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와 흑산도 사람들

바닷속에는 다양한 어류와 해초 등이 자라고 있었다.

by 명문식

마음이 허전할 때는 여행을 떠나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런저런 복잡한 마음을 버리고 오려고 홍도로 발길을 옮겼다. 목포항에서 쾌속선을 타고 홍도로 향하는 기분은 한결 가벼웠다. 한 시간쯤 달려 망망대해를 항해할 즈음 파도가 조금 높았던지 배 멀미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게 얼마를 가니 홍도가 나타났다. 배에서 내려 언덕을 올라가니 여관이 있었다. 우리가 머문 여관은 창문만 열면 그림 같은 홍도의 앞바다가 잔잔한 그림으로 다가왔다. 시간이 조금 남아 마을 위쪽으로 올라갔다. 작은 초등학교가 아담하게 꾸며져 있고 집집마다 물탱크가 주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덕을 넘어가니 서쪽 해안에 홍도 해수욕장이 자갈을 업고 기다린다. 일명 '빠돌 해수욕장'이라 부르는 이 해수욕장은 국내에는 유일하게 규암 자갈로 되어 있어 신경통이나 피부병, 무좀 등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물이 아주 맑은 홍도 해수욕장은 물안경만 있으면 다양한 해양생물을 볼 수 있었다.


즐비하게 늘어선 횟집들이 마련한 평상에 앉아 바라보는 홍도 해넘이가 일품이었다. 정박한 크고 작은 배들 사이로 황금빛으로 물든 채 밀려오는 파도가 그림 같았다. 홍도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어 원칙적으로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다. 깃대봉을 넘어 1구와 2구를 오가는 산길이 있지만, 주민들조차도 풍랑이 심할 경우를 빼고는 배를 이용하고 있었다. 짧게나마 홍도의 울창한 숲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1구 홍도 관리사무소 옆, 자생란 전시관 뒤로 오르면 울창한 동백나무숲을 만날 수 있었다. 10여분이면 돌아 내려오는 짧은 산책로지만, 수백 년 된 동백나무와 구실잣밤나무와 후박나무들이 빽빽한 숲 터널을 이루고 있어 흥취를 자아내고 있었다. 50여 년 전 당제를 지냈던 죽항 당산 터와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절벽, 남문바위 쪽 풍경을 만났다. 흑산초등학교 홍도 분교 옆으로 올라 발전소 가는 오솔길 경치도 빼어났다. 출입이 금지된 낭떠러지 길인데, 아득하게 내려다보이는 벼랑 밑에서 부서지는 파도가 후련하다. 홍도에선 갈매기를 별로 볼 수 없었고 떼 지어 나는 철새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옛날 홍도는 물이 모자라 불편을 겪었으나 요즘은 각 가정에 물을 공급하므로 불편이 사라졌다고 한다. 다음날 유람선 관광에 나섰다. 유람선을 타고 나서자 안내하는 아저씨의 유창한 말솜씨는 우리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었다. 홍도라는 말 그대로 ‘붉은 섬’을 실감할 수 있는 곳이다. 개미목 선착장으로 나가면 유람선을 탈 수 있었다.


처음에 만난 것이 남문바위이다. 녹섬이 천연의 방파제처럼 포근히 감싸 안고 있는 포구를 빠져나간 유람선이 먼저 들르는 곳은 홍도 남쪽 끄트머리의 남문바위. 홍도 33경 중 제1경으로 꼽는 절경이다. 한 번 지나면 일 년 동안 재앙이 없다는 행운의 문이다. 그러나 작은 유람선만 이 남문을 속으로 지나갈 수도 있었다. 남문 바위 바로 옆은 합장하고 있는 모양의 도승 바위, 그다음 모서리를 돌면 병풍바위가 나타난다. 100개 넘는 굴이 있다. 두세 개가 서로 연결된 것 등 모양도 가지각색이다. 자연이 빚어낸 깎아지른 절벽 바위틈에 분재한 것처럼 서 있는 나무들은 오랜 풍상의 그림자가 서려 있어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 절벽에는 여름이면 섬 전체를 각종 꽃들로 아름답게 수를 놓는다.


홍도 2구에 위치한 홍도 등대는 1931년에 처음 불을 켠 이래 지금까지 항해하는 선박들의 길잡이가 되고 있는데, 등대로 가는 울창한 오솔길 또한 산책하기 좋고 이국적인 분위기가 있어 관광객들이 사진 찍기 좋은 곳이다. 홍도의 풍란은 홍도 관리사무소 옆에 있는 난 전시실에서 보호받고 있으며, 그곳에 가면 약 5백여 점의 자생란을 관람할 수 있었다.


난류가 흐른다는 홍도의 바닷속에는 다양한 어류와 해초 등이 자라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항상 가르치던 ‘홍도의 자연’ 뭍은 자연 박물관, 바다는 천연 수족관이다. 기암과 괴석과 동굴과 환석이 상록수림과 함께 절경을 이루고 있는 곳, 홍도는 자연보호 지구로 지정되어 그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섬 남쪽 끝을 돌면 유람선은 제비 여로 다가간다. 하늘을 나는 제비모양의 바위다. 임신 9개월째라는 원숭이 바위, 시어머니가 홧김에 휘둘러서 손잡이가 없다는 주전자바위, 거북바위 등을 연속해 지나간다. 석가탑, 다보탑 등 석탑을 연상시키는 바위들이 모여선 탑 여의 경치가 새롭다.


홍도는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도 서쪽 해상에 있는 조그마한 섬이다. 남북으로 비스듬하게 누워 길이가 7Km, 폭이 가장 넓은 곳이라도 2Km를 넘지 않았다. 홍도는 총면적의 3분의 2 가량 되는 북부와 3분의 1밖에 안 되는 남부가 활처럼 휘고 좁은 대밭 목으로 이어져 있어서 마치 두 섬이 붙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크고 작은 20여 개의 섬들이 딸려 있다.


다음날 우리는 흑산도로 향한다. 흑산도에서 처음 만난 것은 홍어였다. 홍어는 겨울철이 다가오면 서북해안에서 남서해안으로 이동한다. 흑산도 근방에서 겨울을 지내고 흑산도 근방의 물과 먹거리에 의해 고기 육질이 변한다. 그러니까 황해도 앞바다의 홍어와 종류는 똑같지만 잡히는 지역에 따라 몸값이 확 달라진다. 홍어 시장에 가니 홍어가 죽 널려있었는데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어떤 것은 몸체 하부에 아기 팔만한 기다란 덩어리가 두 개 달려있는 것이 수컷이다. 아무것도 없이 매끈한 것은 암컷이다. 가격은 암컷이 더 비싸다.


남서해안지역에서 홍어 하면 안주로는 '삼합'이란 게 유명하다. 막걸리를 마실 때, 김치를 펴서 그 안에 홍어 한 점, 삶은 돼지고기 한 점을 넣고 말아서 안주를 하는 것이다. 홍어, 돼지고기, 김치가 바로 삼합이다. 홍어는 신화에도 등장한다. 신화 중에 홍어 이야기가 있다. 홍어는 두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홍어 몸체는 위에서 보면 넓고 커 보이지만 옆에서 보면 지극히 얇고 가늘다. 홍어의 뱃바닥은 미끈거리지만 등 쪽은 거칠거칠한 물고기이다.


흑산도 중앙에 있는 산 정상에 오르니 ‘흑산도 아가씨 노래 탑’이 있었다. 스위치를 누르니 이미자의 구성진 가락이 외로운 섬에 흘러내린다. 여기에서 흑산도의 전설을 만났다. 외로운 섬 대흑산도 ‘진리’라는 곳에 ‘각시당’이라는 당집이 있었다. 그 당집 앞에 조그마한 묘가 있는데 그곳에는 예쁜 소년이 묻혀 있었다.


옛날 어떤 예쁜 소년이 배를 타고 가다가 대흑산도 근처에서 풍랑을 만나 할 수 없이 이 섬에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풍랑이 좀처럼 멈추지 않아서 배가 떠날 수가 없었다. 그 소년은 이 섬에 있는 동안에 심심해서 당집이 있는 산에 올라가 소나무 위에 앉아서 피리를 불었다. 그런데 그 피리 소리가 어찌나 몹시 구슬픈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슬프게 했다. 바람이 멈추고 바다가 잔잔해진 다음 소년은 배를 타고 떠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소년이 배를 타니까, 또 바람이 불어서 배가 떠날 수 없었다.

소년은 배에서 내려 당집 앞 소나무에 올라가서 또 피리를 불었다. 이렇게 여러 번 하니까 나중에는 뱃사람들이 반드시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라 믿고 당집에 가서 열심히 빌자 꿈에 여신이 나타나서 자기는 이 섬을 지키는 신인데, 소년의 피리 소리에 반하였으며, 너희들이 이 섬을 떠나려면 그 소년을 남겨두고 가라고 하였다. 그래서 뱃사람들은 그 소년을 흑산도에 남겨 두고 갔다. 소년은 할 수 없이 이 섬에 남아 한없이 피리를 불다가 죽고 말았다. 이 당의 여신은 소년이 예뻐서 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소년은 여신을 달래기 위해 피리를 불었고 사람들은 그 소년을 그 당 옆에 고이 묻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