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봉오동 전투>
영화 장르에서 역사물의 감흥은 밀도가 다르다. 실화를 바탕으로 이야기가 더해져 진진함이 배가된다. 외세 침략에 항전한 선조들의 ‘기개(氣槪)’를 다루는 영화는 더욱 그렇다. 틈만 나면 영토 침탈을 계획하고, 경제협력을 무시하는 작금의 외세들이 영화의 몰입을 조력(?)하는지도 모른다. ‘본때’의 일침이 필요한 순간순간이 빈번해지는 근자에, 영화 <봉오동 전투>는 우리가 지켜야 할 역사이다.
<봉오동 전투>는 근현대사에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항일 독립운동에서 횃불과도 같은 항전을 다룬 영화이다. 1919년 3‧1운동 이후 독립군의 활발해진 무장 항쟁을 토벌하기 위해 일본군이 조직한 월강추격대대와의 전투를 그렸다. 1920년 6월 홍범도, 최진동 등이 연합한 대한북로독군부(독립군 연합 부대)가 중국 지린성 왕칭현 봉오동에서 일본의 월강추격대대를 대파한 항일 전쟁사다.
영화는 당시 상황을 여러 갈래로 직관해전투를 시뮬레이션한 듯 전투 시퀀스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특히, 마적단 출신의 황해철(유해진)과 이장하(류준열)를 축으로 전투 장면은 미세하게 분류된다. 박진감 넘치는 굵직함을 보인 황해철에 비해 이장하는 속도감 있는 스릴과 함께 카타르시스를 분출시킨다. 냉철한 추진력을 지닌 이장하의 ‘전략’, 언덕 돌무덤의 기관총 난사라는 기대 이상의 무한쾌감은 영화의 백미다. 신형 소총 대 검의 대결 또한 흥미롭다. 당시 일본군은 1895년 동학농민운동 때 사용했던 무라타 소총을 비롯해 영국에서 개발한 스나이더 소총을 사용했을 터. 반면, 황해철은 ‘항일대도’를 휘두르며 고려시대 소드마스터인 척준경을 연상케 한다. 이러한 액션의 조합은 분명 무술감독 출신인 원신연 감독과 액션 대역을 맡은 정두홍 무술감독의 콜라보에서 비롯됐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미 2002년 개봉한 <무사>에서 화려하지 않은 묵직한 검술 프레임을 구성했던 정두홍 감독의 섬세함과 <용의자>를 통해 한국액션의 획을 그은 원신연 감독 특유의 액션 연출력이 함께 호흡한 결과다. 다만, 1992년 홍콩영화 <가자왕>에서 화려한 발차기를 뽐냈던 무술배우 원진의 등장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용의자>에서 지하철 격투신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그였음에도 불구하고, <봉오동 전투>에서는 단순히 마적단의 일원에만 그친다.
영화는 액션도 액션이지만, 국가와 공동체, 죽음의 가치를 말한다. 황해철의 “어제 농사짓던 사람이 오늘 독립군으로 합류하기 때문에 독립군의 수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대사는 영화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이다. 분명, 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責)-천하가 융성하고 쇠퇴하는 데는 한낱 밭 갈고 나무하는 평범한 농부에게도 책임이 있다-을 영화는 담고 있으며, 당시 이를 이행한 선열들에 대한 예의를 표했음을 직관할 수 있다. “어떤 죽음은 태산처럼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처럼 가볍다”는 대사 또한 지금의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표일 것이다. 항일 독립운동을 다룬 <아나키스트>에서는 ‘삶은 산처럼 무거우나 죽음은 깃털처럼 가볍다’라고 표현한다. 무거운 삶을 천착하는 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해석한다면, <봉오동 전투>의 무거운 죽음이 독립군의 삶이었음을 생각하게 한다.
영화는 역사왜곡에 대한 부분도 놓치지 않는다. 일본군 소년 장교인 유키오(다이고 코타로)를 통해 당시 일본군의 만행이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임을 인정하게 한다. 예나 지금이나 과거사 청산을 하지 않는 일본에게 <봉오동 전투>는 소년의 시각에서 ‘인정’에 대한 상식을 끄집어낸다. 게다가 극악무도한 월강추격대장 야스카와 지로역을 연기한 일본 배우 기타무라 카즈키의 소신도 힘을 실어준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봉오동 전투>가 반일영화라며 카즈키의 출연을 반대했었다. 하지만 그는 “배우는 어떤 역할이든지 잘 해내야한다”는 뜻을 관철시켰고, 극악무도한 월강추격대장역을 완벽하게 소화한 것이다.
<봉오동 전투>는 역사적 사실만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일본과의 과거사를, 그리고 진행되고 있는 외교문제를, ‘무거운 죽음’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