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네마 천국>
중등 시절 동네 가게에 붙여진 영화 포스터를 훑어보는 게 취미였다. 영화의 장르도, 자극적인 홍보 문구도, 멋들어진 주인공 사진도,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새삥 포스터냐 아니냐에만 집중했다. 당시에는 영화 포스터가 붙여진 일반 가게에서 영화 초대권을 절반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기에, 새 포스터는 영화표를 싼 값에 얻을 수 있는 ‘징표’나 다름없었다. 영화 <시네마 천국>은 이러한 오프라인 할인 경로의 첫 번째 영화였다.
지금과는 달리 1990년에는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를 얻기가 힘든 시절이었다. 때로는 운 좋게 구입한 영화 초대권이 영화보다 더 짜릿한 스릴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 시절 <시네마 천국>도 그랬으리라 짐작한다. <시네마 천국>은 생애주기에 따라 감흥이 다르게 전달되는 영화이다. 호기심이 왕성한 중2 때는 영화를 좋아하는 유년기의 ‘토토’에 초점이 머물렀다. 대학 새내기인 1995년에는 아련한 ‘첫사랑’에, 중년이 된 2021년에는 변화에 대한 ‘공간의 흐름’에 생각이 깊어졌다.
주기별 울림의 파고가 높았기에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아니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이 해를 거듭하면서 선명해졌다. 많은 이들이 인생영화로 <시네마 천국>을 꼽은 이유에 한 발 다가설 수 있는 것도 20년이 지나서야 체감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언제 적에는 ‘있어 보일’ 요량으로 <시네마 천국>을 언급했던 때가 있었다. ’80년대 말 ’90년대 초 홍콩 누아르(noir)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blockbuster)의 위엄 속에 결이 다른 유럽 영화를 내적 열등감을 상쇄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영화를 예술로 표현하는 데 <시네마 천국>이 ‘있어 보임’의 지고(至高)의 선이었음을 방증하듯 말이다.
<시네마 천국>은 유년기의 토토(살바토레 카스치오)가 성인이 된 후 성장기를 회억하고, 불가항력적인 변화를 체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 속에 이탈리아 남서부의 섬 시칠리아 소도시(팔라쪼 아드리아노(Palazzo Adriano)와 체팔류(Cefalu), 카스텔부오노(Castelbuono))민의 삶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전한다. 무엇보다 지리멸렬한 사회 환경에 ‘영화’가 그리고 영화가 펼쳐지는 ‘공간’을 사회구조적으로 묘사한다. 민초들의 불안정한 삶을 위안하는 최적의 텍스트(제도)가 영화이며, 컨텍스트(공간의 계층적 구조)는 불균형임을 드러낸다. 마치 영화를 검열하는 천주교 신부가 중세시대 최고 권력자인 성직자(교황)가 되고, 극장 2층에서 쓰레기를 투척하며 1층을 조롱하는 말끔한 신사는 귀족을, 1층의 다양한 계층은 평민을 가리킨듯하다.
중세 유럽사회처럼 계급이 나눠지고, 그러한 계급사회는 변혁에 따라 변모한다는 맥락 또한 스며있다. 극장(사회)에 출입하지 못한 관객(소외계층)을 위해 마을광장에 펼쳐진 미디어파사드는 앞으로 맞이할 혁신적 사회구조의 단초가 된다. 극장의 화재는 그 전환적 불쏘시개로서 알프레도(필립 느와레)의 화재사고는 신시대를 향한 구시대의 ‘희생’이다.
이후 극장은 ‘시네마 파라디소’로 탈바꿈하고, 평민 출신의 자본가가 새주인이 된다. 극장에는 성직자의 선정성 검열이 사라지고, 2층의 귀족은 1층으로부터 똥기저귀 세례를 받는 등 사회구조적 계층 변화가 일어난다. 즉, 신분의 구분이 없어지고, 유년기 아이들의 자위행위와 성인들의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자유분방한 환경이 구현된다. ‘시네마 파라디소’는 다양한 삶을 유영시키는 공간(사회)을 창출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토토는 파라디소의 새로운 조력자로서 역할을 다한다. 혁신의 단초가 된 미디어파사드는 야외극장이라는 하나의 체계로 변모한다. 사회구조의 변화에 따른 인간의 이로운 제도 추구와 이를 통한 윤택한 삶의 지향. 환경의 발전과 문명의 이기는 거스를 수 없는 자연스러운 변화의 '흐름'이라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때문에 알프레도는 토토에게 현재의 공간을 떠날 것을 종용한다.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매몰차고, 강압적으로 말이다. 어쩌면 알프레도는 이미 자연스러운 변화의 흐름으로 파라디소라는 공간이 희석되고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짐작했는지 모른다. 내일의 세상이 일으킬 변화의 소용돌이를 예견했기에 토토를 냉정하게 대도시로 보내려 했던 것이다.
이 같은 추측은 알프레도의 죽음으로 몇 십 년 만에 고향을 찾은 중년의 토토가 바라본 시선과 연결 지을 수 있다. 교통의 발달로 방사형의 소도시 공간은 그 기능이 축소되고, TV, 비디오 등 방송매체의 발전으로 시네마 파라디소는 철거된다. 이 역시 변화의 흐름으로 인해 극장은 주차장으로 공간의 재탄생을 야기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남긴, 과거 성직자 검열에 의해 삭제된 키스신 필름은 물음표로 남는다. 토토의 첫사랑인 엘레나를 향한 사랑이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음을 말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사랑은 불변이 아닌 잘려 나간 필름의 키스신처럼 다양할 수 있다는 알프레도의 의도인지 말이다. 지금껏 생애주기에 따라 <시네마 천국>이 다르게 전달됐듯, 다가오는 주기에는 답을 찾을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