) 개정에 따라 교과서에서 사라진 단어다. 이미 20년이나 흘렀지만 아직도 우리들은 녹색과 흰색이 더 편하다고 느낄 것이다. 녹색'을 '초록'으로, ‘흰색’은 ‘하양’으로 써 주어야 맞고, 이와 더불어 연주황, 풀색, 크롬노란색, 카나리아색, 대자색 등은 더 이상 문구류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색임과 동시에 더 이상 표준어가 아니다. 또한 일상에서 색을 언급하고자 할 때 예를 들어 ‘검정 도화지’라는 말을 쓴다면 검정(O), 검정색(X), 검은색(O)이므로 ‘검은색 도화지’ 또는 ‘검정 도화지’가 맞는 표현이다. 그러니까 ‘검정색 우산’,‘검정색 바지’ 등은 틀린 말이 되는 것이다. 초록 역시 녹색이라는 단어가 익숙하지만 ‘초록 우산’ 또는 ‘초록 신호등’이라고 써야 옳다. 미술교육에 종사하는 독자라면 이 점은 유의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에서는 문맥에 적절하게 ‘빨강’과 ‘빨간색’,‘초록’과 ‘초록색’ 등으로 표기하였음을 알린다.



      이 책은 이미 출판된 많은 색채 관련 서적의 서두를 차지하는 색의 체계, 색의 성질, 배색의 원리와 효과 등은 포함하지 않는다. 대신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연구와 관점을 바탕으로 독자들이 색채를 다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책을 썼다.



   

      책의 구성을 살펴보면, 1장에서는 빨강, 파랑, 초록, 노랑, 분홍, 보라, 주황, 갈색, 하양, 검정 등 주요 10개의 챕터 안에 (1) 색채가 밟아온 역사, (2) 색채가 가진 물리적 또는 심리적 속성, (3) 색채가 명확하게 드러난 미술작품의 이야기들을 화가의 삶과 함께 소개한다. 각 챕터 안에서 인간이 물리적인 환경 간의 상호작용과 적응을 바탕으로 진화적 변화를 겪는 과정에서 색채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도 알아보았다. 2장에서는 임상과 수업 현장에서 수집한 작품 안에 품고 있는 색채들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해 보는 사례들을 담았고, 미술교육자나 미술치료사들이 현장에서 실천해 볼 수 있는 색채심리를 활용한 프로그램의 방법을 안내했다. 부록으로는 동양철학의 바탕이 되는 음양오행 이론에서 오방색이 가진 의미와 개개인의 타고난 사주에서 나에게 도움이 되는 색은 무엇인지 찾는 과정을 설명하였다.     


     이 책은 미술과 색채에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 미술치료사, 미술 교육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교육서에 가깝지만, 단순히 색채에 호기심을 가진 일반 당신들에게도 인문학적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끝으로 작품을 실을 수 있게 기꺼이 허락해 주신 수강생들, 내담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2024년

                                                                                                                       문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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