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언프레임드>
언프레임드(unframed). ‘액자에 끼우지 않은’, ‘틀이 없는’ 등을 뜻한다. 사전적 의미에서만 보면 관용적이지 않는, 새로운 ‘형태’를 가늠할 수 있다. 어떠한 기준이나 형식에 맞추지 않은, 자유분방한 구성과 맥락이 기대된다.
하지만 영화 <언프레임드>는 이러한 예상을 벗어났다. 지극히 사회 프레임(frame)적이고, 플롯이 클리셰적이다. 총 4편의 옴니버스로 만들어진 평이한 왓챠 오리지널 숏필름이다. 주된 골격 또한 정치공학, 관계, 결손 가정, 취준생이다. 내용도 기존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직관할 수 있다. 프레임적임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러나 영화는 분명 ‘언프레임드’가 있다. 한 편 한 편에서 짙게 전해지는 여운은 일반적인 ‘틀’이 아니다. 무엇보다 연기파 배우인 박정민(반장선거), 손석구(재방송), 최희서(반디), 이제훈(블루 해피니스)이 연출했다는 것이 언프레임드일 터.
‘반장선거’는 초등학생의 반장선거를 통해 기성정치의 메커니즘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특히, 유권자가 바라는 정치적 지향점을 논파하듯, 반전효과를 적용해 통쾌하게 연출했다. ’92년에 개봉한 박종원 감독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정치적 권력의 모순 속에 숨죽일 수밖에 없는 민심을 다뤘다면, ‘반장선거’는 민심의 개혁성을 당당히 표출한 것. 전체적인 맥락은 프레임이었지만, 반전효과 만큼은 통렬한 ‘언프레임’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정치학자 존 롤스가 주장한 “가장 안 좋은 환경의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가장 정의로운 체제”의 첫 단계가 실현되는 듯하다.
‘재방송’은 이모(변중희)와 조카(임성재) 간 상호작용을 소소하게 풀어냈다. 여느 집에서나 있을 법한 대화와 행동이 큰 줄기이지만, 그 속에는 ‘결핍’에 대한 ‘채움’이 있다. 채움의 매개체는 '음식'이다. 단역배우로 활동하는 조카에게 이모가 건네는 반찬은 ‘헛헛한 현실’을 메우는 동력이다. 조카가 이모에게 주는 요구르트는 죽은 딸을 그리워하는 이모의 마음 속 빈 공간을 채우는 ‘약물’과도 같은 것. 송해성 감독의 <고령화 가족>에서 자식들을 위해 매일 삼겹살을 굽는 엄마(윤여정)의 마음과 일맥 한다. 여기에서 삼겹살은 건달인 장남(윤제문)과 흥행에 참패한 영화감독 둘째 아들(박해일), 이혼모 딸(공효진)의 헛헛한 현실을 채우는 매개체인 것이다. 어쩌면 ‘재방송’은 사람 간 관계에 대한 ‘보편적 이해’를 요구하는지도 모른다.
결손 가정의 고통을 담담하면서 묵직하게 표현한 ‘반디’는 죽음에 대한 고찰이다. 생애주기에 따라 맞는 생의 이별이 아닌 예기치 않은, 때 이른 사별(死別)을 다룬다. 이러한 죽음은 도심 속 자연공원에 서식하는 반딧불이를 은유하는 듯하다. 주로 깨끗한 하천과 습지에 서식하는 반딧불이가 도심 공원을 날아다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인간의 비현실적인 운명과도 같음을 말이다. 거기에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남겨진 가족의 내적고통은 말더듬과 무기력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고통의 병리현상은 반딧불이가 있는 도심 속 공원과 닿았을 때 사라진다. 현실에 대한 ‘인정’이 삶의 ‘안정’으로 변할 수 있다는 긍정의 시그널로 해석된다. 죽음에 대해 익숙해져야 한다고 설파한 16세기 프랑스 문학가인 몽테뉴의 말이 스친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근심으로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삶에 대한 걱정 때문에 죽음을 망쳐 버리고 있다.”
‘블루 해피니스’는 이 시대의 취업준비생 이야기를 담았다. 생계유지와 취업준비의 사선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청년의 삶을 다큐로 전하듯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안타깝고, 안쓰러운 현실이 무겁게 드러난다. 그도 그럴 것이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본’만이 진리라는 명제를 관통하는 것 같아 씁쓸함이 짙게 깔린다. 찬연히 빛나고 뜨거워야 할 청춘들의 삶이 어둡고 무겁고, 우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제목에서의 블루와 해피니스가 언어적 시멘틱 효과를 잘 드러내고 있다. 우울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행복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블루 해피니스’로 조화를 이룬다.「청년기본법」제3조에는 청년의 나이가 19세 이상 34세 이하로 규정돼 있다.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이 나이에 속하는 청년은 지금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박차고 있을지. 찬영(정해인)의 블루는 어떤 결말을 지을지 말이다.
<언프레임드>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담았다. 어느 누군가가 겪고 있을 일상을 사실적으로 연출했다. 부조리한 사회를 단죄하는 카타르시스와 서로를 보듬는 이해, 인간의 숙명에 대한 고찰, 본의 아니게 희생되고 있는 우리의 청년들. <언프레임드>는 오래된 틀에 박힌 우리의 현실을 틀 밖으로 빼내고 싶은 언어적 몸짓이 아닐지. 생각이 여기에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