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배려하는 것은 결국 나를 위한 일이다
산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은 자본주의와 맞닿아 있다. 어떤 이는 어쩌다 가끔 외롭고, 어떤 이는 날마다 외롭다. 외로움은 일상의 한 복판에서 찾아올 수 있지만,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경험하지 않는다. 언제나 내 편이라고 믿고 마음을 준 상대가 자신의 기대를 외면할 때 상처를 받는다. 기대가 없으면 상처도 없다. 내가 해준 것만큼 상대방은 나에게 더 신경을 써주고 잘해주지 않는다. 상처는 상대방에게 의존하고 집착하기 때문에 생긴다.
이청준의 『눈길』이라는 소설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자수성가했다고 생각하는 아들과 집안의 불행을 자신의 부덕함으로 돌리는 어머니와 주인공과 어머니 사이의 화해를 끌어내는 아내가 있다. 이 소설에서 부모와 자식 사이를 물질로만 생각하여 어머니에게 아들은 아무런 ‘빚’이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 현대인의 이야기로 떠오른다. 아들이 어머니가 집을 고치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부담을 느껴 일찍 서울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아내를 통해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고, 마음속으로 화해하는 과정이 나온다.
소설 속의 노모가 새벽에 매정한 아들을 떠나보내고, 하얀 눈길을 걸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아들에 대한 사랑으로 눈물을 흘리고, 아들의 발자국마다 끝없는 눈물을 뿌리며, 아들의 앞길이 잘 되길 빌면서 돌아온다. 홀로 되어 쓸쓸한 느낌을 안고 집으로 향하는 전형적인 우리 어머니의 삶이다.
거절은 상처와 아픔을 준다. 부탁을 하는 사람이나 들어주는 사람이 어느 선에서 부탁하고 어느 선에서 들어주어야 할지가 중요하다. 그 기준은 중도로 판단하여야 하고, 중도가 가장 많은 이익을 준다. 부족했던 시절을 살아온 지난날을 돌이켜보라.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여겼는지 더듬어 보라. 부모님이 모든 것을 안고 숨기기만 했던 이야기가 있었는지 생각해보라. 생각은 주로 과거에 머물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쓰라린 추억도 있을 수도 있고, 몰락한 집안이나 갈 수 없는 고향이나 실패한 사업에 대한 경험에 있을 수도 있다.
상처와 아픔은 사람마다 푸는 방법이 다르다.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상처를 받고 아픔을 겪고 살 때가 있다. 우리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도 섣부른 판단과 충동적인 감정 때문에 잘못을 저지른다. 누구는 술로, 누구는 게임으로, 누구는 취미생활로, 누구는 심리적 치료로 푼다. 인간은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하고, 상처와 아픔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당사자가 자신을 위해 상대방을 용서해 줌으로써 치유해야 한다. 지난 세월이 쌓일수록 마음이 아련하거나 몸이 아프다. 남의 상처는 ‘별것도 아닌데 뭘 그런 일로 그럴까?’ 하고 판단할 수도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가끔 상처와 아픔 그리고 본질적인 외로움을 겪는다. 가까운 친인척 간에도 뜻하지 않게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아무도 자기를 진정으로 위로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인생은 고독하다고 말한다.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다가오는 감정이다. 큰 상처가 있는가 하면 가벼운 상처도 있다. 작은 상처일지라도 당하는 사람에게는 늘 절대적인 무게로 느껴진다.